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라

사르트르는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의 유명한 대목에서 1942년 프랑스의 어느 젊은이가 처한 딜레마를 그려 보인다. 젊은이는 의지할 곳 없고 노쇠한 어머니를 보살펴야 한다는 의무와 레지스탕스에 들어가 독일군과 싸워야 한다는 의무 사이에서 고뇌한다. 물론 사르트르의 논점은 이 딜레마에 선험적인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무한한 자유만을 근거로 삼아 결정을 내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완전히 떠맡아야 한다. 이 딜레마에서 벗어난 외설적인 제 3의 길은, 어머니에게는 레지스탕스에 들어간다고 말하고, 레지스탕스 동료들에게는 어머니를 보살펴 드릴 거라고 말한 뒤, 실제로는 외딴 곳에 틀어박혀 공부하라고 충고해 주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 <폭력이란 무엇인가> 이현우, 김희진, 정일권, 옮김. 31-32쪽.
지젝에게 호감도가 +1 상승하도록 한 문구다. 무엇이 공부인지는 논의가 필요하지만, 뭔가 즉시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일단 머뭇거리면서 고민을 하는 것, 좀 천천히 발언하는 것, 더디게 개입하는 것, 뭐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일단 행동부터 하기보다는 공부를 하고 천천히 고민하는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 구절이 좋다. 공부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매니큐어

오랜 만에 정말 오랜 만에 매니큐어를 다시 바르고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페디큐어를 했으니 하는 김에 매니큐어도 한달까. 그러면서 오랜 만에, 정말 오랜 만에 매니큐어를 다시 구매하고 있다. 퀵드리이도 구매했고 탑코트도 구매했고.
예전에 매니큐어를 구매할 땐 한 곳에서만 구매했다. 하지만 요즘은 몇 곳의 화장품 가게를 고루 돌아다니면서 한두 개씩 구매하는데, 그러면서 깨닫길 화장품 가게마다 품질이 많이 다르다. 색깔이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아리따움. 비슷한 색깔이어도 아리따움의 매니큐어가 색깔이 잘 나오고 펄도 잘 나온다. 마음에 들어.
다음에 매니큐어 사진 몇 장… 후후.
참.. 지하철을 타거나 그럴 때 저를 경멸하고 멸시하는 표정은 자주 마주하고 있습니다. 후후후.

폭력적 퀴어 운동을 상상하기

내년 퀴어문화축제엔 일단 기괴한 화장을, 더 정확하게는 카메론 미첼의 헤드윅 화장을 하는 거야. 헤드윅 뮤지컬 배우의 화장을 보면 미첼은 기괴한 포스에 간지가 작렬하는데 한국에서 진행한 헤드윅의 배우들은 그저 예쁘장한 분장을 하더라고. 미첼의 헤드윅 화장을 하고 천사 복장을 입고, 내키면 한 명 정도는 예수 코스프레도 하는 거지. 그리고 올해처럼 내년에도 일부 교회에서 방해 집회를 하면 기괴한 분장을(배트맨 다크나이트의 조커 분장도 괜찮겠다) 한 예수와 대천사 코스프레를 하는 무리가 화염병을 던지는 거지. 후후후. 짜릿하지 않아? 화염병이 좀 그러면 짱돌 정도?

어제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가 떠오른 또 다른 아이디어도 있어. 내년 퀴어 퍼레이드 때는 트럭 위에서 몸을 십자가에 묶고, 몸에 바늘을 꽂았다가 뽑는다거나, 칼로 몸에 상처를 내며 피를 흘리는 S/M 쇼를 하는 거지. 이건 좀 해보고 싶어. 퍼레이드 행사에서 이걸 하면 상당히 재밌을 거 같아. 트럭 위에서 춤을 추고 사람들의 흥을 북돋우는 것도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일이지만, BDSM을 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

폭력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저항 운동 마저도 ‘비폭력’ 강박에 빠지고 매우 조신하게 움직이는 게 꽤나 답답했던 평소 고민이 툭툭 튀어나오고 있어. 사회적 소수자가 공적으로 발언할 때면 우아하고 친절하게 얘기를 해야 하고, 다른 어떤 흠도 잡혀선 안 된다는 고민을 하기 쉬워. 사회적 소수자가 조금만 격렬하게 행동해도 ‘그렇게 하면 우호적인 사람도 다 떨어져 나간다’는 걱정(이라고 주장하는)이 등장하지. ‘나는 LGBT에 우호적이지만 그렇게 행동하는 건 좀 그렇고 그렇게 하면 누구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란 식의 글도 무척 많지. 헛소리 하지마. 친절하고 비폭력적으로 말을 한다고 해서 이 사회가 사회적 소수자의 말을 듣느냐면, 전혀 아니야. 결코 안 들어. 사회적 소수자는 친절하고 순응할 때가 아니라 저항하고 거스를 때 권력, 저항의 강력한 힘을 획득할 수 있어.

퍼레이드에서 화염병을 던지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던지지 말자는 이야기도 아니고!) 요즘처럼 모든 운동이 비폭력, 촛불, 조심조심하고 적법한 수준에서만 진행하려는 태도는 무척 답답해. 화염병을 던지던 방식이 지금의 촛불집회 방식보다 좋다며 비교 우위 식 평가를 하려는 것은 아니야. 어떤 것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어. 지금처럼 비폭력, 비폭력, 비폭력 강박에 빠지고 조금만 격렬해도 비난하는 분위기가 답답하고 납득이 안 될 뿐이야. 퀴어 운동, 트랜스젠더 운동, 트랜스퀴어 운동은 좀 더 폭력적으로 운동을 진행할 수 없는 걸까? 정말 대천사 코스프레로 화염병 좀 던져야 할까? 어떻게 하면 지금의 ‘비폭력’이란 한계를 깰 수 있을까?

화염병과 촛불 사이에서, 혹은 그 너머의,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매우 폭력적인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