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적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트랜스젠더 정치, 퀴어 정치가 끊임없는 불편을 야기하는 정치학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오늘의 불편함이 내일의 패션이 될 때, 또 다른 불편함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불편함을 야기하는 자신의 삶을 견딜 수 있거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고단함이 일상일 수도 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하면, 내가 어떤 자리에 갔을 때 그때도 끊임없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어딜 가면 참 편하다는 말(어떤 사람과 함께 있으면 편하다는 것과 다른!)은 나의 감각이 무뎌지고 있거나 안주하기 시작했다는 게 아닐까. 그런 것은 아닐까.
칼리피아 옵하의 메모를 읽다가 문득 반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