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밤

생수를 사먹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수돗물을 끓여먹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유라고 해봐야 물 살 돈을 아끼고 페트병 버리는 걸 줄이자는 단순한 이유다. 수돗물을 끓이기로 하고선 허브티를 몇 종류 찾았다. 위가 안 좋아 평소에도 페퍼민트를 마시고 있지만 물처럼 마실 차를 찾았는데…

그리하여 레몬밤을 골랐다. 학자의 차라는 소개글에 혹해서 그랬다. (마침 위/소화에 좋은 차라고 한다.) 내가 학자는 아니지만, 평생 학생이겠지만, 그래도 학자의 차를 마시면 학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은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허영심으로 골랐다. 호호호…
못 마시는 차가 많은데 다행히 레몬밤은 몸에 잘 받고 맛도 괜찮다. 레몬밤을 마시며 학자는 아니지만 학자 기분은 느껴 보려는데 과연…

글, 잡담

다음 단행본 작업을 위해 이전 원고를 수정하고 있다. 그러며 연신 감탄한다. ‘오, 내가 정말 이런 공부를 했단 말이야? 과거의 나는 쵸큼 똑똑했잖아, 나 공부 좀 열심히 냈네’라고 감탄한다. 내가 언제 이런 논문을 읽었고, 언제 저런 내용을 공부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글에는 적혀 있다. 그리하여 매우 당황하고 놀라고 내가 배우면서 원고를 수정하고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으니 어쩔 수 없겠거니 하지만, 그래도… 과거의 내가 쓴 글을 현재의 내가 밑줄 그으며 읽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점은, 현재의 내가 한없이 멍청하고 부끄럽고 어리석다는 뜻이겠지. 이런 부끄러움으로 원고를 수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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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북토크(http://kscrc.org/xe/board_hWwy34/16045)에서 할말을 이것저것 고민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아마도, 양성평등에 반대한다가 성평등이란 용어를 쓰자는 내용은 아니란 점을 말할 듯하다.

블로그, 잡담

블로그를 닫아두나 열어두나 차이가 없다. 닫았더니 이유를 묻는 사람, 걱정하는 사람이 두엇 있었는데 그것 빼고는 차이가 없다.

누워 있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책상 앞 의자에 앉는 것이 세상 가장 어려운 일이다. 이불에서 나오는 일이 태산을 옮기는 일이다.
식물을 몇 기르기 시작했다. 말려 죽일까 두려워 하고 있다. 윤리는 어디서 출발하고 어디서 그 숨을 잠시 멈출까? 잘 모르겠다. 어떤 죽음은 다른 죽음보다 가볍고 간편하고, 어떤 삶은 훨씬 더 쉽고 간편하게 거래된다. 여전히 윤리를 중시하는 고리타분하고 구닥다리인 나는, 하지만 그저 두려움만 안고 있을 뿐 삶과 죽음 앞에 무력하다. 무기력하다.
ㅎ 시인의 이번 시집은 두고두고 떠오른다. 썩은 사과… 사과가 썩는 시간…
답장을 못 한 메일이 여러 통인데 그저 괴로움만 몸에 켜켜히 쌓여갈 뿐이다.
커밍아웃을 한적 없는 나는 아웃팅을 당할 일도 없다. 나는 내가 00이라고 알려지는데 두려움이나 걱정이 없다. 더 정확하게는 그와 관련한 어떤 감각이 없다. 그것이 무슨 일인지 인지를 못하고 이해를 못한다. 무엇보다 내가 알려지는 방식은 내가 나라고 인지하는 방식과 다르기에 나랑 상관없는 일이다. 그것은 내가 아니니 나와는 무관하다. 하지만 나를 아는 사람, 얼굴을 아는 사람이 느는데 큰 부담이 있다. 어느 자리를 가나 익명의 ㄱ이고 싶다는 욕망이 매우 강하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기를, 이미 친한 사람, 소중한 사람들이 아니면 아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조용히 참가했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삶. 생존을 위협하는 강렬한 욕망이라 어렵다. 언젠가 나는 향기가 없는 사람이고 싶다고 적었는데, 이 강렬한 바람은 이제 화두가 되었고 생존 문제가 되었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