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사치를 할 수 있게 변했다, 그래서 슬프다.

참 기분이 묘하다. 살아가면서 예를 들어 3년 전엔 살 수 없던 물건을 지금은 구매할 수 있다는 게 참 묘한 기분이다. 지금 구매할 수 있다고 해서 갈등없이 부담없이 지를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여전히 몇 달 고민하고, 이번 달 지출은 이것이것이고 그러고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니 이것을 지르면 되겠어,라고 판단한 다음에야 지른다. (모든 계산이 끝난 다음의 지름이 무슨 지름이겠느냐만…;; ) 하지만 3년 전엔 지를 엄두도 못 냈고 내 상상력에 존재하지 않았던 품목을 지금은 지르고 있다. 묘하다. 뭘까? 그 사이에 나는 부자가 된 걸까?
그 사이 월수입이 올랐느냐면 그렇지 않다. 월수입이 오르긴 했는데 월 1만 원 정도 올랐다. 그리고 부가수입이 조금 생기긴 했다. 그것 외에 연봉 개념으로 특별히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나는 간당간당한 통장 잔고로 생활한다. 월말에서 월초엔 통장 잔고 자체가 없을 때도 종종 있다. 그럼에도 달라진 것은 10년 정도 전, 5년 정도 전엔 종종 50원 단위로 생활비를 계산하며 살곤 했는데 지금은 대충 500원 단위로 계산한다는 점이다. 수입이 10배로 늘었느냐면 그렇지는 않다. 수입이 좀 늘긴 했다. 그것도 무려 1년 단위로 다소 안정적 수입이 생기긴 했다. 하지만 10년 전, 5년 전 나의 수입이 상당히 적었던 것이지 지금 수입이 많은 것은 아니다. 연봉 그러니까 연수입 1,000만 원을 넘긴 게 몇 년 안 된다. 아울러 그 사이 물가도 많이 올랐다. 지금은 무얼 구매할 때 50원 단위는 큰 의미가 없다. 심지어 100원도 큰 의미가 없다. 김밥 한 줄도 500원을 단위로 나뉜다. 500원이 기본 단위 같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500원이 기본 단위인 상황에서 이것을 감당할 여건은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금 종종 사치스러운 물품을 구매한다. 이를 테면 내게 큰 사치 중 하나는 아이허브에서 주전부리나 화장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가격을 꼼꼼하게 따지면 국내 물품보다 아이허브 구매가 더 싼 경우도 빈번하다. 과자는 더욱 그러하다. 질소를 샀는데 감자칩이 들어있는 그런 상품은 아니다. 그러니 더 이득이지만 그럼에도 뭔가 묘한 기분이다. 어쩐지 내 수준에 맞지 않는 사치를 부린 느낌이고 그래서 기분이 묘하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것일까? 그럴 돈이 있으면 그냥 아끼는 게 옳은 게 아닐까? 나는 자주 이것이 나의 계급이라고, 내가 몸에 익힌 계급 경험이라고 이해한다. 어떤 집단에선 별것 아닐 뿐만 아니라 정말 자잘한 것도 내겐 과도한 사치로 인식되는 것, 혹은 내게 적합한 구매 수준이 있다고 믿는 것, 이것이 계급이라고 이해한다. 그래서 기묘한 기분은 또한 슬픈 기분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한때 나는 5500원에서 6000원을 넘어가는 음식을 먹으면 매우 사치했다고 느꼈다. 지금은 6000원 정도로 사치했다고 느끼진 않는다. 지금 물가가 밥 한 끼에 6000원은 기본이고 최저임금으로는 무난한 밥 한 끼 해결할 수 없도록 하기 때문이다.
더 슬픈 게 있다. 뭐냐고? 나의 이런 소비는 공부할 시간을 잃고 생계형 알바를 하면서 이룬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소비는 내가 공부에 쏟았다면 더 좋았을 그런 시간을 일하는데 들인 댓가다. 이게 가장 슬프다.

고양이, 소비

바람과 보리가 으르릉 거리면서 놀고 있다. 바람은 발라당 드러눕고 보리는 그 위를 공략하지만 바람이 그렇게 만만한 고양이는 아니지. 열심히 놀고 있는 둘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어떤 집사는 자신의 만족보다 고양이의 즉각적 만족에 더 관심이 많고 이를 경유해서 자신을 만족시키는데 관심이 많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자신의 만족으로 고양이를 즐겁게 한다는 소리다. 즉, 새로운 사료, 새로운 모래, 새로운 장난감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구매하는 찰나는 집사의 만족이자 욕망의 실현이다. 구매 이후는 고양이의 만족과 욕망에 따른다. 고양이가 만족하길 바라는 집사의 욕망이 소비를 야기한다. 그럼 고양이를 만족시키지 않는, 고양이를 애호하는 집사의 만족을 위해 어느 정도 비용을 지출하고 싶어할까? 고양이를 위해서라면 적잖은 비용도 과감하게 지출한다.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고양이 사료와 모래부터 구매하고 남은 돈으로 집사의 생계를 유지한다는 이야기는 유명하고 또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럼 집사의 고양이를 애호하는 마음을 위한 지불은 어느 정도일까. 글쎄, 생각해보면 의외로 낮다는 걸 깨닫는다. 적어도 내가 알아온 주변의 반응이지 보편적인 건 아니라 막연한 판단이지만, 대충은 그런 듯하다. 고양이에게 직접적 이득이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선 소비를 잘 안 하는 편인 것 같기도 한 태도. 그렇다면 어느 지점을 건드려야 할까. 어느 지점을 건드려야 소비를 할까.

이런 이상한 소리를 끄적거리는 건 이유가 있지만(지인의 고민이라거나 나의 출판 계획이라거나) 그냥 문득 궁금하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그리고 이 애정은 왜 이렇게 많은 돈울 요구할까(돈이 들지 않는 애정이 어디에 있겠느냐만)… 그냥 문득 궁금했다.

부산행 + 집에 비글이 있어…

지난 주말, 2박3일로 부산에 갔다 왔다. 방학도 했고 6월에 못 가기도 해서 며칠 다녀왔다.
전에 없이 머리카락이 길었는데, 어머니께서 별 말씀 없으셨다. 왜지? 평소라면 한 마디 할 텐데 어쩐지 그냥 넘어갔다. 오호라.. 다음에도 비슷하게 시도해볼까?
가서 일만하다가 왔다. 원래 그럴 계획이었지만 계획에 없는 일도 잔뜩 했다. 그 중 하나는 실내자전거를 조립하는 일이었는데, 완성하고 나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은근 끌린달까. 하지만 내가 직접 구매하는 일은 없겠지. 내가 무슨 운동이라고. 크크크. 운동은 숨쉬기 운동, 평소 이동할 때 하는 걷기 운동이면 충분합니다. 후후.
뭔가 재밌는 것도 발견했는데.. 시중에 파는 열무김치는 물김치건 빨간김치건 상관없이 젓갈이 들어간다. 그래서 어머니가 가끔 물김치를 주실 때마다 젓갈이 들어갔는지 확인하곤 했다. 그때마다 물김치에 무슨 젓갈이 들어가냐는 반응이었다. 알고 보니 어머니나 어머니 주변 사람들에겐 물김치에 젓갈을 넣는다는 상상력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무척 신기한 일이란 반응을 보였다. 김장김치엔 젓갈을 반드시 넣지만 물김치엔 일절 안 넣는다는 게 나는 신기했다.
암튼 일도 하고 좀 쉬기도 하면서 귀가했는데, 문을 여는 순간 중얼거렸다. 이 집에 비글이 생겼어. -_-;; 바람 혼자 있을 땐 상상도 못 했던 그런 난장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5개월도 안 된 보리에겐 그러니까 비글의 기미가 농후에. 얼른 중성화수술이나 해야겠다. 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