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

일전에 티셔츠의 앞부분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좋은 공간이라고 적었다. 그 전엔 티셔츠를 간단하게 디자인할 수 있는 앱이 있다는 글도 적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다들 예상하셨겠지만) 티셔츠를 주문했다. 얼추 열흘 정도 지난 어제 티셔츠가 도착했다.
첫 번째는 이것.

This is AAA. Not Battery.
It’s Transgender Body Politics.
예전에 쓴 적 있다. AAA 사이즈 가슴은 트랜스젠더에게 흥미로운 몸 정치학이라고. 그래서 그것으로 살짝 장난친 티셔츠다. 컵 이미지는 구글링으로 구했고, 그래서 판매용으로 제작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사실 좀 더 재밌게 디자인하면 좋겠다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점도 아쉽다.
두 번째는 이것.

그냥 퀴어와 관련한 여러 용어를 나열한 티셔츠다. 테스트 삼아 제작한다면 이것이 딱 좋겠다 싶었다. 색깔을 바꾸고, 용어를 추가해서 원한다면 추가 제작할 의향도 있고. 글씨가 약간 번졌지만 크게 무리는 없으며 프린트지만 세탁으로 지워질 성격의 프린트는 아니라 만족스럽다.
전반적으로 엄청 만족스럽지는 않다. 색깔이 복잡하면 조금 애매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꽤 만족스럽고 몇 벌 더 제작할 듯하다. 아마 앞으로 이곳에서 제작한 옷을 주로 입고 다니지 않을까 한다. 퀴어 용어를 나열한 티셔츠는 토요일에 프리실라 볼 예정인데, 그날 입고 가면 딱이겠다.

고양이 책, 트랜스젠더 책, 글쓰기 연습

퀴어 이슈나 트랜스젠더 이슈에 관심이 없을 법한 사람이 내가 만약 고양이 관련 책을 쓴다면 살 의향이 있다고 말한 적 있다. 한 명은 아니고 몇 명인가 그랬다. 그렇다고 또 많은 수는 아니고. 아무려나 나는 이 말을 들으며 재밌다고 느꼈지만 당연하겠다 싶기도 했다. 고양이 책 독자와 트랜스젠더 책 독자는 다르다. 매우 다르다. 그리고 고양이 책 독자가 훨씬 폭넓지만 또 상당히 까다롭고 까탈스럽다. 그러니 고양이 책을 쓴다는 것은 트랜스젠더 이슈로 글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트랜스젠더 이슈로 글을 쓴다면, 사실 대충 각은 나온다. 물론 그게 무척 진부한 형태라서 그 각으로 글을 쓸 수는 없다. 재밌게 쓰려면 근본적으로 흔들어야 하지만 대충 흐름과 꼴은 잡힌다. 그리고 어차피 안 팔릴 책인데 내가 하고 싶은 말 마구마구 쏟아내면서 쓰겠지.
고양이 이슈로 글을 쓴다면, 각이 안 나온다. 고양이 안내서만 수십 권이고 고양이 관련해선 유명한 저자도 여럿이다. 트랜스젠더 이슈라면 그동안 떠든 역사가 있으니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고양이 이슈론 흔한 블로깅 뿐이니 내가 책을 쓴다면 뭔가 이상한 일이다. 더군다나 고양이 책을 쓴 많은 저자는 이미 유명 블로거였다. 블로그에 고양이 관련 글을 올렸고 그것이 인기를 끌었고 책을 냈고 더 큰 인기를 끌었다. 나는? 흔히 말하는 흔해 빠진 집사. 그저 흔한 집사. 더군다나 내가 고양이와 관련해서 특별히 무슨 새로운 이야기를 더 할 수 있겠는가. 이미 많은 사람이 하고 있는데.
그러니 고양이 이슈로 글을 쓴다는 것은 트랜스젠더 이슈로 글을 쓰는 것보다 백배는 더 공이 드는 작업이고 어려운 작업이다. 사실 트랜스젠더 이슈로 글을 쓰겠다면 기존의 참고문헌부터 새로운 참고문헌까지 많은 것을 읽어야 하니 상당한 시간이 든다. 그런데 고양이 책을  쓴다면 상상만으로도 막막하다. 아마 더 많은 공이 들겠지. 막연히 이 상상 뿐이다.
근데 생각해보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문장 연습과 글쓰기 훈련이다. …!!! ㅠㅠㅠ
진심으로 하는 얘긴데, ㅎㄱㄹ문화센터 같은 곳에서 열리는 글쓰기 강좌에 수강해서 글쓰기 기초부터 배우고 싶다. 내년 즈음 어차피 날 아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루인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이름으로, 그리하여 다른 자아로 글을 쓰는 법을 배우고 싶고 훈련하고 싶다. 일단 글쓰기 연습이 먼저구나. 으흑… ㅠㅠㅠ
+
이러다가.. 글쓰기 관련 책을 쓰더라고요.. ;;;;;;;;;;;;;;;;;;;
죄송합니다.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아마도.

몸의 변화

월요일 아침엔 정말 많이 아팠다. 허리 통증과 구토와 속이 뒤집히는 느낌이 겹쳐 있었다. 그럼에도 알바는 가야 했다. 이미 목요일에 한 번 쉬었는데 다시 쉰다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택시를 타면 시간이 더 걸린다는 말에 결국 지하철을 탔다. 출근했지만 누구도 내가 아픈지에 관심이 없고(차라리 이런 게 좋다) 그렇게 오전 근무로 끝났다. 마침 오전 근무만 하는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내일 출근할 수 있을까 걱정했다. 아무래도 몸이 무리지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누워서 잤고 E의 도움으로 점심을 먹고 또 쉬었다. 계속 쉬었고 쉬었다. 해야 할 일이 밀리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 더 미루면 안 되는데, 그럼에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어젠 그럭저럭 괜찮았다. 양호하다기보다는 그냥 딱 갈림길이란 느낌이었다. 이 상태에서 관리를 잘하면 그럭저럭 무난하게 괜찮은 상태로 넘어가고 조금만 자만하면 고꾸라지는 갈림길. 월요일엔 화요일이 정말 끔찍할 미래로 예상했다. 일어나지 못 할 거라고, 결국 다시 쉴 거라고 예상했다. 고통으로 예상한 미래인 화요일엔 그럭저럭 무난한 하루였다. 단지 하루를 예상했지만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니다. 내가 감히 무엇이라고 미래를 예상하겠는가. 나는 예언가가 아니며 나는 점쟁이가 아니다. 그러니 현재를 기반으로 한 예측, 예상, 예언은 모두 그저 현재의 내 몸이 어떤 상태인가를 강렬하게 알려 줄 뿐이다. 나의 미래는 나의 현재다. 그리고 미래가 현재가 될 때 그것은 어제 예상한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다.
참, 다행이지. 예상과 다른 미래여서 참 다행이지. 조금씩 차도를 보이는 것 같지만 아직 자만할 단계는 아니다. 근육통은 근육통 대로 여전히 통증이 있고 위염과 구토 증상은 여전히 어떤 여지를 남기고 있다. 그러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