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러지 터진 이야기

나는 알러지가 심해서 예전에는 몇 번 응급실에도 다녀온 이력이 있고, 몇 년 전에는 알러지 검사를 했을 때 10개가 넘는 알러지 유발 항목이 나왔다며 이런 경우는 드물다는 결과를 받기도 했다. 물론 내 주변에는 언제나 그렇듯 나보다 더 심각한 사람이 있기도 하고, 워낙 오래 알러지와 살아서 심각하지는 않는데… 알러지 자체는 대단히 위험한 병인데, 오래 함께 살다보니 초기 대응이 가능한 단계랄까…

이 알러지라는 것이 반드시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날리는 먼지, 음식 조리 중 발생하는 연기 등) 랜덤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오랫 동안 복숭아를 잘 먹었는데 복숭아 알러지가 터진다거나, 키위 귀신이었는데 알러지가 터져서 퇴마되었다거나….. 내게는 고양이털 알러지가 가장 심해서, 사무실 동료가 깔끔하게 ‘털 알러지’가 있다고 정리해주기도 했다. ㅋㅋㅋ

그나마 털 없는 천도복숭아는 괜찮아서 한 번씩 먹었는데 얼마 전에는 천도복숭아를 먹고 알러지가 심하게 터져서 며칠 고생을 했다. 기본적으로 항히스타민 제제를 서너 종은 상비하고 있고 그 중에는 처방약도 있는데, 도합 다섯 종의 다른 항히스타민제를 먹었음에도 쉽게 낫지 않았다. 사실 이정도면 병원 가야 하는데 귀찮… 초기 진화를 해서 불편하지 심한 상태는 아니기도 했고. (물론 초기 진화를 함부로 했다가 더 위험할 수도 있는데, 30년 가까이 알러지와 살다보니 내게 잘 받는 종류를 알아서… 처방약도 있었고.)

또 며칠 전에는 병원에 갔다가 근처 식당엘 갔는데 무화과 샐러드가 나왔다. 무화과! 남부지역 시골에서 살았던 이들 중에는 비슷한 경험이 있을텐데 내게 무화과는 시골 뒷마당에 있는 무화과나무나, 동네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는 무화과나무에서 따서 먹는 과일이었다. 그래서 마트에서 무화과를 봤을 때의 충격이란… 그래도 좋아서 무화과를 사먹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알러지가 터졌다. ㅋㅋㅋㅋㅋ 무화과 껍질도 먹는 거라고해서 먹었다가 무화과 껍질에도 털이 있어서….. 하지만 식당에서 내놓은 무화과는 깨끗하게 세척한 뒤 잘라둔 무화과였고 속만 먹으면 괜찮겠거니 했는데, 속에 젓가락 대었다가 맛을 봤는데 전신이 찌릿! 알러지 경험이 오래된 이들은 알겠지만 알러지가 터질 거 같은 음식을 먹었을 때의 어떤 느낌이 있다. 알러지가 터지기 직전이나 터지기 시작한 순간의 느낌도 있고. 그런데 젓가락 끝으로 맛을 봤을 뿐인데 느껴지는 위험 신호.

그리하여 세상 좋은 과일은 바나나와 방울토마토와 사과 정도가 남았다.

빰을 맞지 않고 사는 것이 삶의 전부가 될 수 없더라

연출 구자혜

작: 색자 구자혜

배우: 색자

바로 정리하기 힘들 정도로 좋았다. 웃다가 울다가, 아니 웃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도 났다. 자세한 감상은 더 보고 정리할 수 있을 거 같다.

일단 올 해 내가 가장 잘 한 거: 이번 공연 예매한 것.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나는 자주 왜 나의 논문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나를 고민하는데, 그 이유는 수 백 수 천 가지고 결정적으로 내가 무능해서 혹은 실력과 준비과 고민과 능력이 모두 부족해서라고 말하는 것이 가장 솔직한 답이다. 이 지점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까를 고민하는데.

나의 곤란함 혹은 곤혹스러움은 남성 아니면 여성이라는 이분법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설명 체계를 명확하게 만들고 싶었음에도 그것에 실패했다는 데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언젠가 대중 미디어에서 왜 드랙퀸은 더 각광받고 드랙킹은 덜 주목받거나 거의 주목 받지 못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 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패널은 그것이 남성의 여성성에 사회가 더 관심이 많다는 식으로 답을 했는데, 그것을 모르지 않음에도 나는 그렇게 답할 수 없었는데 이런 식의 대답은 결국 이원 젠더 체제를 재강화하고, 트랜스 실천이나 퀴어 실천을 결국 이성애-이원 젠더 체제를 근간에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답변은 명징한 듯하지만 익숙한 이분법 이상의 방향으로 가지 못했고 나는 그렇게 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대답은 무엇이 있을까? 애석하게도 나는 그 답을 못 찾았다. 계속 실패했고 어떤 실마리들을 논문에 쓰기는 했지만, 그 모든 것이 충분하지 않았다. 어딘가로 탈주하고자 했지만 그 탈주는 앙상했고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

트랜스를 인식론으로, 분석 범주로 다시 가져간다고 했을 때 어떻게 하면 이성애-이원 젠더 체제로 환원되지 않으면서, 그럼에도 권력 위계를 무시하지 않으면서 논의를 할 수 있을까? 물론 나만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니며 많은 이들이 이와 관련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저 그 모든 것이 내게 딱 이것이다 싶은 것이 아닐 뿐.

그냥 주절주절… 아쉬움과 부끄러움에 주절 주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