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이 많은 집안에서 자라다보니 20살이 된 이후로 가자 많이 들은 말은 “술을 안 마시면 사회생활을 못 한다”였다. 그러며 늘 나의 사회 생활을 걱정하는 말을 들었다. 술과 담배를 전혀 안 하는 나는 사회 생활을 할 줄 모르는 인간, 무난하게 사회 생활을 하기엔 부적합한 인간으로 독해되었다. 그래서 친척 어른을 만날 때마다 술을 권유 받고, 사양하면 한 소리를 듣곤 했다. ‘너 참 걱정이다’란 표정과 함께, 혹은 직접적 말과 함께.
세월이 흘러도 이런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명절 때마다 친척 어른을 만나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었고(안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만) 성격 나쁜 나는 특히나 걱정스러운 ‘아이’였다. 저 표정 관리 안 되는 인간, 어떡하면 좋으냐. 표정 관리가 안 된다고 욕을 먹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내게 그 시간은 엄청 스트레스 받는 시간이며 그래서 명절 자체가 싫기도 했다.
암튼 시간이 좀 더 흐르면서 술자리에서 남성 어른들이 나를 불러도 나는 그 자리에 아예 안 앉기 시작했다. 욕은 먹겠지만 그냥 그 자리에 앉을 기회 자체를 피했다. 피할 이유는 많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앉을 시간도 별로 없었다.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음식 준비나 정리, 설거지나 뒷정리 등을 하다보면 정말 바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앉을 시간이 거의 없었고, 내가 하는 일을 보며 남성 어른들도 애써 부르지는 않았다. 아니, 내가 하는 일을 봐서가 아니라 그냥 나를 포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집안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드는 ‘아이’로 찍힌 것에 가깝다.
그러고 이번에 부산에 갔을 때도 상황은 비슷하리라 여겼다.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이른바 남성 어른들은 술자리를 벌였고 여성 어른들과 함께 나는 부엌에서 분주했다. 그런데 조금은 다른 일이 발생했다. 친척 어른 중 한 분이 내게 술을 안 마시느냐고 물었고 술과 담배 모두를 안 한다고 답하자 정말 잘한다고, 정말 좋은 일이라고 답하셨다. 술 안 마신다고 칭찬 듣기는 처음이라 얼떨떨했다. 하지만 그 반응은 가늠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분의 남편은 주당일 뿐만 아니라 거의 항상 얼굴이 불콰한 상태였다. 술주정은 별로 없는 듯하지만 술을 좋아해서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장례식이나 명절 식사 자리에선 반드시 술부터 찾았다. 그러니 어쩐지 내가 술을 안 마신다는 사실에 나를 칭찬한 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경험의 의미가 바뀌면서 내 행동을 해석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물론 단 한 분의 단 한 번 뿐인 반응이니 그냥 무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채식이 웰빙 열풍으로 의미가 바뀌었듯 술을 마시지 않는 태도도 어떤 식으로건 의미가 바뀌는 순간이 오겠지. 아주 느리겠지만. 그리고 어떤 기회로 이것이 바뀔지 결코 가늠할 수 없지만.
그리하여 고민하기를 지금의 퀴어 혐오 세력과 이들에게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집단(박원순 같은 이들을 포함해서)의 태도 변화, 혹은 한국 사회 전반의 태도 변화는 언제 즈음 발생할까? 아마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리고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매 순간은 엄청 스트레스 받고 때로 고통스러운 순간이겠지. 부디 활동가들이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기를. 부디, 큰 사건이 없기를.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