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기록물을 추적하거나, 역사를 기록한 글을 읽노라면 두 가지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하나는 혐오의 역사. 혐오는 지금도 존재하지만 그 시절 어쩌면 저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싶은 혐오 발화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발화는 결코 과거의 것이 아니다. 그 심한 발화는 지금도 재생산되고 있는 현재의 것이기도 하다. 혐오는 역사적 사건이고 재생산되는 담론이다.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 발화, 바이를 향한 혐오 발화 모두 역사적 사건이다. 과거의 적나라한 혐오 발화는 지금 이 시기에도 유통되는 내용이다. 또 하나, 역사적 기록물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은 많은 경우 특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다. 자신의 의견을 출판할 수 있는 사람, 자신의 의견을 글로 표현하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았거나 상당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그리고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인종적, 계급적 토대가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지금 시점에서 접할 수 있는 과거의 많은 기록은 이런 정치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과거의 많은 혐오 발화는 출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발화다. 이 발화가 특정 집단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1970대부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트랜스젠더 혐오 발화는 지금까지 물리적 형태로 흔적이 남아 있는 기록물을 쓴 사람의 발화다. 기록물을 남기지 못 한 사람의 의견은 지금 전해지지 않거나 간접적으로 전해질 뿐이다. 그러니 역사를 마주한다는 건 혐오의 역사성과 출판물의 특권/권력을 살피는 것이기도 하다. 어려운 일이고 재밌는 일이다.
채식의 의도하지 않은 효과
인간, 개념
‘우리도 인간입니다’라는 말의 급진성을 고민한다. 일견 기존 인간 개념에 순응하는 듯, 동화주의적 발언인 듯한 이 말은 결코 그렇게만 사유할 수 없도록 한다. 우리도 인간이란 말은 인간이란 개념에 배제된 존재의 발화다. 이 발언은 인간으로 취급되지 않은 존재의 저항적 발화이자 삶의 경험을 응축한 발화다. 나도 인간이라는 발언, 그리하여 네가 나를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그 태도를 나의 인식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발언이다. 그래서 ‘우리도 인간입니다’라는 발언은 이 발언을 할 수밖에 없는 맥락을 되새기도록 한다. 지금 2014년에 ‘우리도 인간입니다’라는 발언을 한다는 건 이 사회의 분위기가 어떤지를 가늠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우리도 인간입니다’는 인간 개념 자체를 재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나도 인간이라면 인간의 개념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가장 보수적이고 순응주의적, 동화주의적 발언이 사실은 기존 인간 개념을 뒤흔드는 발언이기도 하다. ‘그럼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범주의 존재인가?’그래서 ‘우리도 인간입니다’란 발언은 좀 무서운 발언이자 근본적으로 사유할 것을 요구한다. … 당신은 지금까지 ‘인간’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누구를 떠올렸나요? 당신이 떠올리는 사람은 장애인인가요 비장애인인가요? 트랜스젠더인가요 비트랜스젠더인가요? 비이성애자인가요 이성애자인가요? 비이성애자라면 동성애자인가요 다른 성적지향의 사람인가요? 그리고 인터섹스인가요 비인터섹스인가요? 당신이 떠올리는 인간의 모습에 누가 자리하고 있나요? … 뭐, 이런 질문을 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