트랜스젠더인권연대 지렁이를 발족할 때가 문득 떠올랐다

성전환자인권연대 지렁이, 그리고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 2006년 11월 4일 정식으로 발족해서 2010년 활동을 중단하고 2012년 단체를 해소.
2005년 하반기에 초동 모임이 시작되었다는 언설도 있었고, 2006년 초에 초동 모임이 시작되었다는 언설도 있다. 어쨌거나 2006년부터는 본격 활동을 시작했고, 나는 초동 모임이 한창 진행 중일 때, 합류했다. 우리는 정말 미친척 단체를 만들었고 이런 저런 활동을 했고, 우왕좌왕 힘들어 했고, 그럼에도 열심히 활동했다. 하지만 다들 힘들었고 지쳤고 결국은 단체를 중단시키기로 했다. 명의만은 유지하다가 결국 해소했다.
퀴어락에서 지렁이 활동과 관련한 문서를 정리하고 있다. 그러다가 2006년 11월 04일 지렁이를 발족할 당시 사용한 명찰을 사진으로 확인했다(이미 퀴어락에 등록되어 있는 사진이다). 그곳(http://queerarchive.org/bbs/51117)엔 “운영위원(학술정책)”이라고 적혀 있었다. 기분이 참 묘하다. 2006년 11월이면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공부를 한지 두 번째 학기다. 내가 여성학을 처음 공부했을 때가 2004년이었다. 트랜스젠더 이론을 생전 처음 읽었을 때가 2005년이다. 그러니까 길어야 2년, 기껏해야 1년 정도 트랜스젠더 이론을 공부하고선 단체에서 “학술정책” 분과를 담당하겠노라며 그 명의를 받아들였다. 물론 나는 그때 공부를 계속 하고 싶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학술, 혹은 연구나 공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무슨 깡으로 그랬을까? 무식해서 정말 용감했구나,라는 말 외에 달리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싶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에 와서 나는 그때의 기록을 흑역사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한없이 부족했지만 어쨌거나 그때 내가 담당하기로 했던 역할인 학술정책 분과에서 정책은 모르겠지만 학술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으니까. 지렁이라는 단체를 세우며 내가 무슨 사명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면 나는 지금도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 학술이라는 분과에서 내가 잘 하고 있지는 않지만, 많이 부끄럽고 여전히 한없이 부족하지만 어쨌거나 그 역할은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은 그 명찰이 나의 흑역사는 아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10년 뒤 다시 그 명찰을 본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더 부끄러울까?
그냥 그 명찰을 보며 조금 감상적으로 변했다. 여러 이유로 슬픈 것인지도 모른다. 단체는 해소했고, 지렁이 활동을 하다가 공부/연구라는 측면에서 평생의 빚을 지기도 했다. 그때 같이 활동했던 이들은 지금도 활동가로 연구자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몇은 트랜스젠더 삶의 조각보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적극 활동했고, 그 중 한 명은 지금도 적극 활동을 하고 있다. 누군가와는 더이상 연락이 안 되고, 누군가와는 영원히 연락을 할 수가 없다. 어떻게 노력해도 영원히 연락할 수 없음. 이것이 감상적으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한무지를 빼곤 지렁이를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혹은 지렁이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그 인간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게 지렁이는 어쩐지 슬픔으로 남아 있다. 미안함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의 행동으로 인한 부끄러움만은 아니기를…

반대를 위한 반대: 퀴어의 공공 노출, 1

오늘 연합뉴스TV에 강명진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과 기독교의 누군가가 나왔다. 어김없이 노출 이슈가 등장했다. 기독교의 누군가는 “우리 청소년과 우리 아이들”에게 유해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노출을 하는 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진행자가 질문했다. 노출 문제를 잘 처리하면 퍼레이드 개최에 찬성하느냐고. 누군가가 말하기를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반대를 위해 반대하며, 노출은 그저 핑계일 뿐이라는 자기고백이었다.
작년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가 끝나고 (어김없이) “빤스”차림이 논란이었다. 퍼레이드는 좋지만 굳이 팬티 차림이어야 하느냐라는 질문은 이성애-비트랜스젠더 뿐만 아니라 비이성애-비/트랜스젠더에게서도 나온 반응이었다. 주변에 보기 안 좋고 반대도 심하니 팬티 차림은 하지 말자는 주장이 꽤 많았다.
선암여고 탐정단의 여고생 키스 장면을 두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경고 조치를 했다. 최종 결정을 하던 날, 박효종 위원장은 “동성애는 동성애자들 간의 키스가 아닌 방식으로 얼마든지 우아한 형식으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 키스를 하는 장면을 보여준 것은 동성애의 본질 문제와는 거리가 먼 선정적인 표현방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주장하며 경고 조치를 하는데 강하게 동의했다. 그러니까 이른바 성적으로 보이는, 그리하여 ‘선정적인 표현방식’은 방송이나 공공에 등장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매우 규범적이고 단정하여 얼핏 봐선 비이성애자-트랜스젠더인지 확인할 수 없도록 행동하라는 뜻이다.
빤스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기독교의 누군가가 밝혔듯, 반대나 비난의 핵심은 팬티 차림이나 노출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반대할 거리, 비난할 거리에 불과하다. 누구도 팬티 차림을 하지 않는다면 부적절한 애정행각을 문제 삼을 것이다. 혹은 다른 무언가를 문제 삼을 것이다. 그러니까 무조건 문제 삼을 것이다. 기독교의 누군가가 말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나는 너희를 무조건 반대할 것이다. 너희가 아무리 점잖게 행동하더라도 공공에 등장하려고 하는 이상, 무조건 반대할 것이다.’
‘우아한’ 혹은 ‘점잖은’ 재현은 존재의 자기 표출이라기보다는 결국 규범이 선호하는 방식에 포섭되면서 이성애가 아닌 것을 결코 공공에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요청과 강하게 공명한다. 그 결과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성애규범적 형상만 미디어와 공공에 존재하겠지. 그리하여 그러한 규범에 부합하며 살 수 있는 계급의 비이성애자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살아가겠지만 그렇지 않는 이들의 삶은 지금보다 더 힘들고 때때로 불가능한 삶을 살 것이라고 고민한다.

이론의 자장에 있는 삶

어느 트랜스젠더 이론가는 책을 쓰는 과정에서 편집자에게 다음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모두 학부 수업에서 듣긴 했는데 삶과는 별로 상관이 없더라. 그냥 그건 이론일 뿐이지 삶은 아니라고. 트랜스젠더 이론가는 삶과 무관한 이론에 불과하다는 바로 그 이론이 어떻게 자신의 삶, 그리고 트랜스젠더퀴어의 삶을 설명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언어인지를 설명한다. 책 전체를 통해서.
나 역시 그 트랜스젠더 이론가의 말에 동의한다. 남들이 이론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그것이 내겐 내 삶을 설명하는 언어고, 경험이다. 그리고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 마치 이론과 무관하다고 여기는 삶, 이론과는 무관하거나 별개라고 인식하는 바로 그 삶, 그리고 삶을 그렇게 볼 수 있는 것 역시 이론을 여과한 해석이다. 이론과 삶이 별개로 있는 것이 아니라 둘을 별개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이론이고 그 이론을 체화한 언설이다.
이론을 벗어난 삶이란 없다고 믿는다. 어떤 것을 이론으로, 어떤 것을 삶으로, 그리고 어떤 언어와 이론으로 삶을 해석할 것인가란 쟁점이 있을 뿐. 모든 삶이 이론화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언어화, 이론화의 외부로 구성된 삶이나 경험, 언어화, 이론화의 내외부를 구축하기 위해 ‘은폐’된 삶과 경험 역시 존재한다. 그리고 이것 역시 이론화의 자장에서 구축된 삶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이론이고 저것은 삶이다’는 질문이나 ‘의견’이 아니라 기존 지배 지식을 반복하고 재생산하는 공모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