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고양이의 바람 적응기, 혹은 바람 고양이의 보리 적응기

요즘은 바람이 침대에서 자는 일이 늘었다. 오오, 놀라워라.
더 놀라운 건, 어제 보리가 뭔가 헤어볼이라도 토할 것처럼 쿨럭였는데, 바람이 후다닥 달려가선 입으로 보리를 킁킁, 살폈다. 오오, 더 놀라워라. 그렇게 거리를 두는 것 같지만 결국 서로를 살피고 있다.
보리가 들어오면서 달라진 점이라면, 바람의 활동량이 늘었다. -_-;; 크크크 그전까진 집사가 워낙 안 움직이는 종족이다보니 바람도 덩달아 거의 온 종일 잠만 잤다. 혹은 누워 있거나. 그런데 보리가 수시로 찝적거려서 바람도 어쩔 수 없이 달리거나 움직인다. 그래서 전에 없이 운동량이 늘었다. 좋은 현상이라면 좋은 현상이지만, 어차피 1~2년 정도 지나면 둘 다 아주 가끔 꿈틀거리고 나머지 시간엔 잠만 자겠지. 흐흐흐.
바람의 성격도 좀 더 강해졌다. 전엔 바람이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실 때 보리가 주변에 다가가면 바람은 먹다 말고 후다닥 도망갔다. 하지만 지금은 보리에게, 한 마디하곤 그냥 먹는다. 장족의 발전이다. 나는 바람이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실 때면 정말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있었는데 그런 주변의 움직임을 무시하는 수준이라니. 물론 내가 움직이면 도망가겠지? ;ㅅ;
일희일비하지 않고 적당히 분위기만 조성하면서 기다리면, 둘이 알아서 한다는 걸 깨닫고 있다. 그러니까 일희일비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글.. 한없이 평범하고 무난한 글

글을 투고하거나 기고할 때마다 ‘이 글이 출판되면 난 이 바닥에서 매장될 거야’라고 중얼거린다. 워낙 설렁설렁하고 무식한 소리를 지껄여서 나 자신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글을 잘 써서가 아니다. 그럴리가. 글 한 편으로 매장되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선, 글이 매우 논쟁적이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내 글을 많은 사람이 읽어야 한다. 일단 가장 기본적인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 한다. 내가 쓰는 글은 언제나 한없이 평범하고 또 무난하다. 그래서 어디 모난 구석 없이 둥글둥글해서 불편함을 느낄 사람이 별로 없다. 아울러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몇 분이나 계시겠는가. 고맙게도 소수만이 읽어줄 뿐 날 매장시킬 수준의 사람이 읽지 않는다. 그러니 ‘이 글이 출판되면 난 이 바닥에서 매장될 거야’란 말은 엄청난 착각이다. 자의식 과잉이라기엔 그냥 허무맹랑한 착각이다. 일단 논쟁적인 글부터 써야 하고, 많은 사람이 찾아 읽고 싶은 글으 써야 한다. 난 아직 이 두 가지 모두에 부족하니 글 한 편으로 내가 매장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러니 별다른 걱정하지 말고 제멋대로 글을 지껄여도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글 한 편으로 매장될 수 있는 글을 쓰도록 더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잡담 이것저것: 바람, 보리 고양이 / 입이 쓰다

며칠 전엔 우바람, 좌보리로 잠에서 깨어났다. 오오, 이것은 집사의 로망!
이것이 우연일지 지속될지는 좀 더 지켜보기로 하고, 아무려나 때론 폭주하고 때론 잠만 자는 보리 고양이는, 사람의 음식을 엄청 탐하는 보리는 발랄하게 잘 지내고 있다. 너무 발랄해서 때론 당혹스럽고, 때론 엄청 귀엽달까. 으흐흐.
바람과 보리의 관계는 아직 관망 중.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애매하다. 뭐, 어쨌거나 서로의 존재는 (부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니 어떻게 되겠지.
몸 상태가 묘한데. 얼추 한 달 전부터 저녁이면 속이 쓰리다. 위가 약한 편이어서 매실액 희석한 걸 물처럼 마시는데 그래도 저녁이면 속이 좀 쓰리다. 그리고 얼추 보름 혹은 그 전부터 입에서 쓴맛이 난다. 입에서 쓴맛이 나는 경우를 찾아보니 피곤함이 일정 정도를 넘어서거나 역류성 위염이라고 하는데 어느 쪽일진 모르는 것. 나는 일단 피곤함이 일정 정도를 넘어서라고 판단하기로 했다. 요즘 계속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있으니. 그나저나 내가 인지 못 하는 수준에서, 정말 많이 피곤했는가보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시간은 흐른다. 이것이 버틸 수 있는 힘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 요즘은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