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주체가 된다는 것: 트랜스젠더 구금시설 기사와 연결해서

블로그가 해커에 납치되어 영문이 나옵니다. 놀라지 마시고 그냥 지나가세요.
“3 Years of Torture Is Enough”: A Transgender Inmate Sues Georgia Prisons
Summary:
Early this year, 36-year-old Ashley Diamond, a transgender woman locked up at a men’s state prison in Georgia, initiated a lawsuit on the Georgia Department of Corrections(GDC). She had been taking estrogen treatments etc for 17 years. But she had been denied hormone therapy since entering the prison system in 2012. Federal prisons are required to provide inmates with individualized medical care, including hormone therapy, but at the state level it’s a different story. In Georgia’s case, if prison medical staff do not diagnose someone with gender dysphoria and recommend hormone therapy immediately upon incarceration, the inmate cannot later begin treatment. During Diamond intake processing, prison medical staff did not comply with her requirement. So prison officials did and could not initiate hormone therapy. As a result, she detained in men’s facilities, was sexually assaulted at least seven cases, and has tried to kill herself at least three times and castrate herself four times. And she frequently faced harassment from prison officials. She sued for the GDC’s refusal to provide hormone therapy and protect Diamond from harm violated the Eighth Amendment’s ban on cruel and unusual punishment. Diamond said that her lawsuit is more than just about hormone care and it is about gross human rights violations.
Opinion:
I’m really so sad. This news is placed an intersection between transgender issues, such as gender bipolar system, gender expression, gendered recognition, and gendered detention facilities and inmate’s treatment issues in prison. I want to know that laws and policies really help social minorities when the judicial laws are at odds with cultural understandings(as cultural norms). Of course, they sometimes help social marginals, so Diamond sued for the GDC’s officials. But they only help subjects within/of law. And the gaps between judicial laws and cultural norms always exist. So I don’t know why 법과 제도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강조되는지…
요즘 영어 수업을 듣고 있어서 숙제로 작성했습니다.
전자는 기사 요약.
요약을 다시 요약하며 정리하면… 미국 mtf/트랜스여성 다이아몬드가 자신을 구금한 조지아주의 조지아교정국을 고소하였다. 다이아몬드는 어릴 때 젠더경합 진단을 받았고 17년 간 호르몬 조치를 취했지만 2012년 교도소에 들어가면서 호르몬 투여를 계속할 수 없었다. 미국 연방구금시설은 호르몬 조치를 포함해서 개별 의료적 조치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지만 주립구금시설은 주의 규정에 따라 다르다. 조지아주는 구금할 때부터 호르몬을 투여한다면 계속할 수 있지만, 다이아몬드가 구금될 당시 구금시설 의료담당자에게 호르몬 투여를 요구했음에도 무시되었다. 그리하여 조지아주는 다이아몬드가 호르몬을 투여하도록 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남성구금시설에 구금되고 다양한 폭력 피해를 여러 번 겪었고 여러 번의 자살 시도가 있었다. 교도원의 지속적 괴롭힘도 있었다. 그리하여 다이아몬드는 고소를 했고, 다이아몬드는 이것을 단순히 호르몬 투여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 침해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의견은…
영어 작문 판본은 무시하고… ㅠㅠㅠ 의견을 쓸 수가 없어… ㅠㅠㅠ 쓰다가 후반부에 무너진 흔적이 있습니다. 냐하하 ㅠㅠ
일단 구금시설 직원과 정책을 마련한 이들을 실컷 욕하고, 다이아몬드의 고통에 괴로워하면서… 나의 질문은 간단한데 법과 정책이 정말로 사회적 소수자를 도울 수 있는가다. 법이나 정책은 사전 예방의 성격보다는 사후 약방문의 성격에 더 가깝기도 하다. 법과 제도가 있다고 해서 폭력 피해가 사라지지도 않고 무화되지도 않는다. 사법의 규범과 문화적 규범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존재하며 사법의 규범과 문화적 규범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법은 법의 주체만을 보호한다. 법이 호명하는대로 반응하는 주체, 법에 포섭되길 선택한 주체만을 보호한다. 다른 말로 법이 보호하길 포기했거나, 고려하지 않는 주체, 법의 주체가 되길 거부한 존재는 사각지대에 남는다. 이럴 때 법과 제도를 중심으로 운동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 나는 법과 인권에 호소하는 언설이 무척 위험하고 규범적이라고 판단한다. 공익법 운동은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하고 이것은 분명 중요한 운동이지만, 이것이 운동의 핵심이 되어서는 안 되고 법으로 시민의 의미를 구성해서도 안 된다고 믿는다. 그러기 전에 법의 주체가 된다는 것, 법에 호명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밀하게 살피는 작업이 필요하다. 법철학을 공부해야 하나… ㅠㅠㅠ
(한국의 LGBT 활동가나 비활동가 중에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그들 중 한두 명만이라도 법철학을 논해주길 바라지만 내가 인지하는 수준에서는 아직 없는 듯하다.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혹시나 있다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열렬하게 응원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 따위의 응원이 무슨 소용이겠느냐만..)

맥락적으로 사유하기

퀴어인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다. 이성애자-비트랜스젠더와 다르지 않다.
이 문장. 지금 한국에서 매우 익숙하게 듣는 정서라고 느낀다. 한국 사회에서 이 말을 동화 정치라고 독해할지 전복 정치로 독해할지는 어려운 문제다. 내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는 ‘튀지 않음’을 미덕으로 여긴다. “남들 하는 만큼만 해”를 강요하고 “남들처럼 살라”가 가장 중요한 처세술로 회자된다. “퀴어도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 똑같은 사람이다”라는 언설은 정확하게 이런 맥락에서 이성애-비트랜스젠더로 동화하는 정치인 동시에 같을 수 없는데도 같다고 주장함으로서 “남들”의 의미를 흔들어버리는 교란 정치기도 하다. 어떻게 독해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정치적 위상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나는 퀴어 정치, 퀴어 운동에서 필요한 작업은 어떤 행위를 진보다, 보수다, 동화다, 급진이다와 같은 식으로 평가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 나 역시 이런 식으로 평가를 한 적이 많기에 크게 반성할 일이기도 하다. 이런 매우 단순한 판단은 사실 아무 것도 사유하지 않는 것이며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나는 어떤 행위의 의미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그것을 충분히 설득력 있게 설명하는 작업이 풍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늘 나의 과거를 반성하고(정말 많이 잘못했다) 여전히 단순한 평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 하는 나 자신을 비판한다.
사건을, 발언을 다각도로 접근하자는 이 진부한 주장은 시간이 지날 수록 접하기 어려운 일로 변하는 듯하다. 맥락적으로 사유함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이 갈 수록 늘어나는 것만 같은 건, 역시나 자신의 의견을 가감 없이 실시간으로 표출할 수 있게 변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맥락이 사라진 시대, 혹은 더 이상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시대여서 그런 것일까? 모르겠다. 그저 의심과 의문만 남을 뿐.
나는 늘 내가 부족하고 제대로 못 한다고 평가한다. 어떤 사람은 이것이 괜한 호들갑이라고 말하지만 진심이다. 그럼에도 나는 한 가지 잘한 일이 있다고 믿는다. 5~6년 전 많은 사람이 트위터를 사용하기 직전에 트위터를 관둔 것, 페이스북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잘 한 것이 있다. 블로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나의 부끄러움이 맥락적으로 쌓이고 있어서 폐쇄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힐 때가 자주 있지만, 그럼에도 전후 맥락을 설명하면서 글을 쓰고자 노력하는 블로그만 사용한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더 정확하게는 가급적 맥락적으로 글을 쓰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의 무식을 즉각, 실시간으로 표출하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매일 나의 무식과 오만과 부끄러움을 올리고 있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인가…

퀴어-트랜스젠더-페미니즘 전문 번역…

영어로 글을 두 편 써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물론 나는 영어로 글을 쓸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에 나는 단지 한국어로 글을 쓴다. 그리고 한영 번역 전문기관에 의뢰를 해서 영어로 바꿔야 한다. 그 다음 제대로 번역이 되었는지 검토를 해야 한다.
나의 걱정은 번역에 있었다. 글을 쓰는 것이 주는 걱정이야 늘 겪는 것이고 내 일상이니 문제가 아니었다. 물론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을 독자로 삼는 글쓰기에 비하면 더 많은 긴장을 느꼈다. 나의 글은 현장 보고서와 이론적 탐문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걱정은 트랜스젠더 연구 논문, 퀴어 연구 논문, 페미니즘 연구 논문을 충분히 잘 번역해줄 곳을 찾는 것이었다. 미묘하고 복잡한 논의 지형을, 퀴어 논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번역한다면 얼마나 어떻게 할까? 궁금했다. 걱정이 가득하다.
그래서 번역 전문 업체 중에 퀴어트랜스페미니즘 이슈를 다루는 논문을 영어나 여타 다른 외국어로 번역해줄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었다. 내가 영어를 못 해서 품는 고민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문화번역의 문제기도 하다. 한영 번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E와 종종 이야기를 하는데, 퀴어트랜스페미니즘 관련 논문이나 단행본을 전문으로 영한 번역 혹은 다른 여러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 한국 사회에 공유하면 정말 좋을 많은 지식이, 영어를 읽을 수 있고 공부를 하고자 하는 소수의 연구자만이 읽고 그 지식을 독점하고 있다. 심각한 문제다. 지식의 독점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선 많은 것을 해야 하는데 그 중 하는 번역 작업이 필수다. 하지만 퀴어 관련 단행본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곳은 수익을 장담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번역자, 편집자, 그리고 많은 사람의 임금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늘 헛된 꿈처럼, 망상처럼 나누는 이야기다.
아무려나 퀴어-트랜스-페미니즘 관련 논문이나 단행본을 전문으로 번역하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