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 실패, 다정이

“어쩌면 우리는 가족, 혈통, 전통 따위를 잊고, 옛것이 새것을 만들어내거나 옛것이 새것을 위해 자리를 마련해주는 곳이 아니라 기억, 전통, 활용 가능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을 수도 있다.” (핼버스탬 2024, 148)

강의 준비하다가, 이 문장이 ‘다정이 병인 양하여’를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메모.

책 스캔 관련

오늘 몇 년 만에 대중(?) 강연 같은 것을 했는데 어쩌다보니 책 스캔 하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개인 소장을 위해서야 불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히 혼자 신경이 쓰여서….

요즘 들어 좋은 책들이 유난히 많이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책을 구하기도 어렵고 구해도 다음은 또 불안하다. 그러다보니 절판된 책을 중심으로 스캔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나만의 이상한 습관이 있는데, 나는 좋은 책은 세 권을 구입하는 편이다. 줄 긋고 하면서 아무렇게 읽을 책. 그리고 온전히 보관할 책. 나중에 절판되었을 때 제본하거나 스캔할 책. (전형적인 덕후의 구입 패턴.) 그런데 세 권을 한 번에 구입할 수 있지는 않아서, 나중에 절판된 이후에야 아차할 때가 있다. 거기다 요즘 들어 유난히 절판된 책이 많이 늘어서 좀 안타까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늘도 절판된 책 몇 권을 스캔했는데, 그러다보니 스캔 스캔 스캔 어휴…하면서 머리에 잔상이 강하게 남았나보다.

이북을 추천해주시는 분들도 계신데, 이북은 인용하기 어려워서 조금 꺼리는 편이다. 쪽번호가 플랫폼이나 디바이스마다 다른 경우가 많다보니 인용이 중요한 업종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좀 스트레스이기도 하다(매학기 기말마다 이북 인용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종이책과 편집 스타일이 달라 감각이 다르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종종 절판된 책은 출판사에서 이북 말고 종이책 판형의 PDF를 팔았으면 할 때가 있다. 깔끔하고 속편하기 때문에 종이책의 80% 정도의 가격이라면 기꺼이 구매할텐데. 앱으로 구동해도 괜찮으니(ezPDF는 제외하고) 안 될라나… DRM프리는 아닌데 구글 계정이나 특정 계정과 연동해서 해당 계정으로 로그인되어 있는 디바이스에서는 열람할 수 있고 계정 인증이 안 된 디바이스에서는 열람을 못 하는… 안 되나…

뭔가 있을 거 같은데…

트랜스와 젠더 사이의 계급적, 계층적 간극

[뺨을 맞지 않고…]의 색자 공연에는, 색자가 여러 번 “나는 트랜스젠더예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색자가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한데, 이때 축약어는 “나는 젠더예요.”이다. 이때 젠더는 분석틀로서의 젠더라기보다 트랜스젠더퀴어의 축약어이자 은어로서 젠더다. 그러니 나는 젠더예요,라는 말은 나는 트랜스젠더퀴어다라는 의미를 명확하지만 간단하게 밝히는 행위다.

그리고 연구의 장에서, 혹은 SNS의 장에서 트랜스젠더퀴어의 축약어는 젠더보다는 트랜스다. 트랜스를 축약어로 쓰고, 그리하여 “나는 트랜스입니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연극을 보다가, 불현듯 이 간극을 깨달으며 뭔가 기묘한 감각이 몸을 흘러갔다.

젠더와 트랜스 사이에 많은 정치적 장이 있을 것이다. 계급, 계층, 학력, 직장, 업무, 공동체, 세대 등 많은 논쟁의 장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고 젠더와 트랜스가 완전히 분리된 지형에 위치하느냐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몇 해 전 난리가 났던 “젠퀴벌레”니 하는 표현은 모두 젠더를 축약어로 가정한다. 그럼에도 트랜스와 젠더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둘의 사용례를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지만, 이 사실이 둘 사이에 간극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나중에 이와 관련해서 따로 연구를 해봐도 재밌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