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권리

제가 이해를 못 하는 또 다른 한 가지.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특정 범주를 혐오를 정당한 권리가 있다는 믿음을 이해 못 합니다. 단적인 예로 동성애자 중에서 바이/양성애를 맹비난하는 사람이요. 동성애나 양성애 모두 섹슈얼리티 혹은 성적 지향 이슈고, 성적소수자 범주에 속하니까 잘 안다고 믿는 걸까요? 바이와 관련해서 도대체 무엇을 알기에 그리 당당하게 맹비난하고, 자신에겐 이런 비난을 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일까요? 바이를 비난하는 사람이 바이를 잘 안다면, 한국에서 바이 이슈로 강의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요? 그리고 만약 잘 안다면, 어떻게 비난을 할 수 있는 걸까요? 안다면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안다면 자신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다른 상상력을 발현할 수밖에 없지 결코 비난할 수 없습니다. 비판적 자기 성찰 없는 지식은 그저 편견일 뿐이란 사실을 호모포비아에겐 적용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의 바이혐오적이고 트랜스혐오적인 발화엔 적용하지 않은 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니, 어떤 성찰을 자신의 삶 전체에 적용하지 않을 순 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정말 모르는 타인을 비난할 수 있다는 믿음, 자신에겐 타인을 비난할 권리가 있다는 믿음은 어떻게 가능한지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동성애-비트랜스젠더가 트랜스젠더를 잘 모르거나 전혀 모르듯, 동성애자가 양성애자를 잘 아는 것 아닙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 그토록 많이 얘기하고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성애와 관련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요? 섹슈얼리티 연구에서 가장 얘기가 안 되고 모르는 것은 이성애 아니던가요? 다른 말로 우리는 모르니까 비난하는 거겠지요. 모르니까 비난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거겠지요. 사회적 소수자 간의 혐오가 얼마나 가당찮은 일은지 제발 좀 알면 좋겠어요. 자신을 규범과 동일시하지 말고 자신의 비규범적 위치를 성찰하면서 규범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글을 쓰는 저도 제대로 못 한다는 게 함정. ;ㅅ;

퀴어 연구, 아웃팅, 두려움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제가 이해 못 하는 것 중에, 퀴어 이론을 공부하고 싶고 연구해서 출판하고 싶지만, 글이 나오면 아웃팅 될까봐 못 쓴다는 말을 이해 못하는 편입니다. 왜? 왜? 도대체 왜?
덧붙이면 퀴어 이론으로 글을 발표하면 내게 뭔가 엄청난 일(그것이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이 일어날 것 같지만, 제겐 아무 일도 안 일어났습니다. 적어도 제겐 그랬어요. 물론 저는 트랜스젠더 이론으로 글을 써서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거겠지만요. 트랜스젠더 이론 따위, 트랜스젠더 이슈 따위, 읽는 사람은 극히 제한되어 있으니까요. 선택받은 사람만(www.cpnet.or.kr 😛 ) 트랜스젠더 이슈를 다룬 글을 읽으니까요. 😛
암튼 퀴어 이론으로 연구하고 글을 쓰고 싶은데 아웃팅이나 어떤 불이익이 두려워 못 쓰겠다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더 정확하게는 무슨 불이익이 생긴다는 건지 잘 모르겠거든요. 불이익이 생길 지점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기도 합니다. 부당한 대우엔 분명 투쟁하고 문제제기해야 하지만, 지금까지 누리던 이득을 누릴 수 없게 될까봐 두렵다는 반응은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투쟁할 지점이 발생하니 더 좋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물론 소심한 저는 투쟁하지 않습니다만.. ;ㅅ; 늘 얘기하지만 단팥죽을 주문했는데 소금죽이 나와도 그냥 먹는 얌전한 인간인 걸요. 그리고 이 일화를 비유로 받아들이는 분이 계시는데 실화입니다.)

혐오 폭력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 메모

혐오 폭력에서 물리적 피해는 트랜스젠더가 주로 겪고 운동의 상징성은 게이 남성이 가진다. 이것은 추론이지만 백인 게이 남성이 혐오 폭력 피해를 겪었을 때와 비백인 트랜스젠더가 혐오 폭력 피해를 겪었을 때 소위 LGBT 단체로 불리는 곳의 반응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물론 아직은 추론이다. 그리고 레즈비언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덜 논의되고, 바이의 혐오 폭력 피해는 아예 언급도 안 되는 듯하다. 나는 바로 이런 식의 위계가 혐오 폭력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작동하는 지점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