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투덜: 자신에게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를테면 작정하고 끝내주는 작품을 그리겠다며 일 년에 한 편을 목표로 하는 것보다 닥치고 많이 그리면 그 중 끝내주는 작품이 나온다는 얘기. 다작하는 사람에게서 뛰어난 작품이 나온다는 얘기.

이런 얘기 다 좋은데… 원고봇으로 지내다보니 조금 지치는 것도 사실이다. (끝내주는 글을 쓴 것도 아니고. ㅠㅠ) 아니, 지친다기보다는 동력이 좀 떨어지는 감이 있다. 석 달 동안 여섯 편의 원고. 어떤 글은 좀 가볍게 준비할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게 아니다. 어느 글 하나 부담감 없이 진행한 것 없다. 지금까지 쓴 글 모두 그 과정이 재밌었다. 그럼에도 이젠 글을 쓰는 힘이 조금은 딸린다는 느낌이다.
… 고작 이 정도에? 근성이 부족하다. 지구력이 부족한가?
수요일에 마무리 짓고 나면 두 개의 원고를 더 마무리해야 한다. 둘 중 하나는 할지 말지를 내가 결정하면 되고 다른 하나는 도의상 해야 한다. 뭐, 도의상 해야 하는 일은 부담이 적을 듯한데, 할지 말지 고민인 글은 부담이 상당해서 갈등이다. 어떻게 할까?
그나저나 글쓰는 근육은 어떻게 생기나? 내겐 아직 없는 것 같은데… 하긴 글쓰는 근육이 없으니 이런 글을 쓰는 거겠지. 글쓰는 근육 만들려고 이러는 거겠지. 글쓰는 근육… 좀 단단한 글쓰기 근육을 만들면 좋겠다. 아, 그러기 위해선 글을 많이 읽어야 하는데 난 공부를 안 하지.. ㅠㅠㅠ
암튼 원고봇 일정도 슬슬 끝나간다..는 거짓말. 7월부터 새로운 일정이 날 기다린다. 으하하하하하… ㅠㅠㅠ

차별금지법 막강 FAQ 토론회

차별금지법 이슈는 여전히 중요하고 앞으로도 계속 중요합니다. 그러니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싶은데 마침 좋은 자리가 있네요. 많은 분이 함께 하면 좋을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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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6월 14일(금) 오후 7시 30분
장소 : 인권중심 사람 다목적홀(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247-38)
주관 :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http://lgbtact.org)
어떤 이들의 혐오 발언에 분노하고 계신가요?
이야기 하다가 말이 막혀 스트레스 받으셨나요?
막연히 지지하지만, 어떤식으로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셨나요?
성적소수자라면 꼭! 알아야 할 차별금지법에 대한 모든것!
법안에 대해 궁금했던 점들, 실제 사례에서 대입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이야기해보고, 당당하게 반박할 언어들을 알아봅니다.
무지개행동 홈페이지(http://lgbtact.org)로 질문을 남겨주세요!
토론회에서 시원하게 답해드립니다 🙂
호호

은근하게, 평범하게

영화 <2의 증명> 관련 발제문을 쓰면서 짧게 언급하고 넘어갔지만 강조하고 싶은 구절 중 하나는 다음이었다.
홍유정 씨는 혹은 나를 비롯한 트랜스젠더는 애써 저항하려는 것도 아니고 위반하려는 것도 아니다. 딱히 규범에 더 열심히 순응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살려고 애쓸 뿐이다. 그런데 그냥 사는 것이 어렵다(홍유정 씨가 특별히 운이 나쁜 게 아니다). 그냥 사는 것이 반드시 규범적으로 사는 건 아니다. 반드시 규범에 부합하지 않으며 살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홍유정 씨는(혹은 일부 트랜스젠더는) 평범하게/규범적으로 살고 싶어도 규범적으로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만히 있어도 규범을 위반한다. 홍유정 씨는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기 위해 신분증을 회복했지만 이것은 삶을 더 어렵게 했다. 여성으로 살고자 했지만 사회는 이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주변 사람들은 홍유정 씨의 어려운 상황을 알고 악용한다. 그냥 산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욕망일 뿐만 아니라 규범적으로 살고자 하는 노력 자체가 삶을 참으로 고단하게 만든다. <2의 증명>은 바로 이 찰나를 그려낸다.
퀴어 실천에 있어 내가 가장 주목하는 지점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그런 분명한 저항이나 전복 행위가 아니다. 이를 테면 수염에 치마를 입고 거리를 걷는 것과 같은 일, 어디서 공공연하게 나는 변태라고 말하는 일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난 어떤 행동이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지 위반하는지 모호한 상태, 혹은 순응하고 있는데 그 순응이 기존 질서를 자꾸만 불안하게 만드는 그런 행동에 더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위반으로 분석해도, 순응으로 분석해도 논쟁적일 주제를 얘기하는 게 더 좋다. 그것이 기존 규범을 더 날것으로 탐문할 수 있도록 하고, 규범의 다른 얼굴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혹은 어쩌면 내 삶이 그렇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애매함이 내 삶과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많은 곳에서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통하고 이것은 내게 많은 긴장을 야기한다. 나의 긴장과 무관하게 나란 존재는 기존 질서에 쉽게 편입되고 또 빗겨난다. 바로 이 찰나가 내 촉이 가장 민감한 지점이다. 물론 이렇게 사는 건 참 피곤한 일이지만 피곤하지 않은 삶이 어딨으랴… 그냥 다들 이렇게 사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