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일단 퇴원은 했지만

2박 3일 입원하고 오늘 퇴원했다. 어제 면회 갔을 때, 그리고 오늘 퇴원시키면서 들었던 가장 당혹스러운 부분은 검사 수치와 상태 사이의 괴리였다. 첫날 못 들은 이야기를 어제 들었는데 CK수치가 문제였다. 근육과 관련이 있는 이 수치가 첫 날은 기준치 상단의 2.5배 정도였고 췌장 수치가 유난히 나빠 주목 받지 않았다. 그런데 입원 다음날, 그러니까 어제 검사를 했더니 CK수치가 기준치 상단의 12배 가량인 3000이 넘는 값이 나왔다. 그래서 의사도 어려워했다. CK 수치가 이 정도 값이 나오려면 심각한 구타나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라고. 문제는 관련성이 있을 다른 수치 중 일부는 감소하며 정상 범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보리의 컨디션이었는데 밥도 잘 먹고 물도 잘 마시고 활발하다는 점이었다. 검사 수치와 상태 사이의 간극. 의사는 이것을 어려워했다.

그리고 오늘. 낮에 오늘 퇴원하자는 전화가 왔고 그래서 데리러 갔다. 병원에서 설명을 들으니, CK 수치는 4750을 넘겼고 췌장 관련 수치도 나빠졌는데 간이나 다른 관련 있을 법한 수치는 감소 중이거나 정상 범위에 들어왔다. 그리고 보리는 활발했다. 근육에 경련이나 이상 증상이 관찰되냐면 그렇지 않았고 병원에서 나랑 있는 동안에도 상당히 활발했고 힘을 잘 쓰고 있었다. 그리하여 지금으로서는 병원에서 더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집에서 관찰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며 해준 두 가지 이야기는, 고양이의 췌장 수치를 측정하기 시작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 다음에는 헐액검사 기기를 바꿔서 검사를 해봐야겠다는 것.

일단 연령이 있으시고 신장 문제를 초기에 발견했으니 겸사겸사 이것저것 약을 처방받았다. 아마 평생 약을 먹여야 하겠지만 그래도 오래오래 살아가기를…

보리, 두 번째 입원

밤새 몇 번 토를 하는 것을 봤다. 궁시렁거리면서 아침에 치워야지 했다. 아침에 보리는 평소와 다르게 울었고 자신이 토한 자리로 나를 데려갔다. 이 자리에 토했으니 치워달라는 걸까… 그리고는 근처에서 식빵을 구웠다. 뭔가 기운이 없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병원에 가자고 했다. 늘어졌지만 활기가 넘쳐서 이게 일회적으로 토한 건지 어쩐 건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안심비용이다 생각했다. 24시간 운영하는 대형병원이지만 정규 운영 시간 외에는 응급으로 접수가 되고 그럼 비용이 많이 드는지(다행스럽게도 응급 진료를 한 적이 없어서 모른다) 9시가 지나야 접수를 받아주기에, 일단 토한 걸 좀 치웠다. 대략 10곳? 이런저런 준비를 하고 나서는데 비가 잔뜩 내리고 있었다. 비가 그치길 기다릴 수는 없으니 대충 비를 맞으며 병원으로 갔다. 다행이라면 병원이 걸어서 10분 정도에 위치하고 있으니 비를 좀 맞아도 10분 정도였다.

얼마간 대기했다가 의사와 상담을 했다. 많이 토해서 데려왔는데 몇 해 전 일주일 정도 입원한 이력도 있고 이제 보리가 11살이 넘었으니 조금만 안 좋아도 병원 데려오는 게 낫겠다 싶어 데려왔다고 했다. 의사도 보리가 워낙 활발한 상태라 심각한 거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건강검진한다 생각해서 이것저것 검사는 해보겠다고 가볍게 말했다. 뉘앙스는 별 것 아닐 거 같다는 말투. 나도 좀 안심이 되었다. 그래, 지난 8월 귀리도 자주 토해서 병원에 왔지만 사흘 정도 약을 먹으면 괜찮은 상태라고 했으니 이번에도 기껏해야 그 정도겠지(그날 의사는 귀리의 근육에 감탄 또 감탄하셨다. 정말 뱃살 빼면 다 근육… 근육에 감탄할 수 있는 건강 상태였다).

한 시간 정도 걸린다는 검사는 1시간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불안해야 할까, 어째야 할까, 안절부절 못 하는 상태였지만 진료 중인 동물이 여럿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 불안을 억누르며 기다렸다. 그리고 좀 더 기다리니 의사가 불렀다.

췌장이 안 좋다는 말을 시작으로 가장 문제가 되는 수치를 말해줬다. 여러 수치가 문제였는데 일단 췌장이 가장 나빴다. 췌장 수치의 상단이 3.6 정도였고 급성으로 나빠지면 10정도가 나온다고 했다. 보리는 27이었다. 그러니까 다른 나쁜 수치는 췌장의 수치와 모두 연계되는데 인과관계는 아직 확인이 안 되는 상태였다. 보리는 과거에도 췌장을 비롯한 장에 염증이 있고 자가면역질환이 있어서 일주일을 입원했는데 일단 비슷한 부위였다. 하지만 동일한 질병인지는 아직 모르는 상태였다. 기본 검사만 했으니까. 의사가 뭐라고 했더라… 흉수나 폐에 물이 찰 수 있는 위험은 몇 해 전에도 들었는데 아직 그런 증상은 없다고 했다. 이제 장기적으로 집에서 보살피고 관리하는 일을 해야 할 거라고 했다. 의사의 그 말에 완치의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는 걸, 지금 깨달았다.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주기적으로 방문해야 하고, 먹고 있는 처방사료를 바꿔야 할텐데 입원해서 검사해본 다음에 새 처방사료를 결정한다고 했다. 췌장의 상태를 추적하는 어떤 기구가 나왔다고 들었는데(내가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 강아지에게는 잘 맞는데 고양이에게는 오류가 많다고 했다. 무엇보다… 어린/청년 고양이는 췌장의 수치와 활발함 사이에 상관성이 있어서 수치가 나쁘면 기운이 없는데, 노령 고양이는 활발하거나 상태가 괜찮은데 수치 검사를 하면 더 나빠진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여기가 좀 당혹스러운 부분이었다. 수치는 나빠지는데 겉으로 보는 상태는 괜찮다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양이를 병원에 데려갈 주요 단서가 기력인데 그것이 지표가 될 수 없다면 어찌해야 할까. 아 그리고 신장이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또 뭐가 있더라…

암튼 그래서 일단 며칠 입원해서 이런저런 검사를 더 하고 수액을 맞추고 췌장 수치가 떨어지는지를 확인하고… 암튼 며칠 그러기로 했다. 뭐가 되었든 조금이라도 차도가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비는 그쳤고 빗길을 같이 한 보리도, 이동장도 병원에 둔 채 H와 집으로 돌아오니, 아침에는 발견하지 못한, 밤새 토한 더 많은 흔적이 보였다. 그래서 아프다고, 자신이 토한 자리에 나를 데려갔구나 싶어 보리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어쩐지 이동장에 넣었을 때 반항을 안 하더라니.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 & 어쩔수가없다

01

<그저 사고였을 뿐>은 별다른 정보 없이 봤는데, 잘 만든 영화의 표본 같았다. 이란 독재 정권에서 고문피해자가 고문관을 만났을 때의 공포와 혼란, 그리고 분노가 영화 내내 흐르는 와중에 피해자의 윤리는 무엇인지를 질문하도록 한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얼굴을 모르기 때문에 목소리와 걸음걸이 등만 알 뿐이고 그래서 가해자-고문관을 죽이려 하지만 확신이 없기에 다른 피해자를 찾아간다. 다른 피해자는 극도로 분노하지만 동시에 가해자가 가해자인지 확신할 수 없고 단편적 단서로 가해자라고 추정을 하면서도 동시에 고문관의 폭력으로 받은 피해로 계속해서 분노한다. 하지만 그 피해와 분노는 파트너에게 설명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가해자의 가족에게 전가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여기서 이 영화의 중요한 질문이 등장하는데 나의 인생을 망친, 나 뿐만 아니라 수백 명의 삶을 망친 가해자의 아이에게 전화가 와서 엄마가 죽어간다고 말을 한다면, 피해자인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아이와 가해자의 파트너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병원비를 미리 결제를 해야 할 때, 그 카드는 누구의 것을 사용해야 할 것인가? 가해자의 파트너가 출산을 해서 축하를 해줘야 한다면, 피해자들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피해와 가해가 명확한 상황에서도, 예기치 않은 장면에서 피해자들은 어떻게 가해자와 똑같은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어떤 판단과 결단을 해야 하고, 가해자는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를 담아낸다. 그것이 동네 사람들에게 얼간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에도, 어떤 종류의 망설임이 필요하다. 그래서 영화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피해자(당장 죽여버려야 한다는 입장부터, 한바탕 혼쭐을 내줘야 한다는 태도, 그들과 똑같은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등)는 내 주변에 존재하는 지인들의 현실적인 반응이고, 내 안에 존재하는 복잡한 입장의 현존이다. 그래서 속이 터지고 모든 입장에 동조하며 모든 입장에 망설인다. 그래서 주인공들의 선택과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여기서 영화가 끝나면 좋겠다는 바로 그 장면에서 영화는 끝났고 모든 질문은 관객, 혹은 피해자의 복잡한 이해 관계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모든 사람에게 남겨진다.

여담으로, 이 영화는 연극으로 각색하기 참 좋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공간 사용과 인물 동선 등이 연극을 염두에 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도 공식 허가 없이 촬영을 했고 그래서 조심스러움과 간결한 작업이 필요했다고. 이 두 상황 사이의 유사성이 흥미로웠다.

02

며칠의 시차가 있었지만, <어쩔수가없다>는… 흠… 흐음… 어떤 의도인지 알겠고 무슨 장치인지도 알겠는데,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이 산만하다. 스토리를 단선적 시간의 틀에 맞추지 않도록 했다는 것은 알겠고, 그것을 해석하는데 큰 무리는 없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복잡한데도 정교하게 잘 만든 작품을 알고 있다(예를 들어, 얼마 전에 공연한 <퇴장하는 등장1>). 스토리를 익숙한 틀에 맞추지 않는 것과 이것이 산만해지는 것은 다른 이야기인데, 나는 좀 산만하게 느꼈다. 만수의 살인에 개연성이 없다고 생각지 않고 개연성이 굳이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영화 여기 저기에 분산시켜둔 단서들이 여기저기서 조각을 맞춰나가는 장면도 재밌다. 그럼에도 뭐랄까 집중력 있게 끌고가기보다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계속 전작 <헤어질 결심>이 떠오르며 <헤어질 결심>이 다시 보고 싶어지는 기분. 그럼에도 <복수는 나의 것>의 감성이 튀어나와 좋았고, 특유의 개그(?)에서 박장대소를 했고 묘하게 취향인 장면이 있었다.

암튼 이번 영화가 호불호가 강하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는 알겠다.

+ 영화 <박쥐>를 안 봤는데 <박쥐>를 보면 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