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

언젠가 적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트랜스젠더 정치, 퀴어 정치가 끊임없는 불편을 야기하는 정치학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오늘의 불편함이 내일의 패션이 될 때, 또 다른 불편함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불편함을 야기하는 자신의 삶을 견딜 수 있거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고단함이 일상일 수도 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하면, 내가 어떤 자리에 갔을 때 그때도 끊임없이 불편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어딜 가면 참 편하다는 말(어떤 사람과 함께 있으면 편하다는 것과 다른!)은 나의 감각이 무뎌지고 있거나 안주하기 시작했다는 게 아닐까. 그런 것은 아닐까.
칼리피아 옵하의 메모를 읽다가 문득 반성하고 있다.

귀가

대체공휴일도 있고 해서 좀 길게 부산에 다녀왔다.

부산에선 대체로 무난하게 지냈다. 뇌수술을 하면 몇 년 간 성격이 변한다고 했다. 화를 잘 내는 성격으로 변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특히나 별일 아닌데 버럭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본인도 모르게 그렇게 된다고. 그래서 걱정을 좀 했는데 정반대로 바뀌었다. 그 동안 화를 내거나 집요하게 말씀하시던 이슈를 대충 말하곤 그냥 넘어가고 있다. 오호… 물론 여전히 결혼을 요구하지만(어머니, 저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어요. 물론 이른바 ‘결혼 적령기’도 높아지고 있다는 게 함정이지만 -_-;; ) 예전만큼 집요하거나 그렇진 않다. 이렇게 몇 년 버티면 뭐라도 되겠지. 아무려나 예전보다는 좀 더 편한 느낌이라서 그냥 어머니와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 고양이판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좀 심하다 싶은 그런 고양이판이었다. 바람만 있을 때의 두 배가 아니라 바람만 있을 때의 네 배 수준인 듯. 하긴, 바람만 있을 땐 청소하고 몇 시간은 그럭저럭 깔끔했는데 보리가 오고 나서 청소하고 10분이면 청소하기 전 상태로 돌아가지. 우후후. 발랄하고 활달한 고양이 같으니라고. ;ㅅ;

그나저나 왜 자꾸 트래픽초과가 나오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