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살림의원, 용어, 면티

살림의원이 트랜스젠더를 살리는 걸까? 트랜스젠더에게 우호적이라고 알려진 병원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ㅇㅎ병원은 트랜스젠더에게 괜찮다고 알려졌지만 진료비만 10,000원을 받는다고 한다. 살림은 2,800원. 사람들은 끊임없이 괜찮은 병원을 찾고, 내가 간 병원의 의사가 해준 말이 어떤 의미인지 묻고 비용이 적절한지 묻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결론은 살림의원이다. 가격 적정하고 상담 잘 해준다는 반응. 좋은 병원 하나 있음이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어떤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잘해줬다고 해서 다 좋은 게 아니다. 다른 누군가는 의사의 혐오발화를 듣기도 한다. 100개 병원 중 한두 개 괜찮은 병원 있는 세상이 아니라 100개 병원 중 한두 개 이상한 병원이 있는 세상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쉽진 않겠지만.
구글에서 ‘트랜스젠더’를 입력하면 ‘트랜스젠더’ 관련 검색 결과가 나온다. 구글에서 ‘트렌스젠더’를 입력하면 검색어 수정 제안 없이 ‘트렌스젠더’와 ‘트랜스젠더’ 검색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트랜스젠더 성전환수술’을 입력하면 검색어 수정 제안으로 ‘트렌스젠더 성전환수술’이 나온다. … 뭐라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트’렌’스젠더라고 사용하면 구글에서 트’렌’스젠더를 제안할까? 이렇게 언어와 용어는 묘하게 흘러간다.
This Is AAA. Not Battery.
It’s Transgender Politics.
라는 구절을 가슴 부근에 새긴 티를 만들어서 입고 다니면 재밌을 텐데. 후후후.
물론 더 정확하게는 의료적 조치를 선택하지 않은 mtf/트랜스여성의 몸 정치학이지만.
하얀 면티에 검은 글자거나 검은 면티에 노란색 글자 등 간결하게 글자만 사용한 티면 좋겠는데.. 디자인해줄 분 없겠지..

병원 복도 화장실, 장애와 비장애

병원엔 병실마다 화장실이 있지만 복도에도 화장실이 있다. 그리고 복도에 있는 화장실 입구는 미닫이 문이 아니라 천으로 살짝 가린 모습이다. 천으로 가볍게 가린 모습. 복도를 오고갈 때마다 화장실 문이 천이라니, 그것도 제대로 닫히는 기능이 없는 천이라니 사용하는 사람은 얼마나 불편할까라고 고민했다. 화장실인데, 문을 닫을 수 없다니. 하지만 병원을 몇 번 오가면서 반성했다. 난 얼마나 안이하게 고민했던가. 병원 복도에 있는 화장실이라고 해서 병문안을 온 사람만 사용하는 게 아니다. 환자로 입원한 사람도 사용한다. 그리고 간병인이나 곁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태로 화장실을 혼자 사용한다면 적어도 출입구만은 쉽게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 화장실 입구를 천으로 가린 건 환자가 수월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모든 사람이 같은 힘을 가진 게 아니라면, 어떤 사람은 적은 힘을 사용하는데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면 결국 적은 힘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문을 만들어야 한다. 그 화장실이 장애인용 화장실이란 표시가 없어도 그렇다는 뜻이다. 하지만 병문안을 이유로 몇 번 드나든 병원의 복도 화장실엔 장애인용이란 표시가 없었다. 모든 화장실을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입구만 봤을 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폭이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은 병문안을 오는 사람이 아니란 뜻일까? 장애인은 병실을 이용하는 사람이지 병문안을 오는 사람은 아니란 의미일까? 하지만 병실에 있는 화장실도 좁았다. 링겔을 거는 지지대는 들일 수 있어도 상당히 좁았다. 장애인은 장애인 전용 병실에 따로 있어야 한다는 뜻일까? 병원의 젠더 분리와 장애 분리란 뜻일까? 병원 복도에 있는 화장실을 보며 환자인, 장애인은 아닌, 체력에 있어 상당한 약자인 어떤 존재/범주를 떠올렸다.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 경계는 정말 불분명하다.

한국에서 퀴어 이론 하기

늘 하는 얘기고 자주 하는 얘기지만 내가 처음으로 글을 출판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던 그때 내가 뭐라고 글을 쓰고 또 출판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내게 글을 쓸 기회가 생긴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내게 글을 쓸 기회가 생긴 건 우연이었지만 트랜스젠더 이슈로 혹은 퀴어젠더 이슈로 글을 쓸 기회 자체는 우연이 아니었다. 트랜스젠더 이슈로 글을 출판하는 일은 이전의 활동이 만든 성과였다. 199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LGBT 인권 운동이 진행되면서 많은 연구활동가가 자신의 목소리를 출판하기 시작했다. 때론 소식지를 통해, 때론 등록된 출판물로, 때론 기존 출판물에 투고하며 LGBT 이슈를 말했다. 그 당시 적잖은 활동가가 LGBT 이슈 혹은 퀴어 이슈로 글을 출판하며 한국에서의 LGBT 담론, 퀴어 이론을 구성하려고 애썼다.
예를 들어 지혜 선생님은 1990년대에 레즈비언 이론과 퀴어 이론을 번역 소개하거나 자신의 논의를 구성하며 한국에서의 퀴어 이론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 정말 끝내주는 퀴어 연구를 출판하고 있다. 이를 테면 가장 최근 출판된 논문 “역사와 기억의 아카이브로서 퀴어 생애  :  『나는 나의 아내다』(I Am My Own Wife) 희곡과 공연 분석”(http://goo.gl/ZrLiA2)은 퀴어 연구에서 자주 사용하는 개념어인 재현과 비동일시를 큐레이팅이란 새로운 개념어로 대체할 뿐만 아니라 큐레이팅이란 매우 흥미로운 개념을 만들어낸다. 아울러 퀴어 연구자의 감정이 매력적인 논문을 쓰는데 얼마나 중요한 동력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비교가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영어권 퀴어 이론에 ‘비동일시’란 개념어를 이론화한 호세 뮤노즈가 있었다면(작년에 고인이 되었다는 ㅠㅠㅠ) 한국엔 김지혜가 있다.
한채윤 님의 경우,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엔 <버디>란 잡지를 통해 그리고 또 다양한 출판물을 통해 활동가가 어떻게 탁월한 이론적 지형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론이란 학제에서 배우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직접 활동하고 살면서 고민한 내용을 풀어나가는 작업에서 이론이 생산된다. 물론 한채윤 님의 경우, 대학원 정규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학제에서 요구하는 방식(!)의 이론적 세련됨은 부족할 수 있다(이것은 한채윤 님 자신의 평가인데 나는 이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채윤 님의 글을 읽으면 한국의 맥락에서 어떻게 퀴어 이론을 만들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 단적인 예가 <성의 정치, 성의 권리>에 실린 “엮어서 다시 생각하기: 동성애, 성매매, 에이즈” 아니던가.
이 두 분은 단지 예를 든 것 뿐이다. 1990년대부터 여러 연구활동가가 LGBT 이슈로 글을 출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2000년대 들어선 김순남 님, 우주현 님, 타리 님, 권김현영 님 등 한국이란 지역에서 퀴어 이론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고 여러 글을 출판하고 있다. 이런 이들의 노력이 내가 글을 출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2006년에 내가 글을 쓴 건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트랜스젠더 이슈로 글을 출판할 수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엔 한국어로 쓴 퀴어 이론이 없다는 말을 누군가가 한다면,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명백하게 한국에서 생산되고 있는 연구를 전면 부정하면서 한국어로 쓴 퀴어 이론이 없고 한국 맥락에서의 퀴어 이론을 생산하기 어렵다는 토로를 한다면 이건 어떤 의미일까? 선배 연구자 혹은 시기적으로 앞서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를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를 무시하면서 어떻게 탈식민주의적 지식을 생산할 수 있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맥락에서 이론을 생산할 수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