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이라는 측면은 제외하고 이야기를 할 때, 정체성이란 건 참으로 곤란한데 이것은 철저하게 사회적 범주임에도 개인이 결정하는 차원이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흔히 정체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모두 이 사회가 인간의 어떤 범주로 가정하는 것으로 제한된다. 인간이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거나, 사회가 개개인을 적절하게 분류할 수 있는 체계로 정체성의 언어가 존재한다. 그리고 사회적 인지의 한계에 포섭되지 못 한 범주는 끊임없이 인정받기 위해 혹은 사회적 인지의 한계를 확장하기 위해 싸운다. 그래서 정체성은 타인 그리고 이 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도구며, 철저하게 사회적 언어다.
하지만 정체성은 결국 개인이 스스로를 설명하는 언어며, 이런 점에서 개인이 직접 결정한다. 개인의 결정에 누구도 쉽게 딴죽을 걸기 어렵다. 지배 규범적으로는 그렇다. 그리고 지배 규범과 충돌하는 삶을 살고 있는 한에서 정체성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간단하다.
“전 트랜스젠더예요, 제가 여성이라고 느껴요.”
“남자로 태어난 네가 어떻게 여성으로 느낄 수 있느냐? 근거를 대라”
간결한 예로 이것은 정체성이 결국은 스스로 판단하는 범주임에도 결코 스스로 판단하는 범주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정체성은 내가 아니라 타인이 판별하고 재단하고 규정하는 것이다. 비트랜스젠더의 젠더 범주는 의심 받기 힘들고 근거를 요청받지 않지만 트랜스젠더의 범주는 언제나 의심의 대상이고 부정의 대상이며 근거를 필요로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것이 정체성의 위계다. 스스로 판단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판단조차 하지 않아도 괜찮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범주/정체성과 스스로 판단하고 강하게 주장하지만 끊임없이 의심받는 범주/정체성이란 위계말이다.(물론 위계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으며 더 복잡하다.) 다른 말로 정체성이란 스스로 주장할 수는 있어도 스스로 판단할 수는 없는 영역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정체성을 내가 주장한다는 것은 허황된 환상일지도 모른다. 아니, 허황된 환상이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부정당하고 의심 받는 범주, 예를 들면 바이/양성애나 젠더퀴어(얼마 전부터 나는 나를 ‘트랜스젠더며 젠더퀴어’라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구글프로필에 이것을 명시하기 시작했고), 의료적 조치를 선택하지 않는 트랜스젠더 등이 스스로를 주장하기 위해 정체성은 본인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언설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언설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조금은 더 공론화되고 있는 동성애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이것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언설이란 판단은 지극히 당연한데, 정체성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란 언설은 어떤 측면에서 정체성은 타고난다는 언설과 매우 닮았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나의 이런 의심은 정확하게 나 자신을 비판해야 하는 측면이다. 나 자신이 정체성은 스스로 선택하는 측면이 있다고 강의하고 다녔고 그렇게 글을 쓰기도 했으니 내가 반성할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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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의 notice를 갱신했습니다. 표현법 등 여러가지를 바꿨지요. 구글 프로필도 갱신했습니다.
뭔가 최근 사진 중 잘 나온 게 있으면 올릴까 했는데 못난 얼굴 올려봐야 보는 사람은 불쾌하시니 그냥 예전처럼 옛날 사진 링크로 끝. 사진 잘 찍고, 보정도 잘 해주는 분께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 크. (핵심은 보정입니다, 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