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깅을 뭐할까 고민하며 E와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빈에서 사온 초콜릿 이야기는 어떻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앞으로 언제 다시 빈에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나로선 정말 드문 경험이기에 나쁘지 않은 블로깅이겠지만 이것이 결국은 소비를 통해 존재를 전시하는 것이란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일전에 어느 싸이트에서 LGBT/퀴어 관련 액세서리를 한참 구경했다. 이거 예쁘다, 이걸 착용하면 퀴어로 간지나게 전시하겠다 등. 무수하게 많은 상품과 정말 사고 싶을 정도로 잘 만든 상품. 이런 것을 착용하면 나는 나를 ‘퀴어’로 엣지있게, 폼나게, 간지나게 전시할 수 있는 것일까? 계속해서 구경하다가 어느 순간 화가 났다. 퀴어함의 전시는 어떤 식으로건 소비를 통하지 않고는 어려운 것일까? 물론 젠더표현이 이렇게 단순한 실천이 아니고, 소비를 매개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기에 이렇게 단순하게 이야기할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손재주가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뭔가 폼나는 엑세서리를 착용하려면 소비를 거쳐야 한다. (더 정확하게는 소비를 거치지 않으면서 엑세서리를 만드는 상상력 자체를 나는 잃어버렸다. 이것이 가장 문제고 슬픈 일이다. 나는 이미 소비주체다.) 장식을 소비하지 않고도 자신의 퀴어함을 얼마든지 표현하고 전시할 수 있는데, 퀴어 관련 상품은 정말로 많다. 괜히 핑크산업이겠느냐만.
한국에서 비건으로 살며 초콜릿을 먹기란 정말 쉽지 않다. 카카오 70% 이상의 씁쓸한 맛을 살펴보거나(그 중에도 우유가 들어가는 게 있다), 채식상품을 파는 곳에서 구매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후자, 채식쇼핑몰 사이트에서 파는 제품은 대체로 비싼데, 조금 과장해서 아이허브에서 파는 금액의 3배 가량이다. 체크카드가 있다면 외국에서 결제할 수 있는 카드를 발급받아서 아이허브에서 구매하는 게 훨씬 저렴하다. 다른 건 모르겠고, 비건으로 좀 잘 먹으면서 건강하면서 절약을 하고 싶다면 국내 사이트보다 아이허브를 통하는 게 더 낫다. 아무려나 누구나 외국 사이트에서 결제를 할 수 있는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란 점에서, 비건으로 초콜릿이나 다른 맛난 것을 먹기 위해선 결국 또 특정 방식의 소비를 전시해야 하는 것일까란 고민이 든다.
빈에서 구매한 초콜릿의 종류별 맛을 떠드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초콜릿을 좋아하는 나는 가끔 누군가가 한국에선 결코 구할 수 없는 비건 초콜릿을 품평하는 글을 읽을 일이 있는데 그때마다 몸이 좀 복잡했다. 이것을 지금은 제대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비건이라면 이 정도는’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때가 있달까.(‘퀴어라면 이 정도는 소비해야지.’) 사실 내가 정크비건을 고집하는 건 여러 이유가 있는데, 실제 내 입맛이 정크푸드를 사랑하거니와 건강 운운하는 글을 읽고 있노라면 추가의 노동과 더 많은 구매력을 갖추어야만 가능하단 점을 깨닫기 때문이다. 계급문제다. 나 같은 사람으로선 그런 건강한 채식 생활은 실천하기 어려운 것에 가깝다.
물론 나 역시 늘 무언가를 전시한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엔 껄끄럽고 내가 설정한 윤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일 땐 전시하지 않는 편이다. 그 한계가 무엇이며, 어떻게 규정되는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이 글이 무척 마음에 안 드는데, 너무 거칠고 또 부족함 투성이기 때문이다. 내가 제대로 고민을 안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거친 끄적거림을 남겨두면서…
딱 하나. 내가 정말 전시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글을 잘 쓰게 되어서 내 글을 전시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다. 사실 이 블로그를 통해 내가 전시하고 싶은 것, 그래서 부러움을 유발하고 싶은 것은 글이다. 하지만 나의 글은 부러움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유발할 뿐이다. 그러니 아직 한참 멀었다. 더 많이, 더 꾸준히 써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