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해선 안 되는 일

주변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앞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
ㄱ. 번역 : 번역을 잘 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번역은 영어 좀 하면 아무나 하는 일, ‘할 거 없으면’ 하는 일, 나중에 시간 나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글쓰기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듯, 아니 어떤 점에선 글쓰기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확인하기를 저는 번역을 하면 타인에게 100% 폐를 끼칠 뿐만 아니라, 그냥 번역을 하면 안 되는 인간이란 점입니다. 왜 이것을 진작 깨닫지 못 하고 이제야 깨달았는지 ㅠㅠㅠ
ㄴ. 실물 없는 상태에서 계약하기 : 원고지 최대 150매 정도의 학술지 논문이나 그 보다 짧은 분량의 원고 말고, 훨씬 긴 글일 경우 초벌 원고를 완성하지 않으면 계약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의 맨얼굴을 보는 시간이며 상대방을 엄청 괴롭히는 일이죠. 다시는 하지 않으려고요. 언젠가 ㅎㅊㅇ님이 그랬죠. “원고만 있으면 출판할 곳은 어떻게든 찾을 수 있다”고. 네, 일단 원고를 먼저 쓰고 그 다음에야 출판사를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된 순서 같아요.
+그냥 추가하고 싶은 구절
“5살에 첫 작품을 작곡한 모차르트 같은 천재를 제외하면, 대개 지식의 수준은 헌신한 노동의 시간과 질에 의해 결정된다. 사유 자체가 중노동이다. 획기적인 문제의식은 노동의 산물이다. 여기에 선한 마음이 더해진다면 인간의 기적이요, 공동체의 축복이다. 공부를 잘 하는 방법? 지적으로, 정치적으로 빼어난 글을 쓰는 방법? 책상에 여덟 시간 이상 앉아 있을 수 있는 몸이 첫째다.”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209쪽
“작가는 엄청난 양의 독서, 습작, 조사를 해야 하는 데다 삶의 매 순간이 연습이다. 좋은 글을 빨리 쓰는 사람이 있다. 비결은 연습(치열한 삶)이다. 글 쓰는 시간은 연습을 타자로 옮기는 시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292쪽
그래서 내가 허접하구나.

보리 고양이와 1년

1년 전 오늘, 저는 과감하게 바람의 동생을 들이기로 합니다. 홍대 인근에서 가기 싫다고 울던 보리를 데리고 집으로 왔지요. 아직도 기억해요. 바람은 바람대로 엄청 놀라며 이불에 숨고, 보리는 보리대로 놀라고 무서워서 베개 뒤에 숨었지요. 제가 손을 내밀어 쓰다듬으면 안심했지만요.

며칠 지나 적응하면서 이런 표정을 지었지요.

이런 작은 고양이, 아기 얼굴이 분명한 꼬맹이었죠. 뱅갈이냐는 말도 들으면서요. 🙂
그런 예쁘고 귀여운 아기 고양이는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이런 표정을 짓는 성묘로 변했습니다. 흐흐흐.
일부러 이런 표정을 골랐지요. 흐흐흐.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이런 포즈를 취했지요. 이 녀석.. 후후.

체형이 코숏과는 달라 뱃살이 붙거나 살이 많이 찌는 편은 아니지만 나름 뱃살도 좀 붙었습니다. 하지만 뱃살은 바람이죠. 후후. 바람의 뱃살. 그리고 보리는 그 쫄깃한 체형이 매력이지요. 스크래처에서 뒹굴며 놀기도 잘 놀면서요.

물론 이런 표정도 짓습니다. (포스터를 최근 것으로 바꿀까봐요.)
하지만 사실 이 표정은…

이러기 위한 준비 단계였습니다. 후후후.
1년이란 시간을 함께 했어요.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그러면서도 예쁘다고 사랑한다고 정도 많이 들었고요.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다가 뒤돌아봤을 때 보리가 박스 위에 올라와 있지 않으면 어쩐지 서운한 그런 시간입니다. 아니, 보리가 옷장에 들어가는 걸 좋아해서 옷 갈아 있을 때면 옷장에 잠시 들어가게 하는데, 그렇게 보리가 조용하고 보이지 않으면 뻔히 어디있는지 알면서도 허전함을 느낍니다.
저만이 아니라 바람도요. 열심히 싸우지만 또한 엄청 잘 놀고 때론 붙어 있기도 하죠. 바람은 보리의 성격을 배워서 조금은 담력을 키웠고 보리는 바람의 성격을 배워서 낯선 사람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도망가고 숨습니다. 여전히 보리는 화장실 청소를 할 때마다 자신의 응가하는 모습을 자랑하지만요. -_-;;; 흐흐흐.
이제까지 함께해서 기뻐요. 앞으로도 오래오래 🙂

이해하기 힘든 일

옳고 그름의 문제, 우월과 열등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태도가 있다. 예를 들어 어제 밤에 읽은, 제대로 비평글을 쓰고 싶도록 한 어느 논문(그 논문은 문화연구자 양성의 현주소를 논하고 있다)에서 문화연구가 사회과학을 포함한 분과학문에 인문학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며 인문학과 출신은 연구대상이 인문학이 아니라 사회과학에 가까워서, 그리고 글쓰기 형식이 달라서 문화연구를 하기 어렵다고 했다.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 출신은 인문학적 감수성과 성찰 능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했다. 그리하여 문화연구 논문을 작성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했다.
나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은)이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그 이후 여성학을 공부했고 석사논문은 영문학전공인 선생님에게서 썼고, 지금은 문화연구를 공부하고 있다. 어찌보면 분과학문의 양극을 전공하고 있지만 나는 이들 학문 사이에서 부대끼거나 뭔가 달라도 너무 달라서 어렵다고 느낀 적이 없다. 내겐 이들 모두가 그냥 내가 좋아하는 공부지 뭔가 낯설고 괴로운 무언가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어디 전공자는 다른 어느 전공을 익히기 어려워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 한다. (나는 그 문단에 커다란 물음표를 그려뒀다.) 그냥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공부했고 읽었던 나로선 서로 낯설어하는 태도 자체가 낯설다.
다른 말로 나는 아직도 사회과학적 연구가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동시에 사회과학적 연구라는 것과 인문학적 연구라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어떤 사람에게 나의 이런 몸은 치명적 한계일 수 있다. 학문을 제대로 모른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글을 쓸 때 왜 형식, 아니 관습부터 규정해두고 시작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냥 일단 원하는 형식으로 쓰는 것이 좋지 않나? 공부가 짧은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지점이다.
잠들기 직전의 상태인데 블로깅하려고 뭔가를 끄적이고 있다.
어쨌거나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