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글] 눈부신 세상, 그리고 세월호

9월에 쓴 쪽글입니다. 앞으로 쪽글이 자주 올라올 거예요. 흐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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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10. 폭력문화비판과감정의정치학.
눈부신 세상, 그리고 세월호
-루인
언제 피었는지 모르게 벚꽃은 모두 지고 없었다. 몇 송이 남아 있는 나무도 간혹 있었지만 연녹색 나뭇잎이 나무를 뒤덮고 있었다. 따뜻한 바람이 부는 맑은 날씨에 나무는 눈부시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토록 밝은 세상, 이토록 눈부신 세상이었던가. 마치 봄을 처음 경험하는 사람처럼 이 풍경이 낯설었다. 이 눈부신 풍경이 나와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이 풍경과 나 사이엔 뭐가 이물질이 끼어있는 것만 같았다.
또 다른 어느 날도 햇살이 따가웠다. 일이 있어 탁 트인 광장에 나와 있었다. 날은 무척 더웠고 조금만 부주의해도 음식이건 뭐건 부패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있는데 눈이 시큰했다. 햇살이 너무 뜨겁고 눈부셔서 눈이 시큰했다.
이 글을 쓰려고 집구석에 틀어박혀 있다가 머리를 식힐 겸 잠시 산책을 나섰다. 문을 여는데 눈부신 햇살에 반짝이는 풍경이 나를 맞았다. 낯설었다. 이렇게 맑고 화창한 날이었던가. 걷는데 눈물이 나려고 했다. 눈부시다는 건 내가 살아 있음을 깨닫도록 하는 찰나인 동시에 죽음이 바로 나의 사건이라고 알려주는 찰나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 연휴 내내 날이 맑았다. 차례를 지내며 망자가 마실 나오기도 좋고 고인의 묘지를 찾아가기도 나쁘지 않은 날이라고 중얼거렸다. 어쨌거나 현재 내가 차례를 지내며 공식적으로 애도해야 할 존재 모두에겐 찾아갈 수 있는 자리가 있고 죽음을 둘러싼 어떤 공식 절차도 끝났다. 남은 것은 나와 고인의 관계를 고민하는 애도 행위다. 이것은 간단하게 기술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은 내용이기도 하다.
적어도 한국에서 죽음은 몇 가지 규정된 내용과 절차를 요구한다. 언젠가 화장장에서 매우 어린 자식를 화장하는 가족을 조우한 적 있다. 울 수도 울지 않을 수도 없는 표정, 애통하고 눈물이 그릉그릉한데 또 소리내어 애도하기를 머뭇거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그 묘한 분위기. 고인은 유족보다 나이가 많아야 한다. 혹은 고인은 유족보다 나이가 많은 것이 적절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고인이 유족보다 어리다면, 부모가 자식의 장례를 치른다면 그 사연이 무엇이라고 해도 불효라고 한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살만큼 살고 난 다음’?) 자신의 집이나 병원에서, 다른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는 것이 호상이라는 가정이 여전히 존재한다. 젊은 나이의 죽음만이 아니라 집이나 병원이 아닌 외지에서의 죽음, 특히 길에서의 죽음은 피해야 할 죽음의 형태라고 말한다. 나의 아버지와 삼촌은 모두 길에서 객사했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한 한 친척 어른은 ‘아버지와 동항(同行)인 남성은 모두 객사할 운명인가’라며 애통함을 표현했다. 평소의 삶이 어땠는가와 무관하게 객사는 좋은 죽음의 형태가 아닐 뿐만 아니라 피해야 할 죽음의 형태라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장례식은 별다른 잡음 없이, 혹은 어떤 문제 없이 무사히 진행되어야 하고, 묘지에 안장하거나 납골당에 안치하는 등 일련의 절차가 잘 지켜질 것을 요구한다. 만약 고인이 사고로 죽었다면 사망진단서만이 아니라 경찰조서, 검사지휘서 등 많은 문서가 필요하다. 특히 검사지휘서가 있어야만 병원에서 장례식장으로 시신을 옮길 수 있다. 그 외에도 적잖은 문서를 작성해야 하고 적잖은 공문 절차가 필요하다. 그러니 고인의 사망원인을 신속하게 밝히거나 확인해주는 것, 장례절차를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도록 서류를 제때 발급하는 것 등은 국가라는 단위, 혹은 법적 제도가 할 수 있는 애도 표현의 한 방식이다. 국가의 영향력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와 별개로, 어쨌거나 국가가 규정한 절차가 있다면 그 절차 내에서 국가가 최선을 다해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죽음이란 절차, 슬픔이라는 감정, 혹은 죽음이라는 감정, 슬픔이라는 절차엔 나이,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위계, 감정, 규정된 애도 형식, 공동체의 반응, 국가의 태도 등이 모두 농축되어 있다. 이 모든 요소가 큰 문제 없이 처리되었기에 이번 추석에도 나는 무난한(괜찮지는 않아도 무난하기는 한) 차례를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건 이후 여전히 진행 중인 죽음 혹은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이번 추석은 결코 무난할 수 없으리라. 일부는 부모가 돌아가셨지만 적잖은 수는 자식을 먼저 보냈고, 모든 고인은 객사했고, 그나마도 깨끗은 시신을 만나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으며, 장례식을 치르는 절차는 순탄하지 않았고, 사건에 따른 죽음을 처리함에 있어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어떤 가족은 시신이라도 찾길 바라고 있지만, 기다리는 누군가를 고인이라고 부르지도 고인이 아니라고 부를 수도 없는 위치에서 살아가고 있다. 유족과 실종자 가족에게 이번 추석은 몇 가지로 추려서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정황으로 결코 무난할 수 없다. ‘추석’일 수는 있을까?
서로 다른 상황에서 서로 다른 이해를 가졌지만, 때론 단원고 희생자 유족과 일반인 희생자 유족이 다른 이해 집단인 것처럼(어떤 지점에선 다른 ‘이해’ 집단이기도 하다) 묘사되지만 진상규명을 요구한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는 토로 역시 비슷하다. 사실 죽음의 원인을 알았다고 해서 죽었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죽었다는 사실을 기술하기 위한 이야기는 필요하다.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그 사실을 납득할 수 있기 위한, 고인을 애도하기 위한 서사는 필요하다. 그리고 진상을 밝히는 행위는 단순히 가해자를 처발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는 의미다. 지금 당장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사한 형태의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적 변화를 만들자는 것이다. 진상규명은 복수가 아니다. 그럼에도 진상규명은 지금 시점에서 참으로 지난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두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사람도 없다.
죽음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가해자가 진심으로 사과하기 위해 유족을 찾을 때, 유족은 격한 감정으로 당장은 가해자에게 화를 내고 때때로 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마냥 맹비난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매우 미묘한 지점이고 또 미묘한 감정인데, 가해자가 가해 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피해경험자의 ‘적대적’ 대상이 되진 않는다. 오히려 가해자가 유족을 찾지 않을 때, 면피하기 급급할 때, 어떤 사과도 하지 않을 때, 혹은 유족이 ‘가해자가 도대체 왜 그랬을까?’라며 끊임없이 상상하고 설명하고 (가해자를) 이해/납득하려고 애쓸 때 가해자는 유족의 ‘적대적’ 대상이 되는 듯하다. 또한 이것이 유족의 트라우마를 가중시킨다. 다른 많은 형태의 혐오 폭력 사건이 그러하듯, 어떤 행위 자체만으로 그것이 비난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그 행위를 설명하는 지난한 과정, 태도, 감정의 주고 받음 등이 모두 얽혀서 폭력 사건이 되기도 하고, 의미 있는 대화의 장이 되기도 한다. 사과하는 사람의 부재, ‘규명된 진상’의 부재가 세월호 침몰 사건을 국가 폭력으로 (사후) 구성했다.
그런데 나는 조금 헷갈린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폭력으로 부르고 무엇을 국가폭력으로 불러야 할지 헷갈린다. 구조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구조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업체와 행정기관이 결탁한 측면? 재난 상황에서 적절한 절차에 따라 행동하지 않은 것? 있는 매뉴얼과 재난 대책 절차를 파기한 것? 여러 정치인과 정당이 이 이슈를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색깔논쟁으로 몰고간 것? 정치인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유족을 비하한 것? 죽음의 규모를 국가 차원에서 혹은 절차 차원에서 축소하거나 얼버무리려 하는 것? 행정부 수반부터 이 사건을 외면하고 있는 태도? 혹은 사건 자체? 이 모든 것? 나는 이 사건이 너무 많은 것이 중첩된 국가폭력이라고 생각한다(혹은 이런 주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국가폭력이라고 부른다면, 이런 명명이 이 사건을 너무 단순하게 사유하도록 하거나 너무 말끔한 현상으로 수렴하는 것은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폭력이란 용어 혹은 명명 자체가 매우 포괄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만 때론 말끔한 느낌도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국가 폭력으로 명명할 때 그럼 그 국가의 구성원 개개인의 책임은 어떻게 될까? 이 부분 역시 고민이다.
매우 많은 사람이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고 많은 것을 망각하며 살아간다. ‘잊지 않겠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고 많은 사람이 다짐했지만 세월호 사건은 이미 많은 개개인의 일상에서 조금씩 밀려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은 가만히 있는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적잖은 사람이 20년 전의 삼풍백화점 사건을 떠올렸고,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의 대처는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행정부 수반인 박근헤 대통령의 태도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을 해서, 책임질 사람은 모두 엄벌토록 할 것이다.”라는 발언은 대통령이 현재 사고, 현 상황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처럼 말한다며 비난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어느 언론에선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먼저 탈출했다고 지적했다. 사과를 해야 할 책임자가 책임자를 비난했으니 틀린 지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대통령을 비난할 때, 이 사건을 국가 폭력으로 명명할 때, 그 국가를 구성하는 구성원 개개인의 책임은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가도 괜찮을까? 20년이 지나도록 비슷한 정부를 구성하고 유지하고 있은 국가 구성원의 정치적 책임은 묻지 않아도 괜찮은 것일까? 현정부에 투표하지 않았음이 정치적 책임을 면피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정부의 대응을 비난하고 정부와 정치인의 태도에 분노하고 있을 때(분명 분노하고 비판해야 할 일이지만), 어쩌면 그런 비난과 분노의 감정이 나의 정치적 책임을 은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특정 누군가를 공동의 ‘적’/가해자로 명명하며, 이 사건에서 ‘나’를 가장 먼저 탈출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나는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할 수 없다. 꽤나 오랫 동안 정부, 정치인, 청해진해운, 선장과 선원 등을 지목하기 바빴고 그 과정에서 나는 방관자에 가까웠고 이 사건과 무관한 존재로 사라지고 있었다. 사라지지 않으려고 고민하다가, 문득 나는 유족과 실종자 가족이 이번 추석을 어떤 감정으로 맞았는지 궁금했다. 그들에겐 지금의 눈부신 햇살이 어떤 풍경일지 알고 싶었다.
몇 년 전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창밖의 풍경을 보았다. 벚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데 이미 다 지고 없었다. 몇 송이 남아 있는 나무가 간혹 있었지만 연녹색 나뭇잎이 나무를 뒤덮고 있었다. 따뜻한 바람이 부는 맑은 날씨였고, 나무는 햇살을 흔들고 있었다. 이토록 밝은 세상, 이토록 눈부신 세상이라니. 고작 며칠 장례식장에 머물렀는데 마치 봄을 처음 경험하는 사람처럼 이 풍경이 낯설었다. 이 눈부신 풍경이 나와는 거리가 있고 무관한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뭔가 유리된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햇살은 까끌까끌하게 따뜻했고, 어쨌거나 나는 죽음을 치른 뒤 살아 가고 있었다.
나의 첫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을 땐 햇살이 따가웠다. 행사가 있어 탁 트인 광장에 머물고 있을 때,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숨을 거두었다고. 바로 자리를 뜰 수가 없어서 행사장에 한동안 머물렀다. 5월 말이었는데도 날은 무척 더웠고 점심 때 마시려고 사둔 아이스 음료가 거의 다 녹은 걸 보며, 조금만 부주의해도 음식이건 뭐건 부패하기 좋은 날이라고 중얼거렸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니 있는데 눈이 시큰했다. 햇살이 너무 뜨겁고 눈부셔서 눈이 아팠다.
그리고 이번 추석은 무척 맑고 좋은 날씨였다. 햇살 눈부신 풍경을 보며, 세월호 침몰 사건의 유족과 실종가 가족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특히 아직도 진도의 ‘가족 숙소’에 머물고 있을 실종자 가족은 숙소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 이 햇살의 눈부심을 어떤 감정으로 느꼈을까? 죽음을, ‘국가적 사건’의 죽음을 가족의 붕괴 혹은 가족 상실의 사건으로, 국가 공동체의 손상 혹은 국가 폭력에 따른 죽음으로만 만들지 않으면서, 이 사건과 죽음을 조우하고 상상하는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 글을 쓰다 말고 잠시 산책하다가 중얼거렸다.

헤르페스, 킹키부츠

히르페스

최근 얼추 한 달 동안 헤르페스가 세 번 발생했다. 입술 주변에 돋으니 눈에도 잘 띈다. 번거로워. 아무래도 피곤해서 그런 듯한데 기말이 끝나니 더 바쁘다. 내일부턴 조금이나마 쉴 수 있을까? 그런데 헤르페스가 계속 돋아나니, 내가 곧 헤르페스고 내 몸은 헤르페스의 숙주로만 존재하는 느낌도 든다. 이름을 루인에서 헤르페스로 바꿀까? 😛
킹키부츠
뮤지컬 킹키부츠를 봤다. 오만석 주연 판본을 봤는데, 내가 내린 결론른 두 번 볼 공연이 아닐 뿐만 아니라 딱히 추천할 퀴어공연도 아니라는 점이다. 프리실라 수준을 기대하고 갔는데, 헤드윅보다는 괜찮았지만 별로였다. 일단 오만석의 드랙퀸 연기는 뻣뻣하고 끼라곤 찾을 수가 없었다. 헤드윅도 했다면서 왜 이렇게 뻣뻣한 거지? 공연 중간중간에 “레이디스 젠틀맨,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직 결정을 못한 분들”이라며 웃음을 유도한다. 드랙퀸 공연이라고 뭔가 센스를 발휘하려고 한 것 같지만 드랙퀸을 비롯한 트랜스젠더퀴어를 조롱하고 모독하는 말이다. 정말 기분 더럽다. 그런데 이 대사가 킹키부츠의 전반적 분위기를 응축하는 것이기도 하다. 퀴어 뮤지컬이 아니라 그냥 이성애-이원젠더를 옹호하고 지지할 뿐만 아니라 위로하는 공연이다.
(프리실라에서 부치 역을 했던 배우가 이 공연에선 ‘여성’ 중 유일하게 남성편을 드는 역으로 나온다. 매우 복잡한 감정을 일으키는데 다음에..)
그럼에도 매우 괜찮은 장면이 있는데, 오만석이 드랙퀸 분장 혹은 여장을 하고 있을 땐 덩치가 큰 몸으로 드러나는데 남장을 하고 있을 땐 몸이 줄어들고 왜소한 인상을 준다. 젠더에 따라 몸 크기가 달리 해석되는 순간이기도 하고, 의도한 것이라면 오만석이 연기를 잘한 부분이도 하다.
호불호는 개인의 선택이고 해석인데, 프리실라가 강추라면 킹키부츠는 비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