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헨리, “‘퀴어’ 한국을 가시화하기: 현대의 아카이브와 역사, 1945-95”

미국 샌디에고 캘리포니아대학교(UCSD)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근대 섹슈얼리티의 구성, 퀴어이론 등을 전공하고 있는 토드 헨리Todd Henry가 현재 한국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데요.. 이 기회를 엮어서 이번에 강연을 연다고 합니다. 정확하게는 콜로키움.
제목: “Visualizing ‘Queer’ Korea: Toward an Archive and History of the Contemporary, 1945-95” / “‘퀴어’ 한국을 가시화하기: 현대의 아카이브와 역사, 1945-95”
일시: 2013.12.03. 화요일. 저녁 6시 30분
장소: 연세대학교 논지당
한국어를 기본적으로 사용하겠지만 한국어와 영어를 혼용할 수 있다고 하고요..;;;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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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분은 안 계시겠지만.. 기록 삼아..
어제 일정은 모두 다 했다지요.. 후후후.

오늘 일정이…

오늘은 두 편의 원고를 제출하고, 내일 있을 강의안을 작성해야 한다. 지난 토요일까지 글을 쓸 시간이 없어 어제 밤에야 한 편의 초고를 썼고 다른 하나는 오늘 써야 한다. 강의안도 오늘 작성해야 한다. 여기서 함정은 저녁 5시까지 알바고, 저녁 6시부터는 회의가 있다는 것! 후후후. 나는 과연 이 모든 걸 할 수 있을까? 두둥! 여기서 또 다른 함정은 원고 하나의 마감은 저녁 5~6시고 다른 하나의 마감은 12시. 후후후. 뭔가 이상한 것 같지만 신경 쓰지 마세요. 🙂
이 상황에서 뭔가 촉박하고 초초한 느낌이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뭔가 재밌고 즐거운 기분이랄까. 다른 말로 ‘포기하면 편해’와 같은 상태다. 우후후. 그래, 포기하면 편해. 후후후.
암튼 이런 상황이라 블로깅은 대충 넘어가는 걸로.. ^^;;

선천/생득과 선택/양육에 관하여, 두 번째

발아점: 모두에게 완자가 “148화 왼손잡이에 대한 고찰”
하지만 이 이슈는 예전에도 쓴 적이 있어서 딱히 이 글을 발아점이라고 하기엔…;;; 그리고 이것이 완자와 모완을 비난하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트랜스젠더가, 바이/양성애자가, 동성애자가 그리고 또 다른 다양한 비규범적 젠더/섹슈얼리티를 실천하고 삶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종종 받는 질문은 제목과 같다. “넌 타고난 거냐 선택한 거냐..” 이 무례한 질문을 받으면, 사실 선택인지 선천인지 고민에 빠지기 쉽다. 이런 식의 질문이 양자택일을 선택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이런 식의 질문에 워낙 많이 노출되다보니 질문 받은 내가 답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많이 드는 기분은 뭔가 막막하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기분 아닐까? 왜냐면 늘 얘기하듯, 우리는 타고나기도 했고 선택하기도 했으며 타고난 것도 선택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질문, 선천과 선택의 양자택일 자체가 누가 누구에게 하는 질문인지를 물어야 한다고 믿는다. 누가 누구에게 타고났는지, 선택했는지를 증명하도록 요구하는가? 선택과 선천이라는 양자택일은 적어도 내가 아는 수준/한계에서 퀴어의 경험은 아니다. 선천-선택이란 선택지 자체가 퀴어의 경험이 아니며 양자택일 형식이 퀴어의 경험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의 핵심 문제는 이성애-이원 젠더는 전혀 건드리지 않는데 있다. 이성애-이원젠더를 질문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 타고난 것, 그리하여 당연한 것으로 가정한다. 그리하여 이성애-이원젠더는 기준이며 기준이어야 한다는 믿음을 안전하게 만든다.
따라서 이런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한다. 왜 선천과 선택 사이에서 고르도록 요구하는지를 되물어야 한다. 왜 선천이냐 선택이냐가 궁금한지를 되물어야 한다. 또한, 내가 타고났는지 선택했는지 알면 뭐하려고 묻는 건지를 따져야 한다. 그거 알면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내가 트랜스젠더 범주로 타고났다는 걸 알면 나에 대해 뭔가를 더 잘 알게 된 것인가? 내가 트랜스젠더 범주를 선택했다는 걸 알면 나에 대해 뭔가를 더 많이 알게 된 것인가? 이런 걸 알면 도대체 얼마나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알 수 있는 것인가? 무언가를 이해했다면 도대체 무얼 이해한 건가? 이 질문은 나의 삶을 묻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자의 불안과 위기감을 잠재우고 안정화하고 싶은 것 뿐이다. 그러니 내가 타고났는지 선택했는지 알려고 하지 말고, 도대체 나로 인해 당신의 무엇이 불안한지를 살피면 좋겠다.
*여기서 선천-선택을 양자택일로 여기며 고르는 것이 곧 퀴어가 아니란 뜻이 아니다. 나는 여기서 퀴어정치학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재검토해야 함을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