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길게 6~7시간 정도를 푹 자고 하루는 두어 시간을 자면 잠에서 깨어나선 더는 잠들 수 없는 날의 반복이었다. 이틀에 10시간 정도를 잤다. 마지막 날도 두어 시간 정도 잠들었다가 깨어나선 더는 잠들지 못 했다. 잠들기 전에 짐 정리를 거의 다 했기에 씻고 마무리만 하면 그만이었다.
빈/비엔나 시간으로 새벽부터 E와 행아웃을 하며 출국하기 전 마지막으로 어디에 갈 것인가를 이야기했다. 게이*레즈비언 서점을 한 번 더 갔다가 공항에서 그렇게까지 멀지는 않은 곳에 있는 러빙헛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을 세웠다. 여행용 가방이 상당히 무거워서 좀 힘들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정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일기예보로는 그저 흐림이지만 창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짐이 무거워서 날이 좋아야 그나마 돌아다닐 수 있는데 비라니… 결국 새벽에 새로 짠 일정을 모두 포기했다. 11시 즈음 체크아웃을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빈/비엔나의 대중교통은 시민의 양심을 믿는 시스템이라고 전에 말했다(이것은 ㅈㅇ님이 듣고 전해준 이야기다). 대신 불시에 검사를 하는데, 출국할 때까지 검사를 받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S-Bahn을 타고 이동하다가 어느 역에서인가 처음으로 티켓 검사를 받았다. 티켓 검사는 불시에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티켓 검사 중에 내리거나, 이미 검사를 하고 난 칸에 탄다면 검사를 받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다. 정말 무작위였고 불시였다. 뭔가 흥미로운 순간을 확인하며 별 문제 없이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발권까지 남은 시간은 3시간. 하하.
식당에 가서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실까 했지만 딱히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비싼 공항에서 무언가를 사먹고 싶지 않아서 의자에 앉아 케이트 본스타인의 [젠더 무법자]를 읽으며 발권 시간까지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발권. 그런데 발권하는 곳의 직원이 계속해서 “마담~”이라고 불렀다. 호호호. 왜지? 특별히 여성성을 수행하지도 않았고 외모에 신경을 쓰지도 않았는데? 문제는 이게 아니라 여행용가방 무게가 20kg을 초과해서 보조가방에 짐을 빼야 했다. 호텔에서부터 짐을 나눌 것을 예상하고 가방을 쌓지만 그럼에도 정신이 좀 없었다. 발권을 하고 바로 게이트로 이동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 인천공항의 경우 게이트로 가는 문 앞에 직원이 대기하고 있다가 직원이 여권과 티켓을 확인한 다음 티켓을 직접 바코드 기기에 찍었다. 그러고 나면 바로 보안 검색을 받는다. 보안 검색을 받고 나면 바로 법무부의 출국 심사를 받는다. 이 모든 절차가 끝나고 나면 면세점이 나오고 각 게이트가 나온다. 게이트에서 마지막으로 여권과 티켓을 검사하고 티켓팅을 한 다음 비행기에 탑승한다.
반면 오스트리아의 빈공항/비엔나공항의 경우 발권을 하고 나면 별다른 여권 검사 없이 직접 티켓을 기기의 바코드에 찍고 통과를 한다. 그럼 바로 면세점이 나온다. 면세점을 적당히 잘 지나가면 출국 심사를 받는다. 여권에 도장을 받고 나면 다시 면세점과 음식점이 나온다. 그리고 비행기에 탑승하기 1시간 전에 보안 검색을 한다. 보안검색을 하고 각 게이트의 대기실에서 잠시 대기하다가 마지막 티케팅을 하고 나면 탑승.
여권 도장을 찍고 마지막 면세점 및 음식점이 있는 곳에서 약간의 허기로 무언가를 먹어야 할 것 같아 카페로 가서 과일샐러드를 주문했다. 그런데 나를 본 직원 두 명 모두가 “마담~”이라고 불렀다. 호호호. 왜죠? 빈/비엔나 사람에게 나의 외모는 “써~”보다는 “마담~”으로 부르기에 더 무난한 스타일인 것일까? 그러고 보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돌아다닐 때면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쟤는 뭐지?’라는 표정을 짓는 사람을 여럿 만났다. 노인일 경우도 있고, 젊은 사람일 경우도 있고, 이제 초등학생일 법한 경우도 있었다. 아무려나 “마담”은 자리에 앉아 과일 샐러드를 먹으며 쉬었다. 백팩에도 짐이 한 가득이었고(여행용가방 무게를 줄이려고 각종 자료를 백팩에 담았었는데 백팩엔 노트북도 있었다) 추가로 빼낸 옷가지와 책 종류로 어깨가 내려앉을 수준이었다.
탑승을 하고 이륙한 다음 가벼운 저녁이 나왔다. 귀국 비행에서 가장 맛난 음식이었는데 그것은 샌드위치. 물론 그 자체로 맛났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귀국 중에 먹은 비행 음식 중 가장 맛났을 뿐… 얼추 한 시간을 날아서 스위스의 취리히에 도착했다. 내려서 인천행 게이트로 가기 위해 다시 보안 검색을 받았다. 취리히는 경유지일 뿐이라 보안 검색이 더 없을 줄 알았는데 있어서 귀찮았다. -_-;;; 보안 검색대를 지나고 나니 다시 면세점. 많은 한국인이 면세점에서 물건을 샀고 나 역시 구경했지만 특별히 사지는 않았다. 돈도 없고 짐이 무겁기도 해서. 얼추 한 시간 가량을 기다렸다가 탑승. 현지 시간으로 밤 9시를 넘어 10시 즈음에 저녁이 나왔다. 음… 맛없어. -_-;;; 간이 너무 싱거워서 비건채식을 주문했는데 건강채식을 받은 기분이었다. 나는 정크비건이라고. -_-;;; 밥을 먹고 곧바로 잠들었고 한참을 자다가 일어나서 책을 좀 읽다가 하며 시간을 때우다보니 또 한 번의 밥이 나왔다. 음… 맛없어. 역시 간이 싱거웠다. 버섯볶음 같은 것이 나왔는데 그냥 소금간 같은 것 없이 그냥 볶기만 한 것 같은 맛이었다. 빈으로 갈 때의 기내식-서양식완전채식은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왜지…
아무려나 무사히 인천으로 도착했고 E를 만나 반갑고 즐거운 인사를 나누고 같이 저녁을 먹으며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함께 본 다음 집으로 왔다. 집에 오니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고양이 두 마리가 냥냥거리면서 화내는 소리를 들으니, 정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또 빈으로 여행가고 싶다. 비건을 위한 마켓이 있고 어떤 식당에서도 비건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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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빈에서 찍은 사진을 중심으로 블로깅을 할(때울)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