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혹은 좀 쉬는 방향으로

어머니 수술 결과가 나오고 몇몇과 연락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한 선생님이 내게 당분간 글쓰는 일은 중단하거나 미루라는 조언을 줬다. 단지 그 조언 때문은 아니다. 어머니 수술 때문도 아니다. 작년 말부터 계속해서 해왔던 고민이다. 2014년 한 해는 출판원고를 줄여야겠다고.

올 한 해는 쓰는 즐거움보다 읽는 즐거움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 그저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음미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 글을 쓰기 위해서 논문이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냥 읽는 일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싶다. 글을 쓰는 게 힘들다는 뜻이 아니라 읽는 일에 더 집중하고 싶다는 뜻이다.
그래서 올 한 해는, 작년에 이야기를 해서 올 해로 이어지는 원고를 제외하면 추가로 더 출판원고를 가급적 쓰지 않기로 했다. ‘가급적’이란 예외 조건을 둔 건 속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몇 가지 가능성엔 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원고료가 적절해서 생계에 보탬이 되는 원고는 쓸 가능성이 높겠지. 후후. 그렇지 않으면 올 한 해는 쓰지 않으려고. 물론 내가 출판원고를 쓰고 싶으면 쓸 수 있는 깜냥은 아니다. 누구라도 청탁만 해주신다면 냉큼 받을 준비는 되어 있다. 그저 올 한 해는 글을 줄이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고 글 자체를 쓰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다. 글은 계속 쓸 것이고 늘 쓸 것이다. 출판원고를 줄이겠다는 것 뿐. 그리고 작년에 얘기한 원고도 이미 가득이라.. ㅠㅠㅠ
덧붙이자면 설연휴 동안 어머니가 입원하고 수술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저 좀 쉬고 싶기도 했다. 부담을 좀 덜어놓고 싶기도 하다. 글쓰기가 부담이란 뜻이 아니라, 그저 어떤 일정의 부담을 덜고 싶다. 한 숨 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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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차이기 전에 내가 찬다’는 태도입니다. 원고 청탁하는 사람도 없는데 청탁 받지 않겠다고 미리 떠드는 웃긴 상황. 우후후. ㅠㅠㅠ 크크크 ㅠㅠㅠ

후기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많이 피곤하지만 다시 제 일상을 유지해야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어머니의 수술은 끝났습니다. 잘 끝난 것일지는 회복 과정을 지켜봐야죠. 수술이 목표로 한 부분은 잘 끝났습니다.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는데 잘 끝났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회복 과정을 거쳐야 수술의 효과를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죠. 그러니 좀 더 기다려봐야죠.
뇌 수술을 하고 나면 성격이 변한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뇌와 성격의 관계가 매우 밀접하다는 얘기죠. 뇌가 성격을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뇌와 성격 사이엔 강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성격은 뇌가 결정하니 어쩔 수 없다는 얘기를 해선 안 된다는 뜻이지만, 뇌가 성격에 영향을 끼치면서 때론 어쩔 수 없는 일도 생긴다는 뜻. 모순 같지만 모순은 아닙니다.
댓글로, 개별 연락으로 안부를 물어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태블릿으로 블로깅을 하다보니 댓글에 답글을 못 달았네요. 좀 정신차리고 답글 달게요.

이런저런 잡담

어머니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저를 처음 보고는 잠시 당황하다가 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여자인 줄 알았다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마냥 좋아할 순 없었지만 속으론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선생님, 눈썰미 짱이에요! 그나저나 머리카락 길이는 정말 짧았는데 어떤 점을 포착한 걸까요.
형제자매도 좋고 자식도 좋고 친척도 좋지만 친구란 관계는 다른 어떤 관계보다 각별하다는 느낌입니다. 친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요. 가족이 울 수 없는 상황에서 울 수 있고, 다른 누가 타박하고 구박할 수 없는 상황일 때 친구는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요. 네, 친구란 정말 소중해요. 그리고 이런 친구를 갖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이런 친구가 있다는 점에서 어머니의 삶은 성공적인지도 몰라요. 훌륭한 삶을 살아오셨고요.
병실에서 하루를 지내며 일일 드라마를 몇 편 봤습니다. 저녁 8시부터 여러 편을 본 것 같은데.. 뭔가 비슷비슷한 느낌이라 몇 편을 봤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암튼 일일 드라마를 보며 깨닫기를 정말 다들 연애를 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제가 본 드라마의 모든 인물이 연애를 하고 있거나 작업 중이더라고요. 연애가 아니면 이야기를 못 끌어가는 걸까요? 이성연애가 아니면 할 얘기, 공중파의 얘기가 없는 걸까요? 정말 궁금했어요. 뻔한 연애 얘기를 왜 그렇게 반복해서 보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