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가 나는 게 아니라 코에서 피가 나는 계절이다. 번역으로 엄청 스트레스를 받으며 정신이 없는 시기기도 하다. 그래서 어제 밥을 해야 했는데 잊기도 했고 정신이 없기도 해서 오늘 저녁에야 밥을 했다. 밥을 하다가 몇 년 전이 떠올랐다.
금요일 저녁이면 김밥을 몇 줄 사서 집으로 들어가선 주말 내내 냉장고에 보관한 김밥을 먹으며 살던 시기가 있었다. 오래 전이 아니라 2~3년 전의 일이다. 경우에 따라선 좀 무리를 해서 즉석밥에 비건용 볶음고추장을 비벼서 밥을 먹기도 했다. 하루에 한끼 이상을 집에서 먹었는데 늘 이런 식으로 밥을 먹었다. 어떤 주말엔 채식라면을 끓여 김밥과 먹기도 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즉석밥에 볶음고추장을 비벼서 먹는 것에 비하면 라면이 영양이란 측면에서 훨씬 좋겠다고. 언젠가 비건이라면 신선한 야채를 중심으로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지 통조림이나 즉석식품을 중심으로 먹는 정크비건이어선 안 된다는 글을 읽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정말 정크비건이었다. 지금도 정크비건이 좋고. 비건이지만 건강을 생각하는 비건은 아니기 때문에 당시의 생활 수준에 맞춰 대충 먹다보니 라면의 영양성분이 밥보다 좋겠다고 생각했다. 속쓰림 문제만 아니라면 정말 라면만 먹으로 생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경제적 여건 자체는 그때나 지금이나 거기서 거기지만 식습관이 좀 바뀌었다. 여전히 정크비건이고 정크푸드를 사랑하지만 밥을 직접 해서 먹고 있다. 밥은 대체로 아홉 가지 정도의 곡물을 혼합하기에 밥만 먹어도 건강할 것만 같달까. 반찬 역시 가급적 신선한 야채 중심으로 바뀌었고. 뭐, 쉽게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바뀐 건 온전히 E느님 덕분이다. 고양이와 함께 살며 내 몸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면 E를 만난 뒤 실제로 식생활 자체가 바뀌었다. 그리고 실제로 몸이 바뀌었다. 예전엔 수시로 어지럽고 심한 현기증을 느끼곤 했는데 지금은 이런 증상이 거의 없다. 여러 모로 건강이 좋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달까. 물론 예전에 너무 대충 먹어서 비교가 힘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몸이 좋아졌으니 다행이고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