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수 씨 출연, [뮤지컬 드랙퀸] 공연

“어렵게 연예계에 입문해서 스캔들 때문에 실패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리수, 2006년 한 인터뷰에서.
돌아보면 하리수 씨는 자기 관리에 정말 철저했다. 결혼하겠다고 발표하기 전까지 그 흔한 연애스캔들 하나 없었던 듯하다. 물론 다른 문제도 없었다. 하리수 씨를 둘러싼 많은 이슈는 연예활동, 호적 상 성별변경 등이었고 그 외엔 성형의혹 정도가 논란이라면 논란이었다. 적잖은 연예인이 이런저런 스캔들로 공들여 쌓은 인기를 물거품으로 만드는데 반해 하리수 씨는 그러지 않았다. 정말 대단하단 말 외에 더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이 정도의 자기 관리와 강단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활동할 수 있는 거겠지. 앞으로 더 오랜 시간 이렇게 멋진 활동을 유지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다른 트랜스젠더가 살아가는데 든든한 힘으로 남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리수 씨가 대학로에서 뮤지컬 공연을 한다는 얘길, 며칠 전 같이 수업을 듣는 분에게 들었다. 가고 싶었다. 날을 맞춰서 가려고 했다. 운이 좋아 곧 공연을 볼 것 같다. 아쉬운 점은 홍보가 안 되어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 물론 여기 오시는 분들은 거의 다 알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공연기간 2013-04-05 ~ 2013-06-02
공연시간 평일 8시(수요일 4시, 8시) / 토 3시, 7시 / 일&공휴일 2시, 6시
공연장소 SH아트홀
티켓가격 R석 50,000원 / S석 40,000원
할인정보 하나! 남남,여여커플 30%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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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등급 16세 이상
소요시간 2시간 15분
주최/제작 (주) 콘 엔터네이먼트
문의 070-8146-2787

아무르, 혹은 누구와 죽을 것인가

*영화는 3월 초에 봤고, 이 글은 얼추 열흘 전에 초안을 썼습니다. 계속 공개를 미루고 있었는데 더 미루기가 애매해서 이제야 조심스럽게 공개합니다.
3월 초 영화 [아무르]를 봤다. 간병하던 대상을 떠나보낸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봤으면 하는 영화다(장애 이슈로도 할 얘기가 많은 영화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리카를 떠올렸다.
영화 속 주인공 중 한 명은 병에 걸렸는데 병원에서 치료받길 거부한다. 그래서 파트너가 집에서 간병하는 상황이고, 직접 간병하는 삶의 고단함과 고민이 영화의 내용이다.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환자의 선택. 나는 리카가 떠올랐다. 리카는 병원에서, 내가 없는 시간에 숨을 거두었다. 그것이 내겐 일종의 한으로 남아있다. 내겐 로망이 하나 있(었)다. 나와 살던 고양이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곳은 내 무릎이면 좋겠다는 로망. 리카가 내 다리 위에서 출산하려고 했듯 삶의 마지막도 그러길 바랐다. 하지만 리카는 병원에서 떠났고 나는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 이것이 한으로 남아 있기에, 바람이 아프다면 나는 입원을 시켜야 할지 집에서 간병해야 할지 갈등할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해도 안타까움으로 가득하겠지만.
그런데 리카를 병원에 둔 건 어쩌면 나의 이기심과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을까? 동반종을 간병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나는 리카를 집으로 데려가는 일이 두려웠다. 그래서 가급적 병원에 있길 바랐다. 단지 내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일까? 단지 병원에 있어야 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어쩌면 죽음을 앞두고 두려워서 도망친 것은 아닐까? 리카의 마지막이 내 무릎 위이길 바라면서도 정작 나는 죽음을 직접 목격하고 싶지 않다는 어떤 두려움에 떨었던 것은 아닐까? 리카가 온 종일 겪는 아픔과 고통을 곁에서 지켜볼 용기가 없어서 도망친 것은 아닐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당시의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그래서 환자의 파트너가 선택했던 일을, 알 것 같았다. 고통스러웠고 극장에 다시 한 번 가고 싶지만, 핑계도 좋지, 바빠서 못 가고 있다.
아버지가 오래 살길 바랐다. 아버지에게 애정이 있어선 아니었다. 건강 상태로만 본다면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먼저 세상을 뜰 줄 알았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먼제 세상을 떠났다. 안타까웠다. 이 안타까움엔 지금까지 말한 적 없는 어떤 욕망이 있다. 노인성 치매 혹은 알츠하이머가 유전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었다. 아버지의 어머니, 내게 할머니는 노인성 치매였다. 치매로 6년 가량의 세월을 살았고 삶을 마무리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노인성 치매는 유전일까, 아닐까? 유전이라면 직계 유전일까 한 세대를 걸러 나타나는 유전일까? 이런 궁금함이, 아버지의 장수를 기원하도록 했다. 만약 아버지도 노인성 치매 혹은 알츠하이머를 겪는다면 그에 맞춰 나는 내 노후를 준비하려고 했다. 노인성 치매에 걸렸을 때 주변 사람이 겪는 고통과 어려움을 알기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 그런 미래를 준비하고 싶었다.
[아무르]를 보면서 다시 든 고민이지만(정확하게는 지혜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제기한 이슈지만), 나는 누구와 살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와 죽을 것인가를 더 고민한다. 특정 신체 규범에 맞는 건강한 몸을 유지한다면 누구와도 살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성격을 비롯한 다양한 이슈가 있으니 누구나와 살 순 없지만 그래도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를 실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음 혹은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를테면 내가 어떤 병에 걸렸을 때, 원가족을 제외하고 혹은 원가족을 포함해서 지속적으로 간병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내게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아마 없지 않을까? 아울러 나는 돈이 없기 때문에 전문간병인을 고용할 수도 없다. 간헐적으로 문병을 오거나 안부를 묻는 사람은 있겠지만 지속적 간병은 전혀 다른 문제다. 되살아나거나 ‘회복’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향한 더딘 시간, 그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시간을 견디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이곳에 오는 분,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은 어떤가요? 원가족 말고, 애인 말고, 혹은 이 모두를 포함해서 자신이 아플 때 만사 제쳐두고 자신을 도와주고 간병하러 올 사람 혹은 어떤 상황에서도 어려움을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신가요?
물론 몇 번은 만사 제쳐두고 함께 하러 오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장기간 지속된다면? 몇 달 아니 몇 년의 시간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고통과 아픔을 일상에서 함께 나누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더 정확하게는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는지 자신이 없다. 이런 자신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이런 건 단언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그저 시간이 입증하는 일인데 어떻게 자신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해줄 수 없으면서 누군가에게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농담으로 인간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있으니 나는 150살은 살 거라고 떠들곤 한다. 실제 그럴 수 있을진 장담할 수 없다. 자기만 조심한다고 사고가 나지 않은 건 아닌 현대 사회에선 예측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더구나 나의 노년이 어떤 모습일지 예측할 수 없어서, 나는 내게 알츠하이머나 노인성 치매가 생기기 전 내 삶을 깨끗하게 마무리할 수 있으면 하는 소박한/야심찬 바람이 있다. 하지만 언제 병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바람이기도 하다. 병은 불길한 전조와 함께 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훅, 찾아오니까. 그래서 내가 바랄 수 있는 가장 간절한 바람은 하나 뿐이다.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바람, 그리고 미래에 나와 함께 할 또 다른 어떤 고양이를 돌봐줄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 나의 병으로 인해 내가 책임지고 있는 고양이가 굶지는 않길 바란다. 나의 질병은 지저분하고 부담스러운 일이겠지만 고양이는 귀여우니까 누군가에게 생명을 위탁한다고 해도 큰 민폐는 아니지 않을까?
이런 글을 적으면 지금 혹은 나중에 만날 수도 있는 파트너에게 내 죽음을 의탁하겠다는 뜻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 그러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죽음은 의탁하겠다고 의탁할 수 있는 게 아니잖은가. 아울러 죽음을 의탁한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이 반드시 애인이나 파트너여야 하는 건 아니다. 혹은 파트너에게 배타적으로 의탁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삶의 관계를 그렇게 단순하게 만들 이유는 없다.

검색과 발굴, 그리고 헌책방

기록물을 수집하고 발굴하는 작업을 하다보면 검색할 수 있는 기록물과 발굴할 수 있는 기록물은 다르다는 점을 마치 몰랐던 사실처럼 체감한다. 아무리 검색기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발굴하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기록물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 같은 곳은 소장 자료를 모두 검색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하지만 국회도서관 등에서 검색할 수 있는 기록물은 국회도서관 등이 소장하고 있는 기록물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국회도서관이 모든 기록물을 소장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 틈새를 찾아야 하는 작업이 기록물 검색이 아니라 발굴이지 않을까? 물론 검색 자체도 발굴의 일부다. 그리고 때론 검색할 수 있는 기록물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검색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록물에 모든 사람이 접근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과거 신문기사는 누구나 검색할 수 있지만 누구나 검색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때때로 누구나 검색할 수 있는 기록물을 얘기하는데도 그것이 신기한 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이 부분은 내가 오랫동안 헷갈렸던 부분이다. 간단하게 검색해서 찾은 자료라면 누구나 알텐데 강의나 글에서 굳이 얘기해야할까, 뭔가 다른 걸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란 고민을 했다.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니 검색할 수 있는 기록물만 잘 엮고 특정 관점으로 잘 버무려도 충분히 훌륭한 경우가 있다. 아니, 검색해서 찾은 자료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고 훌륭할 때도 많다. 다만 좀 더 풍성한 기록물을 찾기 위해선 검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검색에 걸려들지 않는 기록물에 귀중한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발굴 작업이 중요하다. 이것을 발굴하는 상상력(혹은 아카이브적 상상력)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어떤 의미에선 기록물이 도처에 널려 있기에 더 접근하기 힘들기도 하다. 무엇을 읽어야 하고 어떤 기록물을 선별해야 하는지가 더 힘든 시간이 되고 있다(그래서 큐레이션이 뜨고 있는 거겠지). 아울러 도처에 널린 기록물에 접근하고 수집하고 해석하는 작업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것은 인터넷/기술이 전기와 같고 공기와 같고 물과 같은 시대에도 인터넷으로 해결할 수 없는 몇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발굴작업을 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공간은 헌책방이다. 누군가에겐 의미 없는, 나에겐 너무도 소중한 기록물이 유통되는 몇 안 되는 공간인 헌책방.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통하는 시대가 될 수록 헌책방은 더 소중한 공간으로 변해가리라. 어떤 의미에서 인터넷시대를 상징하는 최첨단 공간은 전자상품매장이 아니라 헌책방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