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관련한 꿈

여러 꿈이 뒤죽박죽이었다. 한편으론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한 꿈이었다. 죽음을 직접 다루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구체적 내용은 잠에서 깨는 동시에 다 잊었지만 아무튼 그랬다. 또 다른 꿈은 세월호 유가족 중 이주노동자의 가족이 어떤 위로도, 공적 애도도 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왜 두 가지 사고가 꿈에서 동시에 등장했을까…
잠에서 깨어나 달력을 뒤적이다가 깨달았다. 양력으로 3년 전 오늘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1년 전 오늘 세월호 사고가 있었다. 이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참 빠르기도 하지.
내가 뭔가 말을 보태는 것이 면피성인 듯하며, 알리바이를 위한 도구인 듯하여 그리 내키지 않는다. 이제까지 별다른 글을 안 쓰지 않았으면서 오늘에야 하나 달랑 쓰는 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저 근래 읽은 기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다음의 기사였다.
군 입대한 세월호 생존자, 입소 전날까지 날마다 울었다
미디어오늘 | 입력 2015.04.13 11:15 | 수정 2015.04.13 17:15
http://goo.gl/0feRbb
누구의 죽음이 최우선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이해되고, 누구의 죽음이 덜 중요하거나 언급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으로 이해되는지, 어떤 죽음이 대표적 죽음으로 재현되고 어떤 피해는 침묵으로 감내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지를 질문하도록 한다. 위험한 말이란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이런 질문을 하도록 한다. 죽음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사건으로 동시에 발생한 죽음이라도 동일한 죽음이 아니란 뜻이다. 오해는 하지 말자. 유가족의 잘못이란 뜻이 아니다. 그럴리가. 죽음을 받아들이고 애도하는 방식의 문제다. 세월호 참사/사고가 어떤 방식으로 애도되었는가는 중요하게 질문할 이슈라고 고민한다. 정치권에 의해 충분히 애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온갖 모멸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애도, 국가 수장의 애도가 유일한 애도이자 가장 가치 있는 애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각종 언론에서, 그리고 이후 회자되는 방식에서 이 사건은 어떤 식으로 애도되었는가?
물론 나의 질문은 언제나 늦고, 이미 많은 사람이 이와 관련한 문제제기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냥 이런 고민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죽음에서 트랜스젠더퀴어인 나의 애도는 애도로 인정되지 못 했듯, 아니 불효와 무례함으로 인식되었듯, 세월호 사건에선 애도는 어떤 식으로 작동했을까란 질문 역시 중요하다고 믿는다. 뭐, 결국은 진부한 질문이지만.
아무튼, 슬픈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더 많은 논의와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다. 많은 사람이 느끼듯 아직은 많이 부족하니까.

LGBT/퀴어의 공통기억 만들기


E가 한 이야기, E와 나눈 이야기를 내 방식으로 변형해서 다시 쓰자면…

모월 모일은 트랜스젠더의 죽음을 애도하는 날이다, 모월 모일은 세계 LGBT혐오에 반대하는 날이다와 같은 언설과 함께 관련 행사를 한국에서도 진행하곤 한다. 전 지구적 흐름에서, 그리고 행사의 의도를 살핀다는 점에서 한국에서도 이런 행사를 진행하는 것 자체는 좋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의미를 살피는 작업 자체는 무척 중요하니까.

하지만 이런 행사의 날짜는 대부분 미국 맥락에서 나왔지 한국의 맥락에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1월 20일이 한국의 트랜스젠더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묻는다면, 나로선 잘 모르겠다. 그날 한국의 트랜스젠더 중에서 여러 이유로 삶을 그만둔 이가 있겠지만,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사건이 등장한 날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오래 전부터 나는 그런 날들이 그냥 내겐 무관한 행사처럼 다가왔다. ‘아, 외국에선 그냥 저런 행사를 하는가보다’하고.

행사의 취지와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날짜가 갖는 의미가 나로선 잘 모르겠다 싶을 뿐이다. 이를 테면 혐오반대의 날을 고 육우당이 삶을 그만 둔 날로 정한다거나, 다른 기념비적 사건이 촉발된 날로 정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하여 한국의 역사적 맥락에서, 한국의 구체적 맥락에서 그 날이 갖는 의미를 설명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이것은 최소한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행사 자체를 한국이란 지역의 맥락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피부에 더 와닿는 사건을 중심으로 제정함으로써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을 다시 기억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작업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한국의 LGBT/퀴어가 공통의 이야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한국의 많은 사람이(나 역시) LGBT 운동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혹은 운동의 기념비적 사건을 이야기할 때 너무도 자주 미국 동부에서 발생한 스톤월항쟁을 언급한다. 미국 동부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이 한국 LGBT/퀴어에게도 마치 신화적이고 역사적 사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그 사건은 그냥 미국 백인 동성애자(더 자주는 게이)가 그들의 신화적 사건으로 구성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한국 LGBT/퀴어의 기억 및 역사와 무슨 상관이겠는가? 말하는 나도, 듣는 나도 그냥 남의 나라 이야기다. 그래서 기념일을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다시 정하거나 만든다면 한국이라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LBGT/퀴어의 공통 기억을 만들 수 있다.

공통 기억이 필요한가 아닌가는 물론 별개의 논쟁 지점이다. 지배 권력에게 공통 기억은 권력을 공고하게 하는 행위지만 비규범적 존재에게 공통 기억은 저항의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공통 기억의 의미를 두고 발생하는 논쟁을 포함해서!)는 점 어느 정도 필요한 작업이다. 동시에 적어도 한국이라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글로벌 자아건 뭐건 상관없이 한국이라는 땅에 살면서 어떻게든 부딪히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것은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된다. 지금 한국 LGBT/퀴어에겐 많은 것이 없지만, 서로 기억하고 회자할 만한 공통의 기억조차 없다는 점에서 더욱 필요한 일이 아닐까…

*모바일로 쓰려니 편하진 않네.. ㅠㅠ
*다음에 다시, 좀 더 제대로 정리해서…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