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피곤

몸이 여름을 탄다는 점을 확인하는 순간은, 평소보다 발걸음이 확실히 느려질 때다. 평소엔 10-15분 걸리는 거리를 15-20분 정도 걸릴 때, ‘아, 지금 여름이라 몸이 많이 피곤하구나…’라고 중얼거린다. 확실히 여름이라 쉽게 피곤하다. 평소보다 더 많이 피곤하고 잠에서 깨는 일도 쉽지 않다. 쉽게 지친다는 느낌일 때, 몸이 지쳤구나가 아니라 여름이구나라고 중얼거린다.

신기한 일은 가을이 된다고 이런 증상이 가시냐면 그렇지도 않다. 겨울이 되어야 이런 증상이 가신다. 그리하여 일년을 반으로 나누면 절반은 겨울의 시원한 기운을 받아 체력이 생생하고, 절반은 여름의 피곤함으로 체력이 저하된다. 0도 기온이 될 즈음에야 체력이 회복되니… 이것도 재밌는 일이다. 상반기는 겨울의 시원하고 생생한 기운으로 살고, 하반기는 그냥 어떻게 버틴다.
지금까지 특별히 보양식이란 걸 먹은 적 없으니 앞으로도 그러할 테다. 체질에 가까운 문제라 보양식으로 해결할 것도 아니고. 그저 이번 여름에도 콩국수를 많이 먹어야지! 팥칼국수도 먹고 싶은데, 밀가루 반죽에 계란을 안 쓰는 곳이 있으려나… 흠…

“나는 게이가 아니다”의 게이는 게이가 아닐 수도 있다

이를 테면, “나는 게이가 아니다”, “나는 호모가 아니다”라는 항변은 어디선가 들을 수 있지만 “나는 바이가 아니다” 혹은 “나는 트랜스젠더가 아니다”라는 항변을 듣기는 힘들다. 후자의 항변은, 퀴어 공동체에선 그나마 드물게 들을 수 있지만 여타 사회에선 거의 듣기 힘들다.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나는 게이가 아니다”와 같은 언설 만큼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언설이 많다는 것도 아니다. 이런 언설조차 별로 없다.)
이 항변이라면 항변일 언설은 종종 게이, 동성애를 부인하고 부정하는 사회적 인식으로 인용되곤 한다. 동성애가 무슨 병이라도 되는냥 이렇게 항변할 때, 그것은 혐오의 ‘우아한’ 표현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혹은 이 항변이 게이, 동성애의 가시성과 바이, 트랜스젠더의 비가시성을 상징하고 그리하여 비규범적 젠더-섹슈얼리티의 대표성을 동성애가 취하는 찰나로 해석할 수도 있다. 차별에 있어 트랜스젠더는 그나마 가시적인데 비해(차별에 있어선 동성애보다 트랜스젠더가 더 가시적인 것 같기도 하고… -_-;; ) 바이는 이 지점에서도 가시성이 거의 없다.
그런데 이 항변을 조금만 달리 해석하면, 이런 항변을 게이와 동성애의 차별, 호모포비아의 표출로 전유해도 괜찮은 것일까라는 질문이 든다. “나는 호모가 아냐”라는 발화는, 많은 경우 성적 지향보단 젠더 표현을 방어하는 표현일 때가 많다. 소위 남성이 여성스럽거나 섬세하거나 표정이 다양할 때, 이런 행동과 표현은 사람의 다양한 표현 방법 중 하나로 해석되기보다 “쟤 게이 아냐?”로 독해된다. 미국 왕따 논의에선, 호모, 파곳(faggot)과 같은 표현이 성적 지향이 아니라 젠더 표현을 지칭한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다른 말로 “나는 게이가 아니다”라는 표현은 단순히 동성애 실천을 둘러싼 혐오와 자기 방어 표현이 아니라 동성애건, 바이건, 트랜스젠더건 모를 어떤 규범적이지 않은 젠더-섹슈얼리티에 대한 의심을 방어하는 표현이다. 이것은 자신의 규범성을 주장하는 발화다. 이런 발화를 호모포비아로, 동성애의 부정으로만 전유해서 사용해도 괜찮을까? 이런 항변에서의 게이는 동성애나 게이 남성을 지칭하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뭔가 비규범적으로 젠더를 실천하는 이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게이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상당하다. 결국 이런 표현에서의 ‘게이’는 소위 퀴어공동체에서 사용하는 게이와 발음만 동일하지 그 의미는 전혀 다른, 동음이의어로 접근해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반성을 요 며칠 전 했다.
발화를, 용어를, 범주 용어 사용 방식을 좀 더 섬세하게 살표야 할 텐데.. 흠..

연구자는 아니지만, 트랜스젠더 연구활동가라고 소개하기

ㅈㅎㅈ선생님은 자신을 연구자로 정체화한 적 없다고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예전엔 지식노동자)로 정체화 한다고 했던가. 이 부분은 확실하지 않다. 아무려나 자신을 연구자로 정체화한 적 없고 그렇게 정체화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 나를 연구자로 동일시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공부하는 학생으로 정체화 하는 경우는 있지만 연구자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매우 자주 나를 연구활동가로 소개한다. 연구자도 아니고 활동가도 아니란 얘기기도 하고, 활동으로 연구를 한다는 얘기기도 하고, 연구자면서 활동가이기도 하단 뜻이기도 할 텐데. 나로선 연구자에도 못 미치고 활동가에도 못 미치는 부족한 인간이란 뜻에 더 가깝지만…  아무려나 이런 표현을 종종 사용하는데 이것은 매우 전략적 표현이다. 트랜스젠더 이슈를 연예기사로는 다뤄도, 특이 사례나 사건으로는 다뤄도 지식 체계로 논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 인식론으로 작업하는 사람은 한국에 극소수고 트랜스젠더를 논하는 대다수의 글은 그저 연구 대상으로 삼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는, 트랜스젠더 연구자/연구활동가라는 명명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좋은 방법이라곤 여기지 않는다. 내가 의도하는 방식으로 유통되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트랜스젠더인 연구자로 독해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트랜스젠더를 연구하는 비트랜스젠더 연구자로 이해할 것이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원하는 것은 트랜스젠더 이슈를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트랜스젠더 이슈가 연예기사로 소비되고 말 주제가 아니란 사실을 환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반드시 성공하지 않더라도 지금 내겐 이런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전략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트랜스젠더 이슈를 끊임없이 환기하기 위해 트랜스젠더란 용어, 연구자란 용어를 계속해서 얘기해야 한다. 이 두 용어의 접합을 조금이라도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더 많은 트랜스젠더 연구자가 등장하길 바라면서.
사실 고작 나 같은 사람이 연구자랍시고 떠드는 것,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냥 ‘트랜스젠더 학생’이라고 소개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