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페미니즘, 젠더 개념의 역사

지난 일요일, 부산에서 강연을 하며 확인한 점.
트랜스페미니즘에 좀 더 초점을 맞춘 강연을 해야 한다.
8월에 있을 퀴어아카데미가 끝나면 “젠더 개념의 역사: 성과학에서 트랜스젠더퀴어까지”란 제목의 3강짜리 강좌를 열어야겠다. 압축 버전으로 2시간짜리로 만들 수는 있지만… 어제 해보니 너무 압축한 느낌. 하지만 듣기에 따라선 압축한 버전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3강으로 나누면 정말 각 시대의 여러 문헌을 꼼꼼하게 살피는 작업을 할텐데 그 정도 관심이 없다면 듣기 힘들테니까. 그리고 이 강좌를 ‘교육플랫폼 이탈’에서 진행하고 싶다고 이탈 관계자에게 말해뒀다(그런데 나도 관계자…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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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강연에 불러만 주시면 전국 어디든 갑니다..라고 영업을 해보지만, 제가 그 정도 가치가 있는지 저 자신부터 의심하는 관계로… 늘 강연이 끝나면, 주최측에 폐만 끼치지 않으면 좋겠다는 기분이라… 이런 영업을 했다가 무슨 사단이 날지 모르겠다는 기분이지만… 호호호… ;ㅅ;

부산가는 기차

늦지 않게 부산가는 기차를 탔다. 어쩌다보니 4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는데 그 사이에 꽤나 뒤척였다. 요즘 어쩐지 수면의 질이 나쁘구나. 엄청 피곤하니 나중에 홍차라도 마셔야 할까나.

젠더 개념의 역사를 3강짜리 강의로 만들어도 괜찮겠다. 아마 오늘은 그 테스트버전이 될 거 같고. 연구가 더 진행될 수록 8강도 될 거고 더욱더 긴 강의도 가능하겠지. 뭐 당장 중요한 건 오늘 오후에 있을 강의인데…
암튼 기차에서 강의 준비해야 하는데 엄청 졸리네…

차별 받는다는 문장의 복잡한 함의

“나는 트랜스라서 차별받고 있다.”

이 문장이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까?
요즘 나는, ‘차별받고 있다’는 언설은 내가 가진 특권적 위치를 동시에 표출하는 언설이라고 고민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나는 트랜스라서 차별받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나의 상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면, 이 말은 나는 한국의 선주민이자 시민권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누리고 있고, 비장애 특권을 누리고 있고.. 와 같은 내용을 동시에 함축하고 있음을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트랜스로 차별 받을 경우 시민권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무조건 누리지는 않는다. 단적으로 나는 이번 대선에서 투표를 못 할 뻔했다. 며칠 전엔 도서관 출입을 못할 뻔도 했다. 하지만 한국인으로 통하는 외모와 한국 선주민일 때의 특권은 분명 누리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다양한 특권을 누리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차별 받고 있다는 발언이 등장할 때, 이 발화가 어떤 내용은 강조하고 다른 어떤 내용은 은폐하는지를 훨씬 정교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논의도 상황 파악도 지형 파악도 매우 단순해질 것이고, 교차성 논의는 1+1 할인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교차성 논의의 핵심은 ‘나는 이러저러하게 차별받고 있다’가 아니라 나는 특정 상황에선 차별받고 있지만 다른 상황에선 특권적 위치에 있다’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