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를 보관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데다 그것을 정리하고 전시하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다. 퀴어락 홈페이지 관련 이야기다. 어제부터 홈페이지에 파일 업로드가 안 되어서 확인하니 서버의 하드 용량이 다 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두 가지 고민을 했다. 하드 용량만 추가 구매를 할 것이냐, 아예 상위 서비스로 업그레이드를 할 것이냐. 용량만 추가 구매하기엔 장기적으로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운용한다는 측면에서 좀 아쉬운 면이 있다.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기엔 퀴어락의 재정에 부담이었고 무리였다. 자칫 적자가 날 상황.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외부링크로 돌리기로 했다. 퀴어락용 지메일 계정이 있고 자료 백업을 위해 대용량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좋은 대안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드는 고민. 홈페이지를 이렇게 분산해서 관리해도 괜찮은 것일까? 물론 자료의 보관과 관리라는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좋은 건 완벽하게 복제된 자료가 두 곳 이상에서 보관되는 것이다. 아카이브의 역사를 보면 종종 동일한 문서를 두 곳에서 관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어느 한 곳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곳의 자료로 복원하거나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복수의 곳에 자료를 보관하는 일, 이것을 관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생각을 해보면, 홈페이지와 퀴어락 구글계정, 퀴어락 서고는 모두 퀴어락의 자료를 복수로 보관하는 곳이다. 문제는 이것이 완벽하게 겹치지 않는다는데 있다. 완벽하게 겹칠 수도 없다. 그리고 서로는 얽혀 있다. 이럴 때 어떻게 자료를, 기록물을 잘 관리할 수 있을까? 분산되어 있는데, 분산되어 있어서 서로를 검토할 수 있다는 점에선 분명 강점인데 그럼에도 서로는 완벽하게 겹치진 않기에 뭔가 좀 불안한 느낌이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분은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싶을 것이다. 그냥 걱정 아닌 것을 걱정으로 만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민은, 어떻게 하면 자료와 기록물을 더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을까다.
이것저것 먹은 것들
그냥 문득 사진을 정리할 겸, E의 추천을 받은 블로깅!
요즘 집에서 먹고 있는 밥입니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제가 반찬을 대충 먹다보니까 밥으로 영양분의 상당 부분을 보충하고 있달까요…
남부터미널에 가면 비건식당이 있습니다. 이날 새벽부터 집을 나서서 강의를 하고, 오후에 약속이 있어 점심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E가 알려줘서 찾아 갔습니다. 채식하는 사람들 중에선 유명한 것 같은데, 이것만 먹어선 특별히 찾아갈 정도의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은 식사였습니다. 무엇보다 남부터미널에 비건식당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달까요. 앞으로 그 근처에 자주 갈 예정이라 무척 소중한 정보!
이태원의 카페 플랜트에서 먹은 파스타! 정말 맛났습니다. 직접 만든 듯한 빵, 그리고 팔라펠도 무척 맛났지요.
신촌 러빙헛에서 먹은 쌀국수. 러빙헛에서 쌀국수는 좀 복불복인데 이 날은 맛이 개선되었는지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짬뽕은 최근 맛이 좀 별로인 듯해서 아쉽고요.
역시 비건 쌀국수는 남성역에 있는 러빙헛 티엔당점이지요.
원래 다른 곳에 가려 했지만 어찌하여 찾은 홍대 근처 비건버거 파는 곳. 기대 반 염려 반으로 갔는데 맛났습니다. 양이 좀 적다는 것만 빼면요(제가 좀 많이 먹지만요). 그래도 가끔 찾아갈 듯합니다.
몇몇은 E와 같이 같지요. 흐흐흐.
비건 음식 파는 곳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그리고 비건 식당을 표방하지 않아도 비건으로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곳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제가 자주 가는 신촌의 경우 러빙헛을 제외하면 비건으로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지요. 아쉬운 일이고요.
LGBT/퀴어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늘 가시적이었다
자료를 계속해서 찾다보면 깨달을 수밖에 없는데, 최소한 근대 이후 혹은 1900년대 들어 한국에서 LGBT/퀴어를 염두에 두지 않은 시기는 없다는 점이다. 변태는 늘 등장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들을 꾸준히 신경 쓰고 있다. 석사학위논문에서였나, 다른 글에서였나, 한국의 LGBT/퀴어는 한국 사회에 빈번하게 등장하지만 매번 마치 처음 일어나는 일이라는 듯 대하는 반응을 두고, 비규범적 존재를 대하는 지배규범의 규범적 태도라고 썼다. 그땐 단편적 몇 가지 흔적만으로 이렇게 추론했는데, 자료를 찾을 수록 정말 그렇다는 것을 확인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비규범적 존재를 지배규범이 인식하는 방법, 안착시키는 방법이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 존재함은 인정하고, 사회적 구성원이라는 점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포용하지는 않겠다는 태도 말이다.
물론 나의 이런 추론은 틀렸을 수도 있다. 자료를 더 찾고, 더 꼼꼼하게 읽다보면 또 다른 무언가를 깨닫을 테니까. 늘 낯설고 당혹스러운 존재로 표현하면서 변태 혹은 LGBT/퀴어를 꾸준히 받아들이고 있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더욱 복잡할 것이란 걸 깨닫는 날이 오겠지.
그나저나 옛날 자료를 찾다보면 당혹스러운 점. 번역서인데 도저히 원저자의 영어 표기를 유추할 수가 없다. 저작권 계약 없이 해적판을 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시기라서, 원래 언어도 표시가 안 되어 있다. 끙… 이럴 때 이 자료는 믿을 수 있는 자료일까? 신빙성을 어떻게 따져야 할까?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