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트랜스젠더의, 퀴어의 역사가 있다.

며칠 전 우연히 인터넷헌책방 한 곳을 들렀다.우연이었다. 그저 어떤 책이 있나 싶어 특정 카테고리에서 책을 훑었다. 어어… 내가 원할 법한 책이 가득했다. 목차를 확인할 수 없으니 내가 원할 책인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러니 엄밀하게 말해 촉이 가는 책이 많았다. 확인할 수 있는 건 제목 뿐이었지만 제목만으로도 촉이 왔다. 몇 권은 실패할 수도 있음을 각오하고, 그럼에도 촉을 믿고 여러 권을 주문했다. 며칠 전 받았고 개봉했다.
위의 사진처럼, 너무도 지저분해서 소독이라도 하면 좋겠다 싶은 책. 비닐장갑을 껴야만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책. 1,000원에서 2,000원 사이, 비싸면 2,500원이지만 찾는 사람은 거의 없을 법한 책. 이런 책 속에 트랜스젠더의 역사가 있고 LGBT의 흔적이 있고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관련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한국 LGBT의 삶은 그 시절 출간된 학술지나 문예계간지, 여성학 서적에 실려 있지 않다. 사진처럼, 버려지기 쉬운 책 속에 남아 있다. 유물을 발굴하듯 오직 촉을 믿어야 하고 그 믿음을 통해 의외의 기록을 찾는다. 이를테면 1980년대 중반에 나온 어느 책에선, 국내에서도 가끔 레즈비언 부부가 탄생한다고 적고 있다. 이 기록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지 알 수 없다고 해도 이런 기록은 지금은 잊힌 책에서만 찾을 수 있다. 이태원 트랜스젠더의 흔적 역시 이렇게 낡은 책에서 찾았다.
1980년대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관련한 기록도 이런 책에 주로 나온다. 물론 매우 짜증나는 관점이라, 당대 이런 책을 접했다면 무시했을 기록이다. 지금은 매우 귀한 내용이다. 당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단행본 분량으로 다룬 기록이 이런 종류의 책이라 아쉬울 따름이다. 그 시절에도 쟁쟁한 여성학 도서와 잡지가 있었지만 섹슈얼리티는 관심이 아니었거나 단속의 대상이었다. 1985년 초 1호를 발간한 <또 하나의 문화>는 아동양육, 자녀양육을 특집으로 다뤘다. 이후에도 비슷한 이슈를 중심으로 다뤘다. 1985년 말에는 <여성>이란 제호의 잡지가 나왔다. 다루는 주제는 여성노동운동이었다. 여성노동운동은 1980년대 전반에 걸친 관심이었고 그 시기 나온 여성학 도서 상당수가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다뤘다.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로자 룩셈브루크와 같은 인물의 전기가 출판된 건 우연이 아니다. 이런 일련의 작업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각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그저 여성의 다양한 성적 실천 이슈가 누락된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소위 “가부장제 남성의 관점”이라고 불리는 입장에서 쓴 글이 아닌,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이들의 관점에서 쓴 여성의 섹슈얼리티 관련 글을 읽고 싶은 욕심이 있어, 드는 아쉬움이다. 훈계 형식으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기록물을 안 읽어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아쉬움이 가득해도, 여성을 훈계하는 태도가 엄청난 짜증을 유발한다고 해도, 이 낡은 책은 모두 내게 귀하다. 이런 책마저 없다면 나의 혹은 우리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바람이 있다면, 언젠가 트랜스젠더가, 레즈비언이나 바이가, 혹은 호스트바에서 놀았던 ‘여성’이 직접 쓴 글을 찾을 수 있기를. 아니, 관련 글은 분명 있을 테니 이를 어떻게 찾고 발굴하나 싶다.
+
근데 이번에 집중해서 찾고 있는 주제의 기록이 없다는 건 함정.. ㅠㅠㅠ

잡담: 어떤 예감, 원고

01
얼추 한 달 정도 전부터 든 예감이 있다. 너무 늦지 않게 트랜스젠더-성매매/성노동-HIV/AIDS 이슈를 공부하고 준비를 해야 할텐데..라는 예감이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관련 이슈를 대응해야 하거나 어떤 사업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럴 여유가 없어 걱정이었다.
그저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데…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 트랜스젠더-성매매/성노동 이슈로 뭔가를 하기로 했다. 엉엉. 언젠간 해야 할 주제라서 아니 이번이 또 한 번의 중요한 기회라고 여겼기에 덥썩 물었지만, 잘 할 수 있을지는 걱정이다. 한 학기 수업을 준비하는 수준으로 준비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01-1
근데 석 달하고 보름도 더 전에 청탁이 왔다. 완전 감동이다!
02
가끔 글을 쓸 때마다 다시 한 번 중얼거리지만, 석사학위 논문에서 개진한 ‘젠더폭력’ 개념은 정말 끝내줬다.;;; 알아주는 사람은 없지만 트랜스젠더 이슈와 페미니즘 이슈의 접점(둘이 별개가 아님에도)을 좀 더 효과적으로 설명할 핵심이랄까. 문제는 더 발전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지. 아하하. ㅠㅠ
03
올 해 원고 쓸 복이 터지는 건가… 아.. 이러면 안 되는데… 하아…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아니, 아니, 안 되는데… 하아…
든 것도 없으면서 자꾸만 뭔가를 쓰고 있으니 바닥이 드러나는 문제가 아니라 바닥을 긁어내고 파내고 있다.
03-1
며칠 전 또 하나의 원고를 쓸 기회가 생겼다. 나로선 매체를 따지기보다 출판할 수 있는 기회를 더 중시한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다. 다만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고민이다. 방학 중이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이제 학기 시작이고 수업에 알바에 다른 일까지 하면 글을 준비할 시간이 없을 텐데…
그럼에도 쉽게 거절을 못 하고 망설이는 건, 거절하기 쉽지 않은 좋은 기회기 때문이다. 단순히 내게 좋은 기회가 아니라 트랜스젠더 이슈를 출간하는데 좋은 기회란 점에서 놓치고 싶지 않다. 나의 글이 곧 트랜스젠더 출판은 아니지만, 내가 유일한 트랜스젠더 이슈를 글로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글이라도 더 출판되길 바란다는 점에서 고민이다. 오늘 저녁에 한 선생님께 자문을 구하고 결정하겠지만…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고, 현실적으로 글을 쓰기엔 너무 촉박해서 고민이다. 어떤 선택이 차선일까?

안녕, 리카

그리고 우리 만난지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우리 만나 함께 한 시간보다 너를 그리워하는 시간이 더 길다. 아니, 우리 만나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짧아 그리워 하는 시간이 금방 더 많아지는 게 애통할 뿐이다.
리카, 안녕.
그곳에선 나 같이 어리석은 집사 없이 행복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