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모욕감: 메모

지난 화요일 수업에서, 수업 당시엔 그냥 불쾌한 느낌과 함께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은 말을 들었다. 정확하게 나만 지칭하진 않았지만 그 말엔 내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파악했다. 그 말을 들을 당시엔 꽤나 불쾌한 기분이자 정확하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 되었다. 그래서 아무 말 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리고 그냥 넘어가는가 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 청소를 하다가 갑자기 그 말이 떠올랐고, 그 찰나 나는 상당한 모욕감을 느꼈다. 그랬다. 그 말은 적어도 내겐 매우 모욕적인 발언이었다. 그것이 단지 내게 모욕적이지 않다고 해도 그 말은 매우 불쾌하고 문제적 발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당시엔 그냥 넘어갔다. 그 당시 바로 문제제기를 해야 했음에도 그냥 넘어가는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그러니까 나 자신에게 화가 났고, 그 발언에 화가났다.
그 발언이 정확하게 어떤 내용인지, 어떤 상황에서 나왔는지는 지금 밝히지 않는다. 이 모욕감을 정확하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직 충분히 정리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이 찰나를 기록해야겠다 싶어 적을 뿐이다.
아울러, 나는 늘, 모욕감과 분노를 느껴야 하는 바로 그 찰나가 아니라 뒤늦게 분노와 모욕감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그 상황에서 분노하며 그냥 넘어가면 안 되었다는 걸 늘 뒤늦게 깨닫는다. 뒤늦게 발을 동동 굴리며, 정작 어떤 감정을 표출해야 할 어떤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게 화를 낸다.
나는 나중에 이 일을 소재로 글을 쓸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 뿐이지 않은가. 글을 쓴다는 건 뒤늦게 깨닫는 감정을 철지나지 않은 것으로, 때를 놓치지 않은 것으로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지 않은가. 그래서 글을 쓴다는 건, 내 삶의 시간을 깨닫고 또 그 의미를 달리 만드는 작업이다.

전화번호 강제 변경 예정이라서…

010이 아니라 01X로 3G나 4G를 사용하는 이들의 핸드폰 번호가 12월에 010으로 자동 변경될 예정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01X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통신사에서 인식하는 번호는 다르겠지만 표식 번호는 01X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번호를 국가가 혹은 통신사가 강제로 바꿀 수 있느냐로 소송도 있었지만 결국 강제 통합된다.

이 말은 내 핸드폰 번호가 이번 달을 끝으로 바뀐다는 뜻인데… 오호라… 이 기회에 전화번호 연락처 정리를 해버릴까? 번호 변경을 알리는 문자에 따르면 010으로 자동 연결하는 서비스가 무료라고, 꼭 신청하라고 한다. 이 말은, 이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고 연결을 거부한다면 연결이 안 된다는 뜻이다. 전화번호를 알려줬지만 연락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 굳이 전화로 연락하지 않는 사람, 전화로 연락하고 싶지 않은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을 이번 기회에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전화번호로 연결된 곳을 정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다른 한편, 전화로 연락을 주고 받는 게 편하지는 않은 나로선 이번 기회에 기본 연락 수단을 이메일로 바꿀 기회기도 하다. 이메일로 연락 주고 받는 걸 상당히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난 장문의 내용이건, 짧은 문자 수준의 내용이건 이메일로 연락하는 게 가장 편하다. 전화는 원래 불편했고, 문자도 그리 편하지는 않다. 그냥 이메일로 충분하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은 어쩌면 내게 기회다. 우후후. 11월 말 즈음 번호를 바꾸면서 전화 및 문자로 필히 연락해야 하는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전화나 문자로 필히 연락해야 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 많은 경우 이메일로 연락해도 충분하다. 그저 적잖은 사람이, 글로 표현하는 것보다 말로 표현하는 게 더 정중하거나 편하다고 여긴다는 게 어려움이라면 어려움이랄까. 아무려나…
혹시나 이미 저의 전화번호를 알고 계신 분 중 반드시, 어떤 일이 있어도 전화번호를 알아야겠다고 하시는 분은 댓글로 알려주세요. 아니면 그냥 극소수(아마 10명 안팎? 하지만 택배회사와 쇼핑몰 회사는 알고 있겠지…)에게만 알려주고 말듯 하니까요. 아, 그리고 오해는 하지 마세요. 당신에게 바뀐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당신과 연락을 끊겠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어차피 문자를 많이 쓰니, 문자 쓰듯 이메일로 연락주시면 더 좋겠다는 것 뿐입니다. 🙂
만약 안드로이드 사용자거나 구글계정이 있는 분은 행아웃으로 연락주셔도 좋고요. 제 이메일 주소는 runtoruin골뱅이gmail.com 이고요.

부모와 자식

부모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식의 삶을 일방적으로 이끌거나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간섭해서 자식이 잘 된 경우는 거의 못 봤다. 나는 부모가 자식의 삶에 개입할 수록 자식의 삶은 더 나빠진다고 믿는다. 이것이 부모의 입장이 된 적 한 번도 없는 내가 하는 말이니 매우 편협한 발언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를 테면 mtf/트랜스여성인 딸을 군대에 보내겠다고, 군대에 보내 정신 차리게 하겠다고 대응하는 부모(많은 경우 아버지)의 태도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 뿐이다.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슈를 회피하고 직면해야 하는 이슈에서 도피하는 태도일 뿐이다. 문제는, 직면하고 싶지 않은 현실(아들이 아니라 딸이라는 점)에서 도피하겠다면 그냥 그 자식을 만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그러지 않고 자식을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버리는데 있다. 이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문제를 더 키우는 짓이다. 이건 그냥 화풀이일 뿐이다. 매우 옹졸한 화풀이에 불과하다. 이 화풀이가 어떤 미래를 야기할 수 있는지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고민은 했을지, 정말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친구 사이처럼 어느 정도는 쉽게 끊을 수 있는 것이길 바란다. 꼴보기 싫으면 그냥 안 보면 그만인 수준의 관계이길 바란다. 자식 위한다는 명목으로, 집요하게 자식의 삶에 훈수두고 자신의 원하는 방식을 강요하는 것이 애정이라고, 자식을 향한 부모의 ‘위대한 헌신’이라고 믿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게 투사하여 강요하지 않으면 좋겠다. 어째서 자식을 끝까지 소유물로 인식하는 걸까? 이 무시무시한 인식론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가족이 가장 무서운 관계다. 가족이 가장 위험한 관계다. 나는 원가족 공동체가 각 구성원을 숨막히게 하는 관계이기에 각 구성원은 만나지 않을 수록 좋다고 믿는다. 이것이 단지 나의 경험일 뿐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믿는다.
왜, 부모와 자식은 서로를 가장 모르는 사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은 것일까? 이것만 인정해도 관계는 훨씬 수월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