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글
어떤 감정은 글을 쓸 수 있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지만, 어떤 감정은 글의 문을 막으며 어떤 글도 쓰기 힘들게 한다.
나도 미쳤지, 알바 따위가
지금 하는 일이 3주도 안 남은 지금, 오늘 빼고 열두 번 정도만 더 출근하면 끝나는 지금 내년에 내가 일을 할 것인지 아닌지를 묻는 사람이 없다. 일반적인 경우에 이것은 재계약이 없다는 뜻이겠지? 올해가 끝나가고 있는 상황 자체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내게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물어보지도 않는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내년에도 유지할지 그것부터 알 수 없다. 나로선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이니 내게 인수인계문서를 작성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도 없다. 일단 11월로 계약이 끝나지만 그 이후로 처리할 일이 이것저것 여러 가지인데 이와 관련해서 대비하는 사람이 없다. 나도 미쳤지, 이런 상황인데도 나 혼자 알아서 인수인계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미쳤다.
누구도 내게 내년에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묻지 않았고 당연히 인수인계문서도 요청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 혼자 인수인계문서를 작성했다. 내가 일을 그만두면 이 일을 당장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팀이 바뀌었기 때문에) 사실상 없다. 그걸 걱정했다. 미쳤다. 계약직 알바 따위가 정규직의 일을 걱정하며 대비하고 있었다. 정말 웃긴 일이다. 계약으로 정해진 월차나 연차도 없어서 아플 때 쉴 수 있는지는 오직 담당자의 선의에 따를 수밖에 없다. (올해 계약할 때 월차를 계약조건에 넣길 요구했지만 당시 담당자는 이를 거부했다.) 담당자가 선의를 베풀지 않으면 아파도 출근해야 한다. 아니, 이런 것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어떻게든 눈치가 보이고 쉽지 않다. 뭐, 이런 조건인데도 알바 따위가 정규직을 염려하고 있었다. 나도 미쳤지. 정말 미쳤지.
지금까지 내게 잘 해 준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은 업무 조건과는 별개의 문제다. (더구나 어젠 빡칠 뿐만 아니라 혐오스러운 일도 있어서) 내가 인수인계문서를 만들고 말고 할 필요가 없다. 알바 따위, 계약직 따위 그냥 그만두면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