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자르기와 (트랜스)젠더(퀴어)

며칠 전 H님과 머리카락과 미용실 관련 얘기를 했었다. 머리카락을 잘랐는데 H님은 내게 역대 가장 여성스러운 스타일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며 미용실을 이용할 때 헤어디자이너가 뭐라고 하는 경우는 없느냐고 물었다. H님의 경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달라고 하면, “여자가…”라며 간섭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고, 별다른 말 없이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미용실이 멀더라고 애써 찾아가곤 했단다.


나의 경우, 직전 미용실에서 헤어드자이너가 한 번 바뀌었는데, 첫 번째는 별다른 말 없이 단발머리 컷으로 잘 잘라줬다. 별다른 말도 없었고 대체로 괜찮게 잘라줬다. 하지만 그가 출산으로 그만두면서 새로 들어온 사람에게 머리를 잘랐는데.. 어느 순간부터 남자머리를 자르고 있더라. 이것만이 아니라 너무 불친절해서(예약한 시간에 갔는데 다른 사람 머리카락을 자르느라 20분 가량을 기다리게 한다거나, 내 머리카락을 자르는 중간에 다른 손님에게 가선 한참을 의논하는데 정작 내겐 어떤 말도 없다거나) 가길 그만뒀다. 그리고 집 근처 새 미용실을 선택했고 지금까지 세 명의 헤어디자이너에게서 네 번 머리를 잘랐다. 일부러 지정을 안 했는데 그냥 그때 그때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결과는 무척 만족스럽다. 최근에 자른 머리는 가장 여성스럽다는 평도 듣고. 후후. 여성스러운 머리카락 스타일, 여성으로 통하지 않을 덩치와 외모, 이 조합은 참 좋은 조합이다. 후후후.


뭐,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덧붙인 말.


“그런데 전 남자컷 비용을 내요. 몇 천 원 더 싸죠. 후후후”


H님은 여성컷 비용을 내고 남성컷 머리를 하고, 나는 남성컷 비용을 내고 여성컷 머리를 한다. 후후. 이상한 세상.

이룸의 성적소수자 성매매 보고서, 내가 기억하는 일의 기록

어제 “이룸 포럼: 성소수자 성매매” 행사가 있었다. 2014년에야 LGBT/퀴어의 성매매 이슈를 연구한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근대 이후 한국의 공적 기록, 출판물, 언론보도 등에서 LGBT/퀴어는 거의 언제나 성매매 이슈 혹은 그와 유사한 이슈에 엮여 등장한다. 1960년대, 거리 성매매를 하다가 잡힌 여장남자, 낮엔 남편 노릇을 하고 밤엔 남성을 상대로 성판매를 하는 남장여자, 술집에서 접대일을 하다가 여장남자란 점이 들켜 경찰서에 갔다가 훈방된 사람 등. 1970년대 이태원에서 일하고 있는 중성[트랜스젠더]의 일화들, 여성 전용 카페에서 있었던 성애적 사건들. 1980년대 에이즈가 한국의 중요한 이슈가 되었을 때 게이 업소, 트랜스젠더 업소에서 일했던 이들의 반응. LGBT/퀴어의 많은 기록물은 성매매와 겹쳐 있다. 2000년대 이전으로 굳이 갈 필요도 없다. 지금도 한국에서 트랜스젠더(정확하게는 mtf/트랜스여성)는 언제나 트랜스젠더 업소, 유흥업소, 성판매와 매우 밀접한 이미지로 재현된다.

그리고 지금. 199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서 LGBT/퀴어 운동이 인권운동으로 등장했다. 1990년대 초반 트랜스젠더와 크로스드레서를 중심으로 한 모임이 등장하고, 2006년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가 발족했고 몇 년 뒤 해소했다. 20년의 시간, 10년의 시간. 그리고 LGBT/퀴어의 성매매, 특히 트랜스젠더의 성매매 이슈는 거의 이야기 되지 않고 있다. 미디어의 선정적 보도에선 가장 많이 재현되지만 LGBT/퀴어 운동에선 가장 이야기가 안 되고 있다. 나부터, 혹은 바로 내가 반성해야 한다. 이태원의 역사를 다룬 글 말고는 트랜스젠더와 성매매 관련해서 한 것이 없다. 지금까지 뭐했나 싶다. 변명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극소수에 불과한 트랜스젠더 활동가를 탓할 수는 없다. 나는 껠바사 터졌지만, 다들 잠을 줄여가며 건강이 상해가면서도 열심히 했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나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2009년 전후로 막달레나의 집 이태원 드랍인센터에서 이태원 지역의 비트랜스여성과 mtf/트랜스여성 성판매자를 만나고 그 지역을 연구하는 작업을 했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2008년 늦봄인가 가을인가, 막달레나의 집 활동가 주희 님과 통화를 했으니 그 전부터 작업을 진행하고 계셨고 이후로도 지속되었다. 다른 한 곳에선 이룸이 관련 작업을 진행했다. (다시 한 번)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2010년인가 이룸 활동가들이 LGBT/퀴어의 성매매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후 이룸 활동가였던 깡통 님과 통화를 하며, 국내 문헌의 부재와 외국 문헌을 찾는 이슈로 이야기를 나눴었다. 이후 이룸은 계속 사업을 했고, 2013년엔 ‘퀴어+성매매’로 강좌를 열었고, 어제 드디어 보고서를 발표했다. 최소한 5년은 걸린 사업이란 뜻이다. 내가 아는 게 극히 단편적 사건에 불과하니,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이 축적된 사업이란 뜻이다.

그래서 얼추 한 달 전 보고서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정말 기뻤다.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할 수 있는데 가장 이야기가 안 되고 있는 이슈니까. 더구나 트랜스젠더만이 아니라, “게이 성매매, 레즈비언 성매매, 트랜스젠더 성매매”(하지만 게이와 레즈비언 성매매로 분류된 이들 상당수가 바이/양성애자다)로 연구를 하고 보고서가 나왔다.

첫 보고서가 만족스러울 수는 없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해서 이것은 매우 대단하고 중요한 보고서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떤 형태로건 같이 할 수 있도록 내가 앞으로 더 노력해야 함 역시 말할 것도 없다. 어제 무척 부끄러웠으니까. 내가 이렇게 무지해도 괜찮을까 싶었으니까.

(어제, 이태원의 트랜스젠더 업소를 찾는 성매매단체가 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와! 트랜스젠더 삶의 조각보 만들기 프로젝트도 내년엔 관련 사업을 고민하고 있단다. 우와!)

젠더

젠더를 말한다고 해서 그 언어에 트랜스젠더나 LGB의 다른 젠더가 포섭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많은 상황에서 마치 처음 겪는 것처럼 깨닫는다. 그럴 때마다 마치 처음 겪는 것처럼 화가 나고 불쾌함을 감추기가 힘들다. 젠더로 분석한다는데 그 젠더는 정확하게 말해 이원젠더고 모든 사람을 남성 아니면 여성으로 환원한다. 그리하여 트랜스젠더가 비트랜스젠더와 다른 삶의 맥락, 바이, 레즈비언, 그리고 게이가 이성애자와는 또 다르게 겪고 있는(또한 당연히 유사하게 겪고 있는) 젠더화된 삶의 미묘한 맥락이 모두 사라진다. 그런데도 이원젠더를 모두에게 일괄 균질하게 적용하면서 정당한 접근으로 이해하는 모습을 볼 때, 때론 화가 난다.

이원젠더를 젠더로, 그리하여 LGBT/퀴어를 이원젠더로 환원해서 설명하는 방식과 모든 인간을 이원젠더로 환원하는 방식 자체를 젠더로 재독해하는 방식, 서로 다른 젠더 이해가 지금 충돌하고 있다. 그럼 이것은 트랜스젠더를 젠더로 부르는 방식, 젠더퀴어의 등장 등과 어떻게 연결해서 다시 사유할 토대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