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온뒤무지개재단 – 이반시티 퀴어문화기금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 이반시티 퀴어문화기금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해요!
(난 이제 지원할 수 없겠지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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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ainbowfoundation.co.kr/

이반시티 퀴어문화기금은 한국 최대의 게이 커뮤니티 사이트인  이반시티닷컴( http://www.ivancity.com/ )에서

성적소수자의 문화가 더 발전하고 풍요로워지길 바라며, 작지만 소중한 움직임들을 지원하기 위해

2,000만원을 쾌척하여 조성된 지원 사업입니다.
자유 공모 분야와 기부자 지정 분야로 나뉘어서 시행되며 자유 공모 분야는 총 800만원의 규모이며,

일 년동안 다양한 활동이 여러 시기에 펼쳐지는 것을 고려해 언제든 지원하실 수 있도록 2월, 6월, 9월 세 차례로 나누어 공모를 실시합니다.

아래 첨부된 신청 양식을  다운로드 받으신 후, 신청서를 작성하신 후 이메일로 마감기한 내에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이후 배분위원회의 회의를 통해 선정이 되며,

이 과정에서 신청자들과 서면 혹은 전화 등으로 신청서의 내용을 문의하거나 확인하는 절차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신청 자격 : 성적소수자 문화 관련 단체 및 모임, 개인
지원 내용 : 활동지원금 50만원 4팀(인), 100만원 1팀(인)
(* 지원 현황과 심사 결과에 따라 총 300만원 내에서 50만원과 100만원 선정의 수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접수 기간 :  2.1 ~ 2. 20
선정자 발표: 3월 1일
기금 사용 기간 : 2015년 3월부터 2015년 12월 30일전에 완료되어야 함.
기금 선정 시 준수 사항
      – 기금에 선정되신 분들을 위한 내부 오리엔테이션이 있습니다.
      – 기금 사용기간 후 지출영수증 증빙과 보고서 제출
접수방법 : 지정서식을 사용하여 신청서 작성 후 이메일 발송 (rainbowfoundation.co.kr@gmail.com)


퀴어락이 소장한 기록물의 가능성과 아쉬움

많은 걸 찾아 읽은 것은 아니지만 아카이브, 특히 퀴어 아카이브는 LGBT/퀴어 운동과 함께 시작하기보더 운동을 시작하고 몇 년 뒤부터 시작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데 아카이브를 시작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어떤 자료가 축적되어야 하고, 수집할만한 기록물이 쌓여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의 다른 말은 퀴어 아카이브는 운동의 역사 이후에 등장한다.
퀴어 아카이브의 핵심히 흔히 구하기 힘든 퀴어 관련 기록물을 열람하는 것이라면 바로 이 측면에서 퀴어락의 역할은 다소 복잡하다. 한국에서 LGBT/퀴어 인권운동을 시작한 시기를 1990년대로 잡을 때 퀴어락의 등장은 당연히 1990년대 이후로 잡을 수밖에 없다. 현재 퀴어락은 1998년 섹슈얼리티 잡지 <버디>를 출간했던 시기에 아카이브 작업이 시작되었다고 해석하고 있는데 이 말은 퀴어락이 수집하기 시작한 기록물의 상당수는 1990년대부터 그 이후의 기록물에 집중해 있다는 뜻이다.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측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확하게 이 지점에서 묘한, 그리고 복잡한 딜레마가 발생한다. 지금 시점에서 1990년대 이후 퀴어 운동의 역사를 쓰는 작업을 한다면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나올 가능성이 적다. 한채윤 님과 친구사이가 각각 레즈비언과 게이의 운동사 혹은 근대 이후 역사를 어느 정도 정리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정리’라는 측면에선 분명 새로운 내용이 나올 가능성이 적다. 동시에 1990년대 이전 시기의 역사는 전혀 정리가 안 되어 있다는 점에서 새롭게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이것은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매력적인 시기이자 정말 작업이 필요한 시기는 1990년대 이후가 아니라 1990년대 이전 시기다. 그리고 1990년대 이전 자료는 내가 개인적으로 수집한 기록물이 얼마간 있다고 해도 아직 퀴어락에 등록된 기록물은 몇 개 안 된다. 연구를 하기엔 무척 어려운 상황이고 어떤 의미에선 거의 불가능한 작업 같기도 하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지만. 트랜스젠더를 중심으로 1960-80년대를 다룬 나의 글이 있지만 지금이라면 아예 다시 써야 하는 상황이라 부끄럽고 한없이 부족할 따름이다.
[오늘 방문한 분이 1980년대 자료가 있냐고 물었을 때 없다고 답했는데 뒤늦게 깨닫길 최소한 하나 이상 있다. 혹시 방문하신 분 제 블로그에 오신다면,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신다면 나중에 다시 물어봐주세요. ㅠㅠㅠ ]
다른 한편 나는 현재 한국 LGBT/퀴어 운동의 역사를 쓰는 작업에 있어 1990년대 이후 역사도 제대로 연구가 안 되어 있다고 판단한다. 이것은 퀴어락 등록 작업을 하면서 깨닫는 작업이기도 한데, 사실 최근 퀴어 운동이나 퀴어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이들이 1990년대 이후의 역사를 꼼꼼하게 알 수 있는 문서는 없다. 개괄적으로 다룬 두 편의 논문이 있지만 그것은 개괄적 흐름을 짚고 있지 여러 사건을 누락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임태훈을 둘러싼 이슈 같은 것을 분석하지는 않았다. 게이나 레즈비언 중심으로 역사를 분석한다고 해도 한채윤 님이나 친구사이의 글이 있다고 해서 충분하지는 않다. 더 많은 분석 작업이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을 중심으로 운동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도 있고 여러 가능한 분석 지점이 존재한다. 한국동성애자단체연합에서 국가인권위원회, 학생인권조례, 서울시민인권헌장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법률 중심이 아니라 인권 개념을 재구성하는 차면에서 다시 분석할 수도 있다. 더구나 바이를 중심으로 1990년대 이후의 운동을 완전히 새롭게 분석하거나, 트랜스젠더 맥락에서 다르게 분석하는 작업은 아직 없고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까 1990년대 이후로도 할 일은 여전히 많다. 물론 나는 대략 1920년대부터의 역사를 분석하겠지만.. 😛
(결국 나는 설득력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암튼 1990년대 이전 기록물이 거의 없어서, 누군가가 질문할 때 “없어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때 정말 안타깝고 속상한 일이다. 일단 논문 작업이 끝나면 좀 괜찮을까? 1990년대 이전 기록물이 이렇게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1990년대 이전의 역사를 쓰려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란 점에서 기대가 상당하기도 하다. 역사를 연구하는 한국의 LGBT/퀴어 연구자가 늘면 퀴어 아카이브가 풍부해질 뿐만 아니라 퀴어의 역사 자체가 어떻게 변할까? 기대가 상당히 큰 부분이다.

진단범주에서 빠지면 더이상 무관한 것일까?

짧은 메모.

1973년인가 동성애가 정신과진단범주에서 빠졌다. 그리하여 의료적 측면에서 동성애는 더 이상 정신병이 아닌 것으로 바뀌었다. 물론 1980년 트랜스젠더는 정신과진단범주에 포함되었다.
여기서 질문. 이런 진단 범주에 빠지면 해당 범주는 더이상 진단명과 무관한 것일까? 더이상 이러한 관계성을 사유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일까? 만약 트랜스젠더가 정신병진단명에서 빠지면 정신질환과의 관계성, 정신병을 설명하고 분류하는 방식을 사유하지 않아도 괜찮은걸까? 당연히 아니다. 그럼에도 너무 쉽게 그래도 괜찮은 것처럼 이야기가 되고 있어서 조금 답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