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와 젠더 사이의 계급적, 계층적 간극

[뺨을 맞지 않고…]의 색자 공연에는, 색자가 여러 번 “나는 트랜스젠더예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색자가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한데, 이때 축약어는 “나는 젠더예요.”이다. 이때 젠더는 분석틀로서의 젠더라기보다 트랜스젠더퀴어의 축약어이자 은어로서 젠더다. 그러니 나는 젠더예요,라는 말은 나는 트랜스젠더퀴어다라는 의미를 명확하지만 간단하게 밝히는 행위다.

그리고 연구의 장에서, 혹은 SNS의 장에서 트랜스젠더퀴어의 축약어는 젠더보다는 트랜스다. 트랜스를 축약어로 쓰고, 그리하여 “나는 트랜스입니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연극을 보다가, 불현듯 이 간극을 깨달으며 뭔가 기묘한 감각이 몸을 흘러갔다.

젠더와 트랜스 사이에 많은 정치적 장이 있을 것이다. 계급, 계층, 학력, 직장, 업무, 공동체, 세대 등 많은 논쟁의 장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고 젠더와 트랜스가 완전히 분리된 지형에 위치하느냐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몇 해 전 난리가 났던 “젠퀴벌레”니 하는 표현은 모두 젠더를 축약어로 가정한다. 그럼에도 트랜스와 젠더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둘의 사용례를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지만, 이 사실이 둘 사이에 간극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나중에 이와 관련해서 따로 연구를 해봐도 재밌겠네.

리딩룸: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 읽기

구자혜 작가/연출의 책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과 관련한 행사를 합니다. 오혜진 선생님과 구자혜 작가/연출이 대화를 나눈다니 흥미진진하네요!

신청

구자혜 작가의 희곡집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을 읽는 자리가 마련됩니다. 문학평론가 오혜진과 퀴어/젠더학 연구자 루인이 묻고 극작가이자 연출가 구자혜가 답합니다. 대화 사이에 암전이 있거나 혹은, 이름 없는 개가 출현할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연극은 기껏해야 재연 혹은 재현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그는 어떤 연극적 환영도 없이 누군가의 고통으로 들어가려는 모순된 욕망을 품는다.” —오혜진(문학평론가)

“이 책에 실린 희곡들은 모두 현실을 중첩해서 쌓아 올리며 만든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이자, 희곡/연극이기에 가능한 것들을 최대로 확장하는 작품들이다.” —루인(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소장)

일시
2024년 8월 29일 목요일 저녁 7시–8시 30분

장소
더 북 소사이어티(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19길 25, 0층)

진행
구자혜, 루인, 오혜진

인원
20명

참가비
1만 원(5천 원 도서 쿠폰 제공 / 서점에서 당일 사용 가능)

문의
wpress@wkrm.kr

뺨을 맞지 않고

그러고보면 작년 서울변방연극제에서 공연한 [퇴장하는 등장]에 “빰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라는 대사가 나온다. 구자혜 작가/연출과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작품을 좋아하지만 너무 늦게 알아 안타까워하는 나는 이제야 이것을 깨닫는다.

언젠가 ‘등퇴장’과 ‘뺨을 맞지 않고’를 연속해서 공연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기억해보면 연결고리가 많다.

올해 나의 바람. 누가 여당극에 기금을 줘서 연말에 [.기다려]를 재공연을 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 아니면 소셜모금이라도 해서… [.기다려]는 매우 슬픈데 또 연말의 분위기가 있고 즐겁기도 했다. 그래서 연말마다 정기공연처럼 하면 좋겠다 싶었는데, 참여하셨던 배우님도 다시 하고 싶은 공연이라고 하셔서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