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총선이 있고 그래서 현역 국회의원 중에는 불출마를 선언하는 이들이 종종 나온다. 그 중에는 전문가, 특정 주제를 깊이 있게 알고 있는 교수가 불출마를 할 때가 있고 최근에도 그런 선언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마다 하는 이야기는 비슷하다. 4년 동안 엄청 노력했지만 정치는 바뀌지 않았고 실망했고 그래서 학교로(혹은 휴직한 직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당혹스럽다. 4년을 일하고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고, 정치권이 바뀌지 않았다고 실망했다고? 4년 만에 바뀔 세상이었다면 그 전문가가 들어가지 않았어도 바뀌었을 것이다. 정치는 한 명의 전문가가 들어간다고 해서 쉽게 바뀌는 영역이 아니며, 정치는 한국 사회가 작동하는 모든 권력과 구조가 압축해 있는 곳이자 그 모든 곳에 영향을 끼치는 공간이다. 그러니 변화는 급진적일 수도 있지만 대단히 더디기도 하다. 무엇보다 4년이라는 시간은 정치의 변화, 사회적 변화를 모색하기에 짧은 시간이며, 한 명의 전문가가 그 변화를 만들기에는 과도한 욕심이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1990년대부터 한국에서 퀴어 운동에 참여해서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을 떠올린다. 30년에 가까운 시간을 활동했고 한국 사회는 때때로 급격히 변했고 때때로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어떤 점은 좋아졌고 어떤 점은 상당히 나빠졌다. 하지만 그들 누구도 내가 4년을 해봤는데 변하지 않았다며 쉽게 실망을 말하지 않는다. 지칠 수 있고, 화가 날 수는 있지만 변하지 않는 사회에 실망했으니 그만두겠다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실망해서 불출마한다는 국회의원의 말을 들을 때마다 몇 십 년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권 운동 활동가들이 떠오른다. 다른 말로 사회적 변화의 장에서 활동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전문가일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리고 또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치인이 정치 혐오를 생산하면 어떡할까 싶다. 마치 나는 깨끗하고 열심히 했는데 다른 국회의원은 모두 잘못되었고, 무엇보다 한국 정치는 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잘못되었다는 식의 발언. 그 발언은 정치의 변화, 사회의 변화를 도모하는 발언이 아니라 익숙한 정치 혐오를 재생산하는, 상당히 무책임한 발언일 뿐이다. 예를 들어 2023년 국정감사기록실의 내용을 듣고 있으면, 언론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 국회의원은 정말 열심히 일했고 다양한 제도의 변화를 위해 노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노력이 구체화되지 않았을 수 있고, 4년 내내 노력했음에도 그 노력이 성과를 만들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노력했고 또 노력하고 있다. 그 모든 노력이 그저 “조회수가 안 나온다”는 핑계로, 혹은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제대로 기사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많은 국회의원은 혹은 정치인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그 방향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말이다. 그 모든 노력을 무시한다면 당신의 4년은 무엇이었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다.
사실 4년의 노력이 짧은 시간은 아니며, 그 동안 아둥바둥 노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실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불출마에 그 실망을 이유 삼으며 정치 혐오를 재생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 자신이 했던 노력도 부정하는 그 말은 변화의 토대를 허무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