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이라는 것

SNS 이후 무척 많은 사람이 맥락을 무시하는 말하기, 자신의 의견을 직접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하기(단순 리트윗, 좋아요, +1 등)에 익숙해진다는 SNS 이후의 말하기, 글쓰기는 어떻게 바뀔까? 다른 말로 맥락을 무시하고, 혹은 맥락을 설명하는 것을 귀찮아하며 말하는 방식에 익숙해진 다음에도 여전히 맥락을 꼼꼼하게 말한 다음에 조밀하게 말하는 사람은 이른바 ‘아날로그 vs 디지털’이란 구분에서 ‘아날로그’로 분류될까? 아니면 말하기와 글쓰기는 여전히 어떤 표현의 욕망이기에 여전히 맥락을 짚으며 꼼꼼하게 접근하는 태도는 여전히 중요할까? 별 의미없는 헛된 질문이지만, SNS가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람들의 일상에 침윤할 때, 말하기 방식과 글쓰기 방식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럴 때 ‘맥락’은 어떻게 사유될지 궁금하다.
이 질문의 또 다른 측면은 만약 권리 개념, 인권 개념, 자유 개념 등이 내가 상상하기 힘든 방식으로 유통되는 현재 상황(가해를 할 권리, 혐오 발화를 할 자유 등)에서 각 개념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란 고민을 가끔 한다. 맥락이 무시되는 시대에 정치하게 설명하는 글, 그러니까 맥락화하고 맥락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어떤 의미일까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독해는될까? 읽히기는 할까?
글을 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맥락이 자꾸만 사라지는 상황, 무시되는 상황에서 ‘맥락’을 어떻게 사유해야 할지 고민이다.

부끄럽다는 말이 부끄럽다: 단조롭고 부끄러운 글

내가 비건이라는 점과 한국인이라는 점과 트랜스젠더퀴어란 점과 어쩌면 레즈비언일 수도 있다는 점과 장애인인지 비장애인인지 잘 모르겠다는 점과 절대적 기준으론 가난한 편인데 현재 생활 자체는 가난하다고 하기 어렵다는 점과 범죄 이력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는 점과 어렸을 때의 계급 경험으로 아직도 서비스를 받는 것이 어색하고 낯설다는 점과 그리고 또 이런저런 경험을 나는 내 글에서 얼마나 잘 엮어 내고 있을까? 나는 늘 이 모든 이슈를 내 글의 일부에 엮어 내려고 애쓰고 있지만 오늘 E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전히 나는 이 모든 것을 따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아니, 의심할 필요도 없이 그냥 따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단언할 수도 있다. 젠더가 상황이라면 그 상황을 직조하는 무수하게 많은 경험을 같이 이야기해야 하는데 나는 별로 안 그런 듯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반성하기엔, 습관적으로 반성만 하고 있다. 뭔가 글쓰는 방식, 내가 사유하는 방식을 의도적으로 바꿔야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