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부터 활동하실 퀴어락 운영위원을 찾고 있습니다.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에서 새로운 운영위원을 모십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한국 퀴어아카이브 퀴어락의 새로운 운영위원을 찾습니다.
퀴어락의 운영위원은 따로 특별한 특별한 경제적 보상도 없습니다.
자료가 쌓이고 잘 정리되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오! 이런 자료가 있었군이라며  기록관리자로서의 희열을 느끼는 것이
전부이긴 합니다만..
너무 감사하게도 매우 부지런히 그리고 헌신적으로 활동해주시는 운영위원들이 계셔서
지금까지 잘 꾸려져오고 있습니다.
 
2013년에 4년만에 처음 운영위원을 공개모집하였고 6분의 새로운 운영위원들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3분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였는데
그 사이 몇 분이 해외 유학을 가시고 또 개인적인 직장 사정으로 인해 활동이 더 이상 어려우시게 된 분들이 계셔서 2014년을 맞아 새로운 운영위원들을 더 모시고자 합니다.
 
퀴어락은
각 운영위원들이 논문단행본/ 문서a / 문서b/ 사진류/ 박물류/ 영상류 등으로 나누어
기록물의 등록과 관리를 맡고  퀴어락 전반적인 운영을 책임지는 형태입니다.
 
운영위원에 지원하시는데 별다른 다른 조건은 없지만
온갖 옛거들과 기록물들을 사랑하시고
최소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3시간 정도의 시간을 내셔서
자료 등록을 하실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으시면 됩니다.
전체 운영위원회 회의는 두 달에 1회 정도 열리며
상시적 의논은 게시판과 메일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외에 다른 질문이 있으시면 메일로 문의해주시면 됩니다.
운영위원 신청은 간단한 자기소개와 운영위원에 지원하는 이유 등을 적으셔서
kscrcqueer@naver.com 으로
1월 15일까지 보내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인연으로 퀴어락과 닿길 기원합니다.
– 퀴어락

글쓰기 책에서 읽은 저자의 비문

몇 년 전 글쓰기 관련 책을 읽고 그 저자의 블로그에 들락거리곤 했다. 블로그에도 글쓰기 관련 내용을 주로 올렸기에 꽤나 도움을 받았는데… 그 와중에 글쓰기와 문법 관련 글을 쓰지만 정작 자신의 글에 있는 문제는 놓칠 때가 많다는 포스팅을 읽었다. 초벌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며 그대로 출판되리라 예상했지만 교정쇄엔 상당한 비문과 오탈자 등을 지적한 빨간펜 흔적이 상당하더라고 했다. 문법을 잘 알고, 문법을 가르치는 글을 쓰지만 그 글에서 문법을 틀릴 수 있다는 뜻이다. 글쓰기 관련 글을 쓴다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란 뜻이다.
어제 도서관에서 글쓰기 관련 책을 몇 권 빌렸다. 그 중엔 기본 맞춤법, 퇴고 요령 등을 기술한 글도 있다. 제목과 목차만 훑고 빌리려다가, 각 저자의 문장은 어떤가 궁금해서 서문을 조금 읽었다. 당황했다. 글을 고치는 요령을 다룬 책에선 “심지어 대학 교수님들”이란 표현이 나왔다. 교수와 같은 직업엔 님을 붙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청소부님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경비원님이라고 하지 않는다. 특정 직업에만 님을 남발할 뿐이다. 아울러 문맥을 통해 충분히 복수의 교수란 점을 알 수 있음에도 불필요한 ‘들’을 붙였다. 책 서론에 나온 구절이라 당황했다. 또 다른 책에선 첫 문장이 피동형이다. 능동형으로 써도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능동형이 맞는 듯한데 피동형으로 썼다. 끄응…
이런 당혹스러움에도 각 책의 내용을 불신하지 않는다. 내용은 충분히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일 테니까. 그럼에도 뭔가 묘한 기분이다. 글쓰기 관련 책에서 교정해야 할 것만 같은 문장이 나오다니… 물론 이렇게 궁시렁거려도 각각의 저자는 나보다 100배는 더 잘 쓰는 사람이다. 그러니 글쓰기 관련 단행본을 쓸 뿐만 아니라 관련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내지. 암튼 글쓰기 공부를 해야 하는데 게으르니 어떡한담.

장애-퀴어, 교차점 모색

더 퀴어한 삶을 지향하는 경우는 많다. 비록 퀴어포비아가 만연한 사회에서 퀴어로 혹은 퀴어하게 산다는 것은 어떤 위험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위험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뜻은 아니다). 그럼에도 퀴어한 삶, 지금보다 더 퀴어한 삶은 많은 경우 좋은 의미로 통용된다. 지향해야 할 삶의 방향 중 하나로 독해된다.
지금보다 장애가 더 심각해지길 바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장애인 역시 장애를 세상을 인식하는 주요 토대로 사유한다고 해도, 지금보다 장애가 더 심각하길 바란다고 쉽게 말하진 않는다. 장애와 퀴어 모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긍정적 가치, 지향할 삶의 방향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더 퀴어하게’와 ‘더 장애가 심하게’는 그 의미가 같지 않다.
나는 장애 이슈와 퀴어 이슈를 분리해서 사유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리고 장애-퀴어 이슈를 동시에 사유하기 위한 출발점은 앞서 쓴 지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더 퀴어하게’와 ‘더 장애가 심하게’가 동일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 지점에서 장애-퀴어의 상호교차성을 모색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럼 어떻게? 물론 이건 앞으로 더 고민할 부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