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보리가 함께 살기 시작한지 다섯 달이 지났다. 그 사이, 둘의 관계가 매우 친해지진 않았다. 서로를 그루밍해주며 애정애정 행각을 하지는 않는다. 바람이 뭔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려고 하면, 보리가 달려가서 방해하고, 보리가 다가오면 바람은 화를 내며 싫어한다. 그런데도 둘은 종종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정도로 가까이 있곤 한다. 아래 사진처럼. 사진만 보면 매우 친한 것 같기도 한데, 일상에선 딱히 그렇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렇게 가까이 머물곤 한다. 거리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가까워지고 있다.
바람, 보리, 고양이
바람과만 살 때, 그리고 바람의 동생을 들이는 상상만 할 때 나는 바람의 동생은 바람과 같은 성격이길 바랐다. 바람처럼 조용하고 차분하고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성격이길 바랐다. 뭐든 무서워하고 놀라서 내가 다가가도 후다닥 도망가곤 하는 성격이 가끔은 싫지만 그래도 바람과 같은 동생이 들어오길 바랐다. 이 착한 고양이를 또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보리가 왔다. 보리는 … 바람과 완전 다른 성격이다. 내가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는데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것은 기본이다. 어디 부딪혀도 개의치 않고 우다다 달리고 뭐든 가지고 놀고 호기심 천국이다. 물론 호기심 천국이라 곤란할 때가 많지만. 아무려나 바람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성격이라 내가 처음 상상하고 기대했던 그런 동생 고양이는 아니다.
하지만 요즘 이렇게 다른 둘을 보고 있으면, 성격이 달라서 참 다행이다 싶다. 성격이 달라서 오히려 좋기도 하다. 바람은 보리 덕에 조금은 용감해졌다. 보리가 오기 전엔, 바람이 물을 마시고 있을 때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후다닥 도망갔다. 지금은 물을 마시고 있을 때 내가 조금 움직이면 긴장은 하지만 도망가지는 않는다. 보리는 바람과 지내며 어쩐지 차분하게 있는 법을 배우는 것 같기도 하다. 때론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지만, 어떤 땐 많이 차분하게 행동하는 느낌이다. 귀여운 아이들.
다른 성격 덕에 나도 고양이와 관련해서 많은 걸 배운다. 정말 개묘차야 개묘차. 그리고 다른 성격이라 서로 충돌도 하지만 그런 만큼 서로에게 배우니, 같이 사는 나도 심심하지 않아서 좋아.
10년 전의 나를 만나다
공연을 보러 마포아트센터에 갔다. 마포아트센터라니, 나로선 마포문화체육관이란 명칭이 더 익숙하다. 건물을 처음 지었을 땐 마포문화체육관으로 부르더니, 몇 년 지나 뜬금없이 마포아트센터로 변경했었다. 영어로 명칭을 바꾸면 뭔가 더 있어 보이는 걸까? 무슨 이유에서일까?
명칭의 바뀌었다는 걸 아는 건, 마포아트센터에 자주 방문했기 때문이 아니다. 이번이 고작 두 번째다. 전혀 다른 이유, 마포아트센터 근처에 살았기 때문이다. 걸어서 1분도 안 될 거리에서 자취를 했다.
마포아트센터 근처, 듬성듬성 있는 아파트 사이로 오래된 주택이 밀집해 있다. 혹자는 그곳을 두고 “무슨, 달동네인 줄 알았다. 지금도 저런 동네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네.”라고 했다. 경찰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곳. 이태원의 보광동이 무슨 일이 생길 줄 몰라서, 혹은 인종차별주의로 경찰이 수시로 감시하는 곳이라면 마포아트센터 근처는 그냥 방치되는 느낌이었다. 그런 곳에서 미국바퀴가 날아다니는 것만 빼면 나는 무척 잘 살았다. 2년을 채우고 바로 이사를 했지만 미국바퀴를 피하려는 이유에서였다. 명절에 본가에 갔다 오기 위해 집을 비우면서 화장실의 작은 창문을 약간 열어두면, 귀가했을 때 화장실 변기 안에 죽은 미국바퀴가 두어 마리는 있고 바닥에도 죽은 미국바퀴가 몇 마리 있곤 했다. 미국바퀴가 싫어서 혹은 무서워서 이사를 했지만 나는 괜찮은 동네라고 여겼다. 그 동네를 떠나고도 한동안 그 동네가 그리웠다.
마포아트센터를 찾은 김에 예전에 살던 집을 찾아갔다. 동네는 여전히 낡았고 한적했다. 살던 집으로 가니 내가 살던 방 위에 있던 창고(?)의 일부분이 헐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쥐들이 뛰어다니면, 방에 있던 나는 우다다하는 소리를 들었지. 동네 분위기는 어쩐지 재개발을 앞둔 느낌이었다. 붉은색 락카로 번호가 적혀 있었고 철거 예정을 알리는 문서가 문 앞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어느 한 곳 불켜진 곳이 없었다.(다음날 다시 방문했을 때 불 켜진 집이 한 곳 있었다.)
얼추 10년 전이다. 그때 나는 많이 힘들었다. 잠깐이지만 본가와 완전히 연락을 끊기도 했고,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휴학한 다음 창고정리알바를 하기도 했다. 이런 일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마음이 안 좋았다. 마음이 가장 불안했던 시기였다. 여전히 열광하는 뮤즈(Muse)와 니나 나스타샤(Nina Nastasia)를 들으며 간신히 버틴 시기기도 하다. ‘루인’이란 이름을 처음 만들고 사용한 곳/시기이기도 하다. 장마철 습기로 모든 옷에 곰팡이가 연하고 넓게 피었고, 옷에서 튿어진 실밥을 없애려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가 옷에 핀 곰팡이에 불이 옮겨붙으면서 내 몸도 불에 탈뻔 했었다. 그리고 팔에 붉은 꽃이 여러 번 피었다.
내겐 생생한 느낌인데 벌써 10년 전이라니. 어쩐지 기분이 묘했다. 언젠가 나는 또 다시 천장에서 쥐가 뛰어다니는 문간방에 살 수도 있고, 지금과 같은 동네에서 어떻게든 삶을 유지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떤 곳이건 나는 또 좋다고 살아가겠지. 그저 10년 전의 나를 만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위에 부서진 창고 같은 건물이 보인다. 그 아래, 문간방에서 살았다.
위에 부서진 창고 같은 건물이 보인다. 그 아래, 문간방에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