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압받는 이슬람권 트랜스젠더 “생지옥”
2014-09-30 10:54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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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구글플러스에 이슬람 문화권의 말레이시아 트랜스젠더 관련 기사를 링크했다. 별다른 언급 없이 기사만 링크했는데 복잡한 마음이 들어 메모를 남기기 어려웠다.
그래, 세계 곳곳의 트랜스젠더는 어렵게 살고 있다. 어렵게 살고 있고 다양한 폭력을 겪으며 살고 있다. 폭력 피해 경험은 트랜스젠더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기사는 어쩐지 쓸쓸하고 슬프고 분노를 야기한다. 하지만 또한 이 기사는 한국의 상황과 등치할 수 없고 나의 상황과도 등치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이다. 나와 매우 밀접하면서도 또 나와 매우 다른 그런 관계를 나는 기사로, 접한다.
그런데 나는 이 기사가 편하지 않다. 어쩐지 이 기사는 ‘가난하고 덜 발달된’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며 반인권적 이슬람 문화’라는 인식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이 기사가 이슬람 문화의 말레이시아를 기술하는 방식은 고통과 폭력 피해, 인권 침해로 제한된 형태다. 이른바 제3세계를 재현하는 전형적 태도랄까. 단순히 이 태도가 문제가 아니라 이 글엔 한국의 상황, 한국의 트랜스젠더와 말레이시아의 트랜스젠더 간 연결성 같은 것이 전혀 없다. 그저 ‘야만적 이슬람 문화의 불쌍한 트랜스젠더’가 있을 뿐이다.
기사의 내용은 말레이시아의 트랜스젠더가 살아가는 삶의 극히 일부만을 포착했을 것이다. 여러 의미에서 그러한데, 폭력 피해 경험의 극히 일부만을 포착한 것이자, 말레이시아 트랜스젠더의 삶엔 폭력 피해가 전부가 아닌데도 마치 그것 뿐이란 것처럼 단편적 묘사만 존재한다. 물론 짧은 기사에 얼마나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을까? 기사는 특징을 고려하면 일견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싶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있거나 납득할 수 있는 태도는 아니다.
무엇보다 이 기사에 나타나는 태도는 한국의 트랜스젠더를 묘사할 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법과 제도에 있어 아무런 장치가 없어서 피해 받고 불쌍한 트랜스젠더라는 묘사는 한국에서도 매우 흔하다. 젠장. 법과 제도가 없는 것은 고통이나 피해의 이유가 아니다. 법과 제도가 삶을 구해주지도 않는다. 삶은, 특히 트랜스젠더의 삶의 많은 부분은 트랜스젠더 이슈에 특정한 법과 제도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기존의 여러 법이 있음에도 트랜스젠더에게 제대로 적용되지 않거나 트랜스젠더가 그 법의 예외로 구성되기 때문에 문제다.
타인의 삶, 고통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는 매우 민감하고 어려운 문제인데, 그래서 링크한 기사는 참 마음 복잡하다. 그렇다고 내가 이 기사의 기자보다 잘 쓸 수 있느냐면 솔직히 그럴 자신은 없다. 아마, 나 역시 이 기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에서 글을 쓸 것이다. 그래, 바로 이것이 이 기사를 읽으며 내가 불편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