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병원

며칠 전부터 바람의 눈 상태가 이상했다. 어느 날 아침 바람의 눈에 눈꼽이 많이 끼어 있어서 이상하다고 여기면서 외출했는데, 그날 저녁 바람이 왼쪽 눈을 제대로 못 뜨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마찬가지였고 눈 주위에 눈물이 말라 털이 엉겨있는 모습이었다. 어랏.. 무슨 일 있나? 걱정이 되어서 신경을 곤두세웠다. 바로 병원에 갈지 며칠 두고볼지… 그러며 다시 하루 지났을 때 여전히 왼쪽 눈을 60% 수준으로만 뜨고 있었고 활력도 좀 떨어진 듯했다. 끄응.. 그래도 저녁이 되면서 눈을 좀 더 잘 뜨는 모습이라 괜찮겠지, 했는데 아니었다. 그날 저녁 바람의 왼쪽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울고 있는 게 아니라 눈에 무슨 일이 있어서 눈물이 나는 듯했다. 그리고 바람은 그루밍으로 눈물을 닦았다. 다음날 바로 병원에 가려 했는데 또 눈이 멀쩡한 듯했다. 그리고 다시 저녁, 눈이 괜찮은 듯한데 눈에 약간의 물기가 고여 있어서 결국 다음날(즉, 어제) 병원에 가겠다고 결정했다. 물론 어제 아침에 다시 그 결정을 번복했고 병원 가는 것과 가지 않는 것 사이에서 계속 갈등했다. 날이 추워서 밖에 나가는 게 오히려 안 좋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오래 망설이다 병원에 갔다. 좀 많이 기다렸고 눈과 관련한 몇 가지 진단을 받았다. 결과는? 눈에 별 문제가 없단다. 끄응.. 일단 당장 진료하기엔 눈에 별 문제가 없고 어쩌면 허피스(헤르페스)일 수도 있는데, 이 경우도 약하게 앓다가 그냥 나은 경우라고 했다. 사람이 감기를 앓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낫는 것과 같은 원리랄까. 암튼 눈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외상이 있는 것도 아니란 진단을 받고 나니 어쩐지 괜한 비용을 사용한 것만 같았다. 물론 이것은 안심하기 위한 비용이다. 만약 확진을 받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불안했을 것이고 오랜 시간이 지나 바람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때 병원에 갈걸…’이라고 나를 탓할 것이다. 그러니 이번 진료는 안심하기 위한 비용이자 만약을 대비한 비용이니 비싸다고 할 순 없다. 그럼에도 어쩐지 아깝다. 그 돈이면…!!! 암튼 다시 오랜 만에 병원 가느라 외출한 바람은 길에서 계속해서 우앙우앙 울었지만 집에 왔을 땐 좀 의연했다. 예전엔 한참을 이불 속에 숨었다. 하지만 어젠 이불 속에 잠깐 들어가더니 곧 나와선 내 주위를 돌며 그냥 차분하게 지냈다. 오호라..! 바람아, 이제 외출에 약간의 내성이 생긴 것이니?
+
병원에 같이 가준 E는 의사를 대하는 바람의 태도에 억울함을 표했다. 집에서 바람은 E에게 종종 하악질을 시전했는데, 병원에서 바람은 꽤나 조용하게 있었다. E는 구시렁구시렁. 흐흐흐.
늘 제가 주장하지만 바람은 얌전하답니다. 😛

2013년 마지막 블로깅, 이것저것

올 한 해도 이곳에 오시는 분들 덕분에 무사히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들 고맙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올 해 블로깅의 가장 큰 특징은 음식블로깅! 제 생전에 음식 사진을 블로깅하는 날이 올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것저것 먹은 음식을 올리다니.. 놀라운 변화! E느님께 고마움을 표해요. 🙂
이런 저런 글을 쓰느라 2013년이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니키 설리반Nikki Sullivan과 같이 발표도 하고 밥도 먹는 시간을 가졌지요. 꿈만 같은 일이 생기다니.. 아아.. 내년엔 수잔 스트라이커Susan Stryker를 만나겠어요. 만나고 말겠어요!
글과 관련해서, 정말 정신 없이 글만 쓴 것 같습니다. 한 편의 글이 끝나면 다음 편이 아니라 두세 편의 원고를 동시에 기획하고 마감 일정 맞춰서 미친 듯이 글을 썼달까요. 이런 기세로 단행본 작업을 했다면 단행본이 한 권 나왔겠지만… 다행이라면 제가 게으르고 또 역량이 부족하여 아직 단독 단행본은 없습니다. 후유… 2014년에도 주어진 일정에 따라 움직이겠지요. 자잘한 바람은 기획하고 있는 글에만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잘 되려나..
올 한 해도 바람은 저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빈혈 판정을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잘 지내고 있어요. 아.. 오늘 오후에 병원에 가야 할 수도 있지만요.. 아무려나 바람과 저는 여전히 애정애정하며 잘 지내고 있어요.
올 해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면, 그래도 역시나 E느님!
그리고 올해도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준 많은 분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정말 고마워요.

김비, 그녀의 이야기

수업 때 쓴 쪽글입니다. 나이든 여성과 관련한 글을 써오라고 했는데, 트랜스젠더 중 나이든 여성이 누가 있을까 하니 김비 님이 가장 먼저 떠오르더군요. 김비 님의 실제 나이는 많지 않지만 트랜스젠더 공동체에선 대선배랄까요. 그래서 관련 글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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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11.15. 화. 15:00- 여성, 나이듦, 노동.
김비, 그녀의 이야기
-루인
1971년생, 이제 사십 초반의 그녀를 ‘나이 들었다’고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계시간의 세계에서 나이 마흔인 사람에게 나이들었다는 말은 실례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우리’-트랜스젠더에게 혹은 나에게 대선배로, 매우 오랜 시간을 산 존재로 인식된다. 거리와 시간 개념이 맥락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리 구성되듯(필립스, 73) 트랜스젠더의 삶에서 나이 든 존재는 시계시간의 개념으로 얘기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존재의 역사성과 시간성이 나이 개념을 구성한다. 어떤 집단의 사람에겐 일흔 혹은 여든은 되어야 나이 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이 예순인 사람에게 나이 들었다고 얘기하면 역정을 들을 수도 있다. 나이듦이란 그런 거다. 많은 이론가가 지적하듯, 나이듦의 의미와 시계시간의 표지는 일치하지 않는다. 범주에 따라, 집단에 따라 나이의 의미는 달리 구성된다. 그리하여 김비, 그녀는 시계시간으론 여전히 매우 젋지만 mtf/트랜스여성에겐 혹은 트랜스젠더에겐 ‘나이 든’ 존재다.
1990년대부터 그녀는 다양한 글을 쓰며 트랜스젠더를 가시화했다.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잡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트랜스젠더의 삶과 기본 지식을 알렸다. 때론 미디어에 출연해서 트랜스젠더의 삶을 이야기하며 어떤 인식을 만들고자 했다. 그녀의 삶과 실천은 하리수 씨처럼 이 사회의 광범위한 대중에게 인식론적 전환을 야기하는 충격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적잖은 이들에게, 특히 mtf/트랜스여성에게 그녀는 신화다. 지금 시간에 김비를 만난다는 건 신화적 존재를 만난다는 것과 같다.
1990년대부터 LGBT 인권운동이 본격 전개되고 그 유산이자 흐름에서 지금의 LGBT의 삶이 구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LGBT가 기억하는 역사는 1990년대에서 시작한다. 1980년대 혹은 그 이전은 역사 이전의 시대처럼 여전히 막연하고 정확한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대다. 그래서 1990년대부터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지금도 그 존재감을 유지하고 있다면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다. 이것은 트랜스젠더의 집단이 형성된 시기가 짧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집단의 형성 시기와 무관하다. 집단의 형성 시기가 길어도 나이가 들면 사라져서 특정 나이부터는 만나기 힘든 경우가 있다. 그렇기에 사라지지 않고 어떤 집단/범주의 선배로 남아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이 선배가 후배들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한다면 이것은 더 좋은 일이다. 그녀는 신화지만 추상적 존재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함께 하는 존재다.
나이 든 mtf/트랜스여성이 할 수 있는 일엔 무엇이 있을까? 업소에서 일하는 트랜스여성은 업소 마담이나 작은 가게 운영, 혹은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가사노동만 하는 ‘평범한’ 삶을 얘기한다.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트랜스젠더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디어에서 유통하는 트랜스젠더의 이미지와 미래 역시 연예인이거나 성판매 업소의 노동자 정도다.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찾기가 힘들다. 나이 들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 어떤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지에 있어 모델이 없는 상황(스쿠차 & 버나드, 53-55)일 때 삶은 언제나 막막하다. 지금 내가 사는 삶이 언제나 최초거나 1세대에 해당한다면 이것 자체로 자유로운 만큼이나 불안하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김비, 그녀의 현존은 어떤 안도감을 준다. 그냥 살면 되는구나… 일단 살면 되는구나…
한때 영어학원의 강사로, 지금은 소설가이자 작가로 살아가는 김비의 삶은 내게 어떤 희망이다. 그녀는 자신이 살고자 하는 곳으로 이주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나는 미디어 혹은 소위 말하는 대중이 요구하거나 이해하는 식으로 살지 않아도 괜찮고 나의 미래는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걸 확인한다. 그녀는 내게 그런 안도감을 주고 그런 자신감을 준다. 그녀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삶을 떠올리며, 나는 트랜스젠더에게 그리고 내게 나이듦의 의미, 나이 들어 할 수 있는 일의 의미가 기존의 관념에 따를 필요가 없음을 확인한다. 우리-트랜스젠더는 나이 마흔에 조로한다는 뜻이 아니다. 역할 모델을 새롭게 만들고 있는 시점에서 기존의 나이 개념, 일 개념은 전혀 다르게 구성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왜 ‘우리’에겐 나이 여든의 모델이 없을까, 의료적 조치를 하지 않고 쉰, 예순의 나이를 먹는다는 건 트랜스젠더에게 어떤 의미일까를 질문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이나 굳이 기존의 나이 개념에 따른 모델 관념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겐 나이 마흔의 그녀가, 나이 여든의 누군가처럼 든든하고 또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밑절미다.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