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뱃살, 바람의 뱃살

고양이는 뱃살이 진리다! 하아…
바람과 있으면, 스팽킹할 때를 제외하면 뱃살을 가장 많이 쓰다듬는 편이다. 뱃살뱃살뱃살. 말랑말랑하고 푹신하고 몰캉몰캉한 뱃살을 쓰다듬고 있으면 잠시 우주가 뱃살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문제는 바람이 자신의 뱃살을 쓰다듬는 걸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데 있다. 잠깐은 참아주는데, 오래 쓰다듬으면 후다닥 도망간다. 그렇다고 순순히 놓아주는 착한 집사가 아닌 나는, 억지로 붙잡고 쓰다듬기도 한다. 그러면 바람은 약간은 침울한 표정을 짓기도 하는데.. 그때야 바람을 놓아준다. 그럼 바람은 아예 도망가지는 않고 그저 옆에 머문다. 아웅.. 귀여워.
오랜 만에 바람의 사진 몇 장 투척합니다. 뱃살뱃살뱃살이 잘 나온 사진이라 자랑하고 싶었거든요. 후후.
드디어 포착한 뱃살!
하지만 사진이 어둡게 나왔… ㅠㅠㅠ
오랜 만에 누워 있는 모습. 이것은 바람의 기본 자세. 잠을 자는 자세.. 🙂
이 찰나, 리카의 얼굴이 보인다. 바람은 역시 리카의 딸. 흐흐.

문맥 없는 비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어떤 현상이나 글을 논평할 때 앞뒤 맥락, 문맥을 살피고 그 흐름 속에서 비평을 해야 한다. 이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그래서 학제에서 공부할 때 가장 많은 시간, 공들여 배우는 지점이다. 어떤 글이나 말에서, 한두 줄, 그것도 전체 흐름과 무관한 한두 줄 뽑아선 그것만 얘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맥락적으로, 문맥에 맞게 읽기. 어떤 문장 한두 개가 혐오 발화스럽다고 할 때에도 그 문장으로 글 전체를 판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쉽지 않은 만큼이나 중요한 일이고 끊임없이 훈련해야 하는 일이다.
나 역시 잘 못 하는 부분이라 다른 누군가의 비평에 앞뒤 문맥을 무시하는 비평이라고 논평하는 게 쉽진 않다.
그럼에도 여기에 구시렁거리면.. 앞뒤 문맥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해당 문장에서 어떤 내용을 비판하고 있는데, 그 문장을 문제 삼으며 내가 비판하고 있는 내용을 왜 비판하지 않느냐고 말하면 나는 뭐라고 반응해야 할까? 물론 슬쩍 눙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유쾌하진 않다. 그래서 여기에 이렇게 구시렁구시렁.

애호를 규범 삼지 않기를…

강의를 할 때면 가끔.. “어떤 트랜스젠더는 의료적 조치를 하지 않으면서 비규범적으로 전복적으로 사는데 하리수 씨 같은 경우처럼 순응적으로 사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이렇게 순응적으로 사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경우가 있다.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런 뉘앙스의 질문은 꽤 많은 편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단발적 질문이 아니다. 여성학이나 페미니즘 내부 혹은 그 언저리에 있는 곳에선 특히나 선호되는 방식이다. 즉 페미니즘 내부 혹은 그 언저리에 있는 이들은 모호하거나 전복적으로 여길 법한 주체를 참 애호한다 싶다. 이를 테면 몇 년 전 세 명의 ftm이 등장한 다큐에서 소위 여성주의 주체, 규범적이지 않은 남성성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인물이 유난히 인기가 많았다. 소위 남성성 규범을 강화하는 듯한 등장 인물이 중요한 이야기를 매우 많이 했음에도 그의 말은 주목받지 못 했다. 때론 규범적이라 여기는(실상 전혀 규범적이지 않은데도!) 삶을 저어하거나 때때로 폄훼하기도 했고.
이런 분위기, 이런 발화를 들으며 차마 직접 못 하고 담아둔 말이 있는데… 모호하고 전복적 삶을 사는 인물이 그렇게 좋으면 최애캐로 삼지 말고 직접 그렇게 사셨으면 좋겠다. 자신이 못 하는 것 혹은 하지 않고 있는 것을 타인에게 요구하고, 특정 범주의 인물을 전복의 주체로 재현하지 말고 본인이 직접 그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자신이 못 하는 것 혹은 하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요구하고 그 요구를 규범 삼아 판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니까 애호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런 애호가 마치 자신의 정치적 입장, 자신이 직접 행하고 있는 행위이자 실천인 것처럼 믿으면서 그렇게 살지 않는 존재를 재단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재단하지 말고 그냥 직접 실천하시면 더 좋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