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활에서 강의합니다: 퀴어 식민주의에서 퀴어 지방화로

말과활에서 강의합니다.

제목은 “퀴어 식민주의에서 퀴어 지방화로”

링크 여기

일시 2026.01.22.-02.12.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오프라인&온라인 병행. 당일 못 들어도 다시 들을 수 있는 링크를 제공하니 편한 시간에 들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다시 듣기는 강좌 끝나고 일주일 뒤까지인 듯! (말과활 다른 강의 들으니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듣기를 세 번씩 들었네요.)

미국 중심 퀴어 논의가 지역적 맥락 없이 수용되는 지점에 문제제기하고, 지역에 따라 퀴어이론의 변형, 재해석이 필요한 지점을 다룹니다. 또한 한국에서 퀴어 운동과 논의의 역사를 다시 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한국에서 퀴어 연구하기, 혹은 퀴어로 사유하기를 구체화할 단초를 모색할 예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 링크 참조하시면 됩니다.

행사, 연극과 영화 사이, 모르는 분과 공부

어제 어느 학술행사에 참가했다. 원래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어 겸사겸사 참가한 거였는데, 종합토론이 진짜 재미있었다. 일단 다종을 논한 선생님의 발표가 재미있었고 모두가 불편할 것이라며 하신 말씀에 상당히 큰 배움이 있었다. 그렇지, 해러웨이 등 다종을 논할 때 그냥 지식이 아니라 저렇게 사유의 틀을 완전히 틀어버리는 방식으로 바꿔야지. 그것이 공부, 몸에 익히는 과정이지. 또한 종합토론은 근 10년 동안 본 토론 중 가장 뜨거웠는데 학술적 언어로 서로를 비판하고(사실 디스였음 ㅋㅋㅋ) 심지어 어느 질문자는 토론에서 오간 주제 자체에 대해 불편하다고 말할 정도의 자리라니. 이거 유튜브로 스트리밍 했어야 했는데!

(혹시나 싶어 일부러 다 익명으로 얼버무림)

다행스럽게도 저녁에 일정이 되어서 한국퀴어연극아카이브 홈페이지(구글링하면 나온다) 오픈 행사에 참석했다. 이 작업을 해내다니 정말 고생하셨고 홈페이지 자체도 잘 나와서 기뻤다. 이미 만들고 운영하는 입장에서 엄청나게 많은 고민과 결정 과정이 있었을 거라 나온 결과물에 담긴 노고가 진하게 느껴졌다. 행사장에서는 말을 못했는데, 6색 무지개 색을 활용했는데 그 색감이 정말 세련되게 나와서 놀라웠다. 무지개 6색은 잘못 쓰면 촌스러운데 어떻게 저 색감을 만들어냈지! 암튼 오래 고민하고 준비하셨는데 이렇게 결과물을 공유할 수 있다니 기쁜 일이다. 무지개책갈피도 다시 활동을 시작했고, 모든 게 기쁜 일이다.

행사 끝나고 집 돌아오는 길에 뭔가 좀 나 자신이 웃겼다. 12월 말에 논문 하나가 나오는데 영화 분석 논문이다(자세한 건 나온 뒤에). 지금까지 쓴 논문(등재 여부와 상관없이 학술지 기준으로) 중 세 편이 영화 분석 논문이다. 웃긴 건, 나는 영화 분석 작업을 좋아하는 편이고 지금도 또 다른 영화 분석 논문을 준비 중인데 정작 영화와 관련한 어떤 공부도, 제작 과정에 참여도 해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영화와 관련한 어떤 독서를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체계적인 것이 아니고 그래서 어디 가서 내가 영화와 관련해서 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영화 분석을 좋아하고 글을 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연극 관람을 좋아하고, 큰 환대 속에서 연극과 관련한 이런저런 행사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고, 무엇보다 드라마터그를 하며 연극 제작 과정에 참가하는 소중한 기회를 갖기도 했다. 그런데 연극 분석은 어려워한다. 분석하고 싶은 작품이 몇 있는데 어째서인지 어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한다. 이게 어떤 종류의 친밀감, 특히나 사람과 연결된 친밀감이 있어서 부담스러워하는 것일 가능성이 있기도 하지만 내가 감히 작업해도 괜찮을까라는 고민을 한다. 영화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어쨌거나 분석하는 작업에 부담이 덜한 편이다. 그러고보면 분석하고 싶은 소설도 몇 있고 소설 분석에 부담은 덜 한 편이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왜 연극 분석 작업은 부담이 있는 것일까.

암튼 몇 년 내에 연극분석 논문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미루고 있던 어느 분야의 공부를 시작하고 있다. 여기서 그 분야 자체는 중요한 게 아니라 말하지 않지만, 그 분야가 오역과 오독 논쟁이 많다보니 무엇으로 시작해야 할지 계속 망설였다. 망설이고 미루고 망설이고 미루고. 그러다 문득 내가 처음 페미니즘 공부를 하거나 퀴어/트랜스젠더퀴어 연구를 시작할 때가 떠올랐다. 그때는 누가 믿을만하고 누구의 의견이 가장 좋고… 그런 것 없이 그냥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읽었다. 이를 통해 축적이 되면서 과거 텍스트가 다시 이해되고 이상한 텍스트도 그 나름으로 유용한 의미가 생겼다. 그런데 왜 지금 나는 가장 잘, 제대로, 정확하게 된 것을 고르고 고르고 또 고르려고만 하는 것일까. 어차피 10년을 두고 차근차근 공부하기로 했으니 다 읽어두면 뭐든 도움이 될텐데. 나는 그 분야와 관련해서 아예 모르는 상태이고 그렇다면 그냥 다 읽다보면 나중에 오역이나 오독을 다시 이해할 수 있을텐데. 암튼 최근 이런 나의 이상한 망설임을 깨닫고, 나의 어리석음이 웃겼다. 급할 거 없잖아.

냥냥이들

보리는 좀 위태롭게 느껴지던 시기를 지나 언제나처럼 발랄하게 지내고 있다. 과거에 아팠던 후유증과 노화에 따른 것이라고 믿기로 했고 여차하면 줄기세포 치료를 진행하기로 했다. 무엇이 되었든 지금은 발랄하다. 그러면 충분하다.

안식년으로 집에 오래 있었다. 직업 5개 중에서 하나만 쉬었을 뿐 나머지는 유지되었지만 그래도 집에 있을 시간이 많았다. 그리고 알게된 것, 퀴노아는 질투를 하고 있었다. 같이 온 귀리는 덩치 큰 치즈고 그냥 강아지다 싶게 손을 잘 타고 부르면 뱃살을 출렁이며 달려온다. 퀴노아는, 내가 숨만 쉬어도 도망칠 정도로 예민했다. 동네냥이라면 잘 살았을텐데 집에서 사는데 그렇게 도망쳐야 했나… 근데 집에 오래 있고 낮에도 계속 쓰다듬어 주거나 나의 배 위에 올라와서 한숨 자게 냅뒀더니 덜 도망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도망쳤을 상태에서 버티거나 크게 놀라지 않게 변했다. 안식년으로 집에 오래 있으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다.

앞으로 어찌 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