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언제나 역사가 된다. 물론 모든 사건이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옛날 신문을 통해 ‘오늘날’과 과거의 상황을 견주는 책을 살폈다. 표지엔 “어느덧 역사가 되어버린 그 시절의 사소한 이야기들”이라고 적혀있다. 1950년대부터 2002년까지의 신문기사를 살피는 이 책은 때때로 1990년대 신문기사도 옛날 기사로 살핀다. 그리고 책이 나온지 1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 책 자체를 과거 기록으로, 혹은 ‘역사’ 기록으로 살핀다. 역사/과거를 살피겠다는 책을 다시 역사 기록 혹은 과거 기록으로 살피는 일. 그러니까 모든 현재는 역사의 일부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일부다.
그래서 예전 기록을 살피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이 책을 쓴 저자는 분명 당시의 ‘현재’ ‘오늘날’ ‘지금’이라는 시간 감각으로 글을 썼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책이 그러하듯 출판되는 순간부터 이미 과거의 기록이 된다. 저자는 현재를 말하고 있지만, 나는 과거를 읽는다. 자, 이때 시간은 무엇이고 시간성은 어떻게 구성될까? 과거와 현재가 ‘지금’이라는 순간에 만날 때 시간 개념은 복잡해진다. 아니, 결코 단순한 적 없는 시간 개념의 복잡성이 이런 순간에 두드러진다.
그나저나 이 책 재밌다. 2002년에 출판되었으니 하리수 씨와 홍석천을 다뤘다. 하리수 씨를 다루는 부분에선 오류가 있지만 그럼에도 ‘사회적 소수자에게 폭력적/억압적 편견을 일삼는 지배 규범의 재현 장치’를 지적한다. 오오. 홍석천을 이야기할 땐 매카시 등을 언급하며 부정적 편견 따위 잘라버리라고 말한다. 오오. 관점이 의외로 상당히 괜찮다. 2002년이면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다. 지금은 인권과 관용을 들먹이며 좋은 게 좋은 거란 식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아무 것도 문제 삼지 않고 훈장처럼 무난한 소리만 하려는 경향도 있다. 물론 이런 ‘무난한’ 말도 논쟁적이라 슬프지만. 하지만 2002년이면 상황이 또 다르다. 인권과 관용을 일상적으로 들먹이던 상황도 아니었다고 기억하고 저자의 논점이 (이 정도면 의외로)괜찮다.
(박사논문 자료로 구한 책인데 그냥 조만간에)퀴어락에 등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