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주의가 주는 짜증…


“나는 트랜스젠더다. 따라서 나는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 누구보다 관심이 많고 남들보다 많이 안다. 관련 이야기를 할 때 비트랜스젠더가 트랜스젠더인 나보다 잘 알리가 없으며 내가 불편하면 그건 문제가 있으니 내게 사과해야 하고 시정해야 하며,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줘야 한다. 비트랜스젠더가 나보다 잘 알 수도 없다.”

이런 식의 언설은 정말 기분 나쁘다. 논리적 반박은 불가능하다. 이 상황에서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트랜스젠더 뿐이다. 다른 트랜스젠더의 반박도 반박이 아니라 잘못된 인식으로 치부될 가능성도 있다.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다른 범주 용어를 넣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반박을 반박으로 받아들이건 잘못된 인식으로 받아들이건 중요하지 않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면, 나를 트랜스젠더라고 말하면서 반론을 펴기 싫다. 그 프레임에서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개개인의 다양하고 복잡한 목소리는 많이 많이 드러나야 한다. 그것이 매우 문제가 많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많이 드러나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말이 유일한 언어, 유일한 판단 기준이어선 안 된다. 그것은 그저 많은 발언 중 하나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하지 유일한 언어로 자리잡는다면 그것이 매우 ‘옳은’ 언어라고 해도, 결국 ‘재앙’이 될 뿐이다. 이렇게 믿는다.

+어떤 유사한 말을 듣고 빡친 상황. 아우, 짜증나. 이렇게 짜증을 잔뜩 내는 것을 보니, 저 역시 ‘나는 트랜스젠더니까 내 말은 옳다’고 믿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식을 지닌 듯합니다. 크릉… 끄응…

코는 몸이다

비염이 터지고 나면 온 몸이 아프다. 하루 종일 코를 훌쩍이고 맑은 코를 계속 풀고 또 어떻게든 비염이 진정되길 바라면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면 에너지 소모가 크다. 그래서 비염이 터진 날은 다른 날보다 좀 잘 챙겨먹으려고 한다. 잘 챙겨 먹는 것과 별개로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계속 코를 풀고 난 다음이면 코와 그 주변이 헌다. 하지만 이것만이 후유증이 아니다. 뼈마디가 쑤시고 뒷목 혹은 목 뒷덜미 부위는 그냥 아프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아무려나 그냥 아프다. 두통은 당연하다. 얼굴 부위의 통증으로 끝나지 않는다. 온 몸의 뼈마디가 쑤시고 근육이 풀리면서 아프기도 하다. 온 종일 긴장하고 또 신경을 잔뜩 세운 상태니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그러니 비염은 상당한 졸음 혹은 피곤을 동반하고 훌쩍거릴 때도 비염이 어느 정도 진정될 때도 졸린다. 꾸벅꾸벅.

비염이 터지고 나면 코는 몸의 일부지만 또한 몸 자체란 느낌을 어떤 사실처럼 깨닫는다. 어떻게 보면 그저 맑은 콧물이 줄줄 흐르고 때때로 재채기를 연달아 할 뿐인 증상이다. 하지만 비염이 지속될 수록 몸의 다른 부위는 점점 코로 집중된다. 코에 내 몸이 있고 내 코가 내 몸이다. 콧물 하나에 온 신경을 다 쏟아야 하고, 콧물 하나에 온 근육을 다 동원에서 어떻게든 견디려고 애써야 한다. 코가 몸이다. 내 몸이 내 코에 있다.

주제 고민…

어떤 연구를 선행해야 하는지, 그러니까 어떤 연구가 상대적으로 시급한지를 판단하는 문제는 참 어렵다. 결과적으론 내가 끌리고 지금 연구하기에 즐거운 주제를 선택하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종종 갈등할 때가 있다.

구체적으로, ‘트랜스퀴어 혐오폭력과 이성애 범주의 구성’이란 주제와 ‘구금시설과 트랜스젠더’는 나름 오랜 시간 묵히고 있는 주제다. 둘 다 아이디어 메모는 있는 단계기도 하다. 둘 다 작업에 들어가면 ‘하악하악’하면서 진행할 주제기도 하다. 그런데 이 중 어떤 주제를 먼저하면 좋을까? 주제를 선정한다는 것은 시급성 혹은 시의성을 판단한다는 뜻이기도 한데 이럴 때 어떤 주제를 지금 이 순간 선택해야 할까?

주제의 중요성만 따진다면 ‘구금시설과 트랜스젠더’에 약간의 무게를 더 주고 싶다. 이 주제는 정말 할 이야기도 많고 해야 할 말도 많다. 내겐 부채의식이 있는 주제기도 하고. 그럼에도 나 역시 엄청 미루고 미적거리는 주제기도 하다.

그렇다고 ‘트랜스퀴어 혐오폭력과 이성애 범주의 구성’이란 주제가 덜 중요하냐면 그렇지 않다. 이것 역시 매우 중요한 주제다. 그리고 쉽게 눈치 챌 수 있겠지만 이 주제는 ‘구금시설과 트랜스젠더’ 주제와 매우 밀접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럼 어떤 걸 먼저 해야 할까? 여기서 고민과 갈등이 소록소록 피어난다. 물론 귀찮으면 전혀 다른 주제를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고민이다. 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