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퀴어의 공통기억 만들기


E가 한 이야기, E와 나눈 이야기를 내 방식으로 변형해서 다시 쓰자면…

모월 모일은 트랜스젠더의 죽음을 애도하는 날이다, 모월 모일은 세계 LGBT혐오에 반대하는 날이다와 같은 언설과 함께 관련 행사를 한국에서도 진행하곤 한다. 전 지구적 흐름에서, 그리고 행사의 의도를 살핀다는 점에서 한국에서도 이런 행사를 진행하는 것 자체는 좋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의미를 살피는 작업 자체는 무척 중요하니까.

하지만 이런 행사의 날짜는 대부분 미국 맥락에서 나왔지 한국의 맥락에 붙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11월 20일이 한국의 트랜스젠더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묻는다면, 나로선 잘 모르겠다. 그날 한국의 트랜스젠더 중에서 여러 이유로 삶을 그만둔 이가 있겠지만, 정치적으로 의미있는 사건이 등장한 날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오래 전부터 나는 그런 날들이 그냥 내겐 무관한 행사처럼 다가왔다. ‘아, 외국에선 그냥 저런 행사를 하는가보다’하고.

행사의 취지와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날짜가 갖는 의미가 나로선 잘 모르겠다 싶을 뿐이다. 이를 테면 혐오반대의 날을 고 육우당이 삶을 그만 둔 날로 정한다거나, 다른 기념비적 사건이 촉발된 날로 정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하여 한국의 역사적 맥락에서, 한국의 구체적 맥락에서 그 날이 갖는 의미를 설명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이것은 최소한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행사 자체를 한국이란 지역의 맥락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피부에 더 와닿는 사건을 중심으로 제정함으로써 한국에서 발생한 사건을 다시 기억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작업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한국의 LGBT/퀴어가 공통의 이야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한국의 많은 사람이(나 역시) LGBT 운동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혹은 운동의 기념비적 사건을 이야기할 때 너무도 자주 미국 동부에서 발생한 스톤월항쟁을 언급한다. 미국 동부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이 한국 LGBT/퀴어에게도 마치 신화적이고 역사적 사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지만 그 사건은 그냥 미국 백인 동성애자(더 자주는 게이)가 그들의 신화적 사건으로 구성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한국 LGBT/퀴어의 기억 및 역사와 무슨 상관이겠는가? 말하는 나도, 듣는 나도 그냥 남의 나라 이야기다. 그래서 기념일을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다시 정하거나 만든다면 한국이라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LBGT/퀴어의 공통 기억을 만들 수 있다.

공통 기억이 필요한가 아닌가는 물론 별개의 논쟁 지점이다. 지배 권력에게 공통 기억은 권력을 공고하게 하는 행위지만 비규범적 존재에게 공통 기억은 저항의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공통 기억의 의미를 두고 발생하는 논쟁을 포함해서!)는 점 어느 정도 필요한 작업이다. 동시에 적어도 한국이라는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글로벌 자아건 뭐건 상관없이 한국이라는 땅에 살면서 어떻게든 부딪히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것은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된다. 지금 한국 LGBT/퀴어에겐 많은 것이 없지만, 서로 기억하고 회자할 만한 공통의 기억조차 없다는 점에서 더욱 필요한 일이 아닐까…

*모바일로 쓰려니 편하진 않네.. ㅠㅠ
*다음에 다시, 좀 더 제대로 정리해서… ㅠㅠㅠ

퀴어락의 “한국 트랜스젠더 인권운동 20년” 전시회와 트랜스젠더 관련 자료 기증

며칠 전 트위터로 간단하게 홍보했지만(http://goo.gl/am8Nbp), 2015년 6월 13일 토요일에 진행하는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의 부스 행사에서 퀴어락은 ‘트랜스젠더 삶의 조각보 만들기’와 함께 “한국 트랜스젠더 인권운동 20년”이란 주제로 전시회를 열 계획입니다.

한국에서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분명하게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최근엔 “한국의 트랜스젠더 운동은 2013년에 시작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1993년 사람들이 모여 운동을 시작할 때 게이와 레즈비언만이 아니라 양성애/바이섹슈얼과 트랜스젠더도 함께 했습니다. 그러니 1993년은 한국의 동성애인권운동이 아니라 LGBT 인권운동이 시작된 해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더 정확합니다. 그리고 몇 년 뒤 1996년 10월, 몇몇 활동가가 ‘한국 트랜스젠더 & 크로스드레서 단체 아니마’를 설립합니다. 트랜스젠더와 크로스드레서 이슈에 초점을 맞춘 운동의 시작입니다. 단체의 대표는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하며 트랜스젠더 이슈를 적극 제기하였습니다.

‘트랜스젠더 이슈에 초점을 맞춘 운동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라는 질문에, 현재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은 아니마가 설립된 1996년인 듯합니다. 물론 퀴어락의 상근 아키비스트인 저는 지금은 잘 모르고 있는 자료를 발굴하여 트랜스젠더 운동의 역사, 그리고 한국 LGBT/퀴어 운동의 역사를 1990년대 이전으로 다시 쓰고 싶어 합니다. 1990년대 후반에 생산된 한 문서는 1980년대 후반을 운동의 시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니 끊임없는 자료 발굴이 필요합니다. 그저 현재 알고 있는 수준에서 트랜스젠더 이슈에 초점을 맞춘 별도의 인권운동이 등장한 시기는 1996년 정도입니다.

조각보의 도움을 받아, 퀴어락은 1996년부터 햇수로 20년이 되는 올해까지의 트랜스젠더 인권운동의 역사를 전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현재 퀴어락엔 트랜스젠더 인권운동과 관련한 기록물이 여럿 등록되어 있습니다. 등록대기 중인 자료도 여럿 있고요. 일단은 퀴어락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를 중심으로 전시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현재 퀴어락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퀴어락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는 퀴어락 상근자와 운영위원이 알고 있고 수집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모은 것들이니까요. 그리고 저희가 모르는 더 많고, 풍부한 자료가 존재합니다. 퀴어락에서 계속해서 수집작업을 진행하겠지만 그럼에도 한계는 분명하게 존재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여러분께 도움을 청할까 합니다. 혹여나 여러분께서 소장하고 있는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각종 자료를 저희 퀴어락에게 기증해주실 수 있을까 하고요. 자료의 성격, 중요도 등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지금 보기엔 아무리 사소해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중요한 자료가 되니까요. 개인기록(일기), 옛날 잡지, 기사, 신문 기사, 회의록, 학위논문, 학술지 논문, 잡지에 실린 글, 단행본, 만화책, 사진, 어느 행사에서 구매한 트랜스젠더 관련 악세서리, 팜플릿, 트랜스젠더 관련 행사에 참여해서 녹음한 음원, 여러 종류의 영상 파일, 포스터, 현수막 등 종류를 가리지 않습니다. 여러분께서 보관하고 있는 자료 하나하나가 여러분에게 소중하기에 선뜻 기증하겠다고 결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자료 하나가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다시 쓰는데 매우 소중한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감히 부탁드립니다.

보내주시는 방법은…

-공식이메일: queerarch1@gmail.com

-우편(착불!!!): (우) 121-820 서울특별시 마포구 월드컵로17길 45 2층 퀴어락담당자

*혹여나 보내기 전 고민이시면 이메일로 연락주세요. 궁금하신 점, 자료 관리 및 보안 등 다양한 궁금함이 있을 텐데 상세하게 답변드릴게요.

이 글(http://queerarchive.org/bbs/161880)을 참고하셔도 되고요.

색약, 적녹색약과 청황색약

갑자기 속이 쓰려서 블로깅을 하기 힘드니 대충…
이 기사를 읽으며, 내가 지하철 노선도를 볼 때마다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지를 깨달았다. 무슨 구분이 가야지… -_-;;; 그런데 나로선 재밌는 게, 늘 불편하고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 불편했는데 이것이 불편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암튼 이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확인한 사실은 내가 적녹색약일 뿐만 아니라 청황색약이란 점이다. 색약 관련 많은 글이 이렇게 자세하지 않아서 몰랐달까. 예시로 나온 다섯 가지 검사지 중에서 1, 3, 4, 5번 모두 못 읽어냈다. 1번은 21이 보일 때도 있고 안 보일 때도 있다. 5번은 아예 아무 것도 안 보인다. 색깔의 난수표 같달까. 트랜스젠더고 뭐고 상관없이 일단 대한민국 인구 대비 0.3% 확정. 후후.
그나저나 나의 입장에서, 저런 색깔의 난수표 같은 검사지에서 1, 3, 4, 5번의 숫자가 보인다는 게 더 신기해. 어떻게 그게 보이지? 어떻게 그렇게 볼 수 있지?
그러니까 나의 색약이 꼭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같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