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이 주는 감각

한 가지 알바를 오래하는 것을 참 싫어했다. 아니, 싫어했다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살지 않았다. 물론 알바 주제에 비슷한 직종의 일,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할 수 없는 현실 문제도 있다. 학부 시절부터 해서 이것저것 참 많은 알바를 했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포장 알바, 택배 집하장 알바, 문제집 교정 알바, 헌책방 알바, 건축물 조감도 제작 업체 알바, 대형할인마트에서 판매 알바, 회사 창고 정리 알바 등. 헌책방 알바를 제외하면 다들 두세 달, 혹은 서너 달이 전부였다. 어떤 것은 내가 익숙해지거나 적응하기 싫어서 그만 뒀고, 어떤 일은 처음부터 2달 계약이었고 어떤 일은 그냥저냥 하다보니 단기로 끝나는 식이었다.

이렇게 단기로 일을 바꾸는 게 그리 불편하진 않았다. 당장 수입이 중요한 나로선 무슨 일이든 하면 되고 무슨 일이든 할 수만 있으면 되니까. 수입의 안정성은 바라지 않았는데, 원가족의 경우 내가 어린 시절부터 수입이 불안정한 경우는 없었던 것 같지만 넉넉하거나 여유가 있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쪼달리거나 불안한 것이 몸에 체화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냥 다음달만 버틸 수 있으면 나로선 충분했다. 지금 일을 그만둬도 한두 달만 버티면 괜찮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기. 이런 사회 구조가 괜찮다거나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며 이것을 불만으론 경험해도 불안으로 경험하진 않았다.

그러다가 좀 장기적으로 일한 곳이 헌책방 알바였다. 정말 좋았지. 아직도 내 생애 가장 좋았던 알바로 꼽는다. 수입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당시 기준으로 최저임금보다는 많이 받았지만 절대 수입은 적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역대 가장 장기계약을 했고(처음엔 5개월로 계약했는데 이것이 가장 길었던 계약이었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단발적으로 했고, 몇 달만 일하자고 얘기했다가 1년 정도 일하기도 했다. 지속될 수 없지만 익숙한 일이었기에 좋았다고 기억한다.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아도 언제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내게 무슨 능력이 있다는 게 아니라, 최저임금을 주니 안 주니 하는 곳도 적잖지만 어쨌거나 알바를 뽑는 곳은 어디든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 일을 몇 년 연속으로 하고 있다(일년 내내 일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무실 안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일. 처음인 것 같다. 운이 좋다면 운이 좋게도 몇 년 연속 재계약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정말 그만둬야겠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안정적 수입이 주는 어떤 달콤함이 있다고 해도, 이런 일에 안주하고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것이 두렵고 또 싫기 때문이다. 이 일이 아니어도 알바는 많은데, 이런 생활에 안주해도 괜찮을까? 수입이 대폭 줄어 대출이자를 제대로 못 갚는 상황이 오면 엄청 아쉬워하겠지만 그럼에도 뭔가 지금 상황을 중단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불안과 걱정이 내 몸 한 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내가 할 일은 이런 곳이 아니라 좀 더 폼 나는 곳이라는 망상이 있어서가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힘든 일을 기피한다’는 따위의 헛소리에 동조해서도 아니다. 그저 어떤 공간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상황이 싫다. 낯설고 어색하고 어리버리하더라도 낯섦이 주는 어떤 감각이 좋은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할까? 사실 어느 곳에서 내년부터 일을 하느냐 마느냐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떻게 될진 아직 모른다. 어떻게 결정이 나건 상관없이 올해로 지금 일을 그만둘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다. 난, 반드시 필요한 나사나 부품이 아니라 손쉽게 대체할 수 있는 부품이 되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당사자주의가 주는 짜증…


“나는 트랜스젠더다. 따라서 나는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 누구보다 관심이 많고 남들보다 많이 안다. 관련 이야기를 할 때 비트랜스젠더가 트랜스젠더인 나보다 잘 알리가 없으며 내가 불편하면 그건 문제가 있으니 내게 사과해야 하고 시정해야 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한다. 비트랜스젠더가 나보다 잘 알 수도 없다.”

이런 식의 언설은 정말 기분 나쁘다. 논리적 반박은 불가능하다. 이 상황에서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트랜스젠더 뿐이다. 다른 트랜스젠더의 반박도 반박이 아니라 잘못된 인식으로 치부될 가능성도 있다.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다른 범주 용어를 넣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반박을 반박으로 받아들이건 잘못된 인식으로 받아들이건 중요하지 않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면, 나를 트랜스젠더라고 말하면서 반론을 펴기 싫다. 그 프레임에서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개개인의 다양하고 복잡한 목소리는 많이 많이 드러나야 한다. 그것이 매우 문제가 많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많이 드러나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말이 유일한 언어, 유일한 판단 기준이어선 안 된다. 그것은 그저 많은 발언 중 하나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지 유일한 언어로 자리잡는다면 그것이 매우 ‘옳은’ 언어라고 해도, 결국 ‘재앙’이 될 뿐이다. 이렇게 믿는다.

+어떤 유사한 말을 듣고 빡친 상황. 아우, 짜증나. 이렇게 짜증을 잔뜩 내는 것을 보니, 저 역시 ‘나는 트랜스젠더니까 내 말은 옳다’고 믿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식을 지닌 듯합니다. 크릉… 끄응…

코는 몸이다

비염이 터지고 나면 온 몸이 아프다. 하루 종일 코를 훌쩍이고 맑은 코를 계속 풀고 또 어떻게든 비염이 진정되길 바라면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면 에너지 소모가 크다. 그래서 비염이 터진 날은 다른 날보다 좀 잘 챙겨먹으려고 한다. 잘 챙겨 먹는 것과 별개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계속 코를 풀고 난 다음이면 코와 그 주변이 헌다. 하지만 이것만이 후유증이 아니다. 뼈마디가 쑤시고 뒷목 혹은 목 뒷덜미 부위는 그냥 아프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아무려나 그냥 아프다. 두통은 당연하다. 얼굴 부위의 통증으로 끝나지 않는다. 온 몸의 뼈마디가 쑤시고 근육이 풀리면서 아프기도 하다. 온 종일 긴장하고 또 신경을 잔뜩 세운 상태니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그러니 비염은 상당한 졸음 혹은 피곤을 동반하고 훌쩍거릴 때도 비염이 어느 정도 진정될 때도 졸린다. 꾸벅꾸벅.

비염이 터지고 나면 코는 몸의 일부지만 또한 몸 자체란 느낌을 어떤 사실처럼 깨닫는다. 어떻게 보면 그저 맑은 콧물이 줄줄 흐르고 때때로 재채기를 연달아 할 뿐인 증상이다. 하지만 비염이 지속될 수록 몸의 다른 부위는 점점 코로 집중된다. 코에 내 몸이 있고 내 코가 내 몸이다. 콧물 하나에 온 신경을 다 쏟아야 하고, 콧물 하나에 온 근육을 다 동원에서 어떻게든 견디려고 애써야 한다. 코가 몸이다. 내 몸이 내 코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