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이 빠지는 날

알바를 끝내고 귀가할 때면 맥이 빠지곤 한다. 내가 택한 일이다. 어쨌거나 내가 택한 일이다. 활동이나 공부와는 완전 별개인 일을 하겠노라고 결정했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둘을 분리해서 살았다. 알바하는 곳에선 익명의 A로 지내고, 공부하고 활동하는 곳에선 무명의 누군가로. 생계가 공부나 활동과 긴밀할 때 받을 스트레스가 상당할 것이라고 판단했고 이 둘을 분리해서 지내려고 했다. 무엇보다 알바에서 퇴근하면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삶을 살았다. 둘은 어떻게든 영향을 주고 받지만, 퇴근하는 순간 알바에서 하는 일을 신경 쓰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는 삶. 참 괜찮았다. 하지만 알바가 끝나고 나면 맥이 빠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다. 나 지금 뭐하고 있지? 공부하려고 알바를 시작했는데 알바가 주요 일과고 공부는 가끔하는 것 같다. 나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남의 돈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어머니는 내게 말씀하시곤 했다. 내가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이런 표현을 내 몸에 익히며 자랐다. 남의 돈을 버는 게 아니라고, 아니 이런 식의 표현 자체를 비판하지만 그럼에도 내 몸은 내가 체화한 이런 표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말로 인해 나는 늘 갈등하다. 내가 정당하게 받아야 하는 급여가 늦게 들어와서 이를 알릴 때도, 내가 미안해하고 어쩔 줄을 몰라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미안하다고 빨리 처리하겠다고 답하면, 무려 고맙다고 반응한다. 젠장. 고맙기는 뭐가 고마워. 그 사람이 제때 처리를 안 하고 있는데 고맙다니. 심지어 내가 미안해 하며 말하다니. 아, 정말 기분이 더러워.
몇 년을 이러며 살고 있다. 내가 나를 부정하는 나날. 아니다. 내가 체화한 어떤 관습은 내가 정확하게 비판하는 규범인데, 이 둘이 내 몸에서 계속 부대끼고 경합을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계속 어떻게 할 줄을 모른다. 매달 반복되는 스트레스. 그리고 하루의 많은 시간을 왜 내가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는 일에 쏟고 있지? 나는 지금 뭐하고 있지? 맥이 빠진다. 이렇게 맥이 빠지면 집에 와서 뭘 하기가 좀 힘들다. 어떤 날은 무엇이건 하지만, 어떤 날은 그냥 맥이 빠진 상태를 보듬으려고 그냥 멍하니 보낼 때도 많다.그러니 더 ‘나는 지금 뭐하고 있지?’란 고민을 자주 한다. 자꾸만 정체하는 느낌이다. 아니다. 계속 퇴보하거나 퇴행하는 느낌이다. 그냥 혼자 뒤처지는 느낌이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지? 왜?

감정, 요동치는

자해충동이 잠잠해지면 자살충동이 격해진다고 했던가. 트랜스젠더 삶의 조각보 만들기 프로젝트의 편지낭송회 행사에서 누군가가 쓴 편지의 일부다. 무력한 심정으로 이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면 참 이상하지. 자해충동이 잠잠하면 자살충동이 격해지고, 자살충동이 잠잠하면 자해충동이 격해진다. 둘이 동시에 작동하기보다는 교차하며 번갈아 강해지고 잠잠해진다. 참 이상하지. 아니 이상할 것도 없지. 자해충동은 삶의 욕구,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한 힘이니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기 위한 강렬한 힘이니까. 알잖아. 자해충동과 그에 따른 몸의 흔적은 살고자 하는 욕망, 결국 어떻게든 견디기 위한 어마한 힘이라는 것을. 그 힘이 어떤 순간을 견디게 하잖아. 그럼 자살충동은? 이것 역시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힘이라고 믿어. 살고 싶지 않음이라기보다는, 살려달라는 간절한 신호라기보다는 살고자 하는 어떤 박동이라고 믿어. 그저, 삶을 그만두고 싶은 욕망일 뿐. 그만 살고 싶은 욕망. 죽고 싶은 게 아니라 그만 살고 싶은 욕망 혹은 매혹적인 충동.

한동안, 일단 살자고, 살아가자고, 나이들어서 만나자고 말했어. 하지만 이젠 이런 말을 애써 하고 싶지 않아. 살건 살지 않건, 살아가길 선택하건 삶을 중단하길 선택하건 아무래도 좋아. 어떤 선택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 살지 말자고 권할 수는 없지만 죽은 사람도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이라면, 죽었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라면, “일단 살자”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 그냥 어떤 선택을 해도 좋아.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아. 어쨌거나 최선을 다 한 것이니까.

자해충동과 자살충동 혹은 삶을 중단하고 싶은 욕망. 어차피 이 욕망, 감정 혹은 충동은 쉽게 없어지진 않을 거야. 오래오래 지속되겠지. 괜찮다고 느꼈는데 어느 순간 다시 찾아올 거고. 어느 순간 다시 이 두 욕망 사이에서 요동치는 자신을, 이 두 감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깨닫겠지. 아무래도 좋아. 그냥 흔들릴 때는 흔들리는 것 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어.

글쓰기를 망설임

블로깅을 하겠노라고 막 초안을 작성했다. 그런데 어쩐지 바로 공개하기가 찜찜해서 몇 시간 묵혀둘 때가 있다. 그럼 깨닫는다. 내가 참 부끄러운 글을 공개하려고 했구나. 공개했으면 정말 많이 부끄러웠겠구나.

종종 블로그에 너무 아무렇게 글을 쓰는 것은 아닌가, 고민할 때가 있다. 막 아무 말이나 쓰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어떤 순간엔 부끄럽다. 더 좋은 감성의, 더 좋은 고민의 글이 많은데 내가 괜한 바이트낭비만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그럼 글을 쓰지 말아야지, 또 이 익숙한 고민을 한다. 이제 글을 그만 써야지… 블로깅을 접어야지. 내가 블로그를 중단하는 날은 내가 죽은 다음날이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고민한다. 이제 블로깅을 그만해야 할까…
그냥 이런 망설임이 자주 드는 나날이다. 자주 망설이고 그럼에도 뭔가 흔적을 남긴다. 조금 답답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