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를 규범 삼지 않기를…

강의를 할 때면 가끔.. “어떤 트랜스젠더는 의료적 조치를 하지 않으면서 비규범적으로 전복적으로 사는데 하리수 씨 같은 경우처럼 순응적으로 사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이렇게 순응적으로 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경우가 있다.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런 뉘앙스의 질문은 꽤 많은 편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단발적 질문이 아니다. 여성학이나 페미니즘 내부 혹은 그 언저리에 있는 곳에선 특히나 선호되는 방식이다. 즉 페미니즘 내부 혹은 그 언저리에 있는 이들은 모호하거나 전복적으로 여길 법한 주체를 참 애호한다 싶다. 이를 테면 몇 년 전 세 명의 ftm이 등장한 다큐에서 소위 여성주의 주체, 규범적이지 않은 남성성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인물이 유난히 인기가 많았다. 소위 남성성 규범을 강화하는 듯한 등장 인물이 중요한 이야기를 매우 많이 했음에도 그의 말은 주목받지 못 했다. 때론 규범적이라 여기는(실상 전혀 규범적이지 않은데도!) 삶을 저어하거나 때때로 폄훼하기도 했고.
이런 분위기, 이런 발화를 들으며 차마 직접 못 하고 담아둔 말이 있는데… 모호하고 전복적 삶을 사는 인물이 그렇게 좋으면 최애캐로 삼지 말고 직접 그렇게 사셨으면 좋겠다. 자신이 못 하는 것 혹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을 타인에게 요구하고, 특정 범주의 인물을 전복의 주체로 재현하지 말고 본인이 직접 그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자신이 못 하는 것 혹은 하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요구하고 그 요구를 규범 삼아 판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니까 애호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런 애호가 마치 자신의 정치적 입장, 자신이 직접 행하고 있는 행위이자 실천인 것처럼 믿으면서 그렇게 살지 않는 존재를 재단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재단하지 말고 그냥 직접 실천하시면 더 좋고.

여름.. 피곤

몸이 여름을 탄다는 점을 확인하는 순간은, 평소보다 발걸음이 확실히 느려질 때다. 평소엔 10-15분 걸리는 거리를 15-20분 정도 걸릴 때, ‘아, 지금 여름이라 몸이 많이 피곤하구나…’라고 중얼거린다. 확실히 여름이라 쉽게 피곤하다. 평소보다 더 많이 피곤하고 잠에서 깨는 일도 쉽지 않다. 쉽게 지친다는 느낌일 때, 몸이 지쳤구나가 아니라 여름이구나라고 중얼거린다.

신기한 일은 가을이 된다고 이런 증상이 가시냐면 그렇지도 않다. 겨울이 되어야 이런 증상이 가신다. 그리하여 일년을 반으로 나누면 절반은 겨울의 시원한 기운을 받아 체력이 생생하고, 절반은 여름의 피곤함으로 체력이 저하된다. 0도 기온이 될 즈음에야 체력이 회복되니… 이것도 재밌는 일이다. 상반기는 겨울의 시원하고 생생한 기운으로 살고, 하반기는 그냥 어떻게 버틴다.
지금까지 특별히 보양식이란 걸 먹은 적 없으니 앞으로도 그러할 테다. 체질에 가까운 문제라 보양식으로 해결할 것도 아니고. 그저 이번 여름에도 콩국수를 많이 먹어야지! 팥칼국수도 먹고 싶은데, 밀가루 반죽에 계란을 안 쓰는 곳이 있으려나… 흠…

“나는 게이가 아니다”의 게이는 게이가 아닐 수도 있다

이를 테면, “나는 게이가 아니다”, “나는 호모가 아니다”라는 항변은 어디선가 들을 수 있지만 “나는 바이가 아니다” 혹은 “나는 트랜스젠더가 아니다”라는 항변을 듣기는 힘들다. 후자의 항변은, 퀴어 공동체에선 그나마 드물게 들을 수 있지만 여타 사회에선 거의 듣기 힘들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나는 게이가 아니다”와 같은 언설 만큼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언설이 많다는 것도 아니다. 이런 언설조차 별로 없다.)
이 항변이라면 항변일 언설은 종종 게이, 동성애를 부인하고 부정하는 사회적 인식으로 인용되곤 한다. 동성애가 무슨 병이라도 되는냥 이렇게 항변할 때, 그것은 혐오의 ‘우아한’ 표현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혹은 이 항변이 게이, 동성애의 가시성과 바이, 트랜스젠더의 비가시성을 상징하고 그리하여 비규범적 젠더-섹슈얼리티의 대표성을 동성애가 취하는 찰나로 해석할 수도 있다. 차별에 있어 트랜스젠더는 그나마 가시적인데 비해(차별에 있어선 동성애보다 트랜스젠더가 더 가시적인 것 같기도 하고… -_-;; ) 바이는 이 지점에서도 가시성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이 항변을 조금만 달리 해석하면, 이런 항변을 게이와 동성애의 차별, 호모포비아의 표출로 전유해도 괜찮은 것일까라는 질문이 든다. “나는 호모가 아냐”라는 발화는, 많은 경우 성적 지향보단 젠더 표현을 방어하는 표현일 때가 많다. 소위 남성이 여성스럽거나 섬세하거나 표정이 다양할 때, 이런 행동과 표현은 사람의 다양한 표현 방법 중 하나로 해석되기보다 “쟤 게이 아냐?”로 독해된다. 미국 왕따 논의에선, 호모, 파곳(faggot)과 같은 표현이 성적 지향이 아니라 젠더 표현을 지칭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다른 말로 “나는 게이가 아니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동성애 실천을 둘러싼 혐오와 자기 방어 표현이 아니라 동성애건, 바이건, 트랜스젠더건 모를 어떤 규범적이지 않은 젠더-섹슈얼리티에 대한 의심을 방어하는 표현이다. 이것은 자신의 규범성을 주장하는 발화다. 이런 발화를 호모포비아로, 동성애의 부정으로만 전유해서 사용해도 괜찮을까? 이런 항변에서의 게이는 동성애나 게이 남성을 지칭하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뭔가 비규범적으로 젠더를 실천하는 이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게이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상당하다. 결국 이런 표현에서의 ‘게이’는 소위 퀴어공동체에서 사용하는 게이와 발음만 동일하지 그 의미는 전혀 다른, 동음이의어로 접근해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반성을 요 며칠 전 했다.
발화를, 용어를, 범주 용어 사용 방식을 좀 더 섬세하게 살표야 할 텐데..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