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리카, 앎의 부재

리카 이야기를 쓸 때가 있다. 출판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쓰는 글에 리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것이 즐거운 소재건 아니건 상관없이 그 글에서 나는 울고 있다. 어쩔 수 없다. 아직도 리카가 생생하다. 아니다. 생생하진 않다. 생생하지도 않고 흐릿하지도 않고 그냥 그렇다. 세월이 더 지나면 나는 리카를 더 많이 잊겠지. 하지만 리카 만큼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지금 내 곁에서 자고 있는 바람보다, 나는 리카를 더 많이 얘기한다. 리카와 관련해선 할 얘기가 너무 많다. 그래서 아직도 못 다한 얘기가 많다. 어떤 예를 들어야 할 때, 이야기를 풀어갈 만한 일화가 필요할 때 나는 리카와 살며 겪은 일을 꺼낸다. 얼마나 더 많이 얘기하면 리카와의 기억을 소진할 수 있을까? 언젠가 적었듯 리카와 관련한 단편소설이라도 한 편 쓰면 더는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왜 나는 일 년도 더 지난 지금, 리카가 날 떠났을 때 혹은 내가 리카를 더 붙잡지 못 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슬프다고 착각할까? 가끔 아주 가끔 리카의 마지막을 기록한 글을 읽곤 한다. 그러며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그리워하는 것 뿐일까라고 중얼거린다. 이런 애착이 떠난 리카를 괴롭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직도 붙잡으려 한다. 나는 그때 충분히 애도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아직은 더 애도해야만 한다는 뜻일까? 지금까지의 시간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슬픔이 남아 있다는 뜻일까? 가끔 다른 사람과 집에 함께 사는 고양이 얘기를 할 때면, 바람에겐 무척 미안한 일이지만, 리카를 먼저 떠올리곤 한다. 부재하는 리카를 먼저 떠올리며 고양이 얘기를 한다. 그리고 고양이 이야기를 하는 것에 어떤 불편함을 느낀다. 함께 살고 있는 바람보다, 나의 잘못으로 어쨌거나 나의 잘못으로 떠나간 리카를 먼저 떠올리고 그래서 나의 어떤 잘못을 먼저 떠올린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고양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불편하다. 아울러 내가 다른 사람에게 고양이와 관련한 얘기를 할 자격이나 있을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무지한 내가, 어리석은 내가 감히 어떻게 고양이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안다. 이런 고민 모두 어리석다는 것을. 어리석은 내가 감히 고양이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식의 사유 자체가 어리석다는 것 안다. 하지만 지식은, 이론은 삶을 설명하기에 언제나 불충분하다. 이론이, 지식이, 앎이 삶을 충분히 담아낼 수 없기에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개개인이 살 수 있으며 이론이 발달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안다는 것, 다 허황된 말이다. 나는 모른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안다고 하는 말 모두 불충분하고 부족한 앎일 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영역이 내게 너무 크다. 리카가 부재하는 것처럼 나는 그저 부재를 환기하고 상기하고 또 떠올리며 슬픔의 무게를 줄여가길 애쓸 뿐이다. 비가 내리는 오후 나는 잠든 바람을 괜히 건드리고, 집 바깥 융을 걱정하면서도 리카를 떠올리고 있다. 리카는 이제 비에 젖을 일 없겠지?

메모: 실패한 글쓰기, 휘발한 열정

01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쓴 글은 늘 어떤 목표가 있었다. 흠모하는 작가의 글을 모방하려 했다. 그것에 도달하려 했지만 늘 실패했다. 그래서 나의 모든 글은 실패의 산물이며 실패한 글쓰기일 수밖에 없다. 많이 부끄럽지만 그래도 이런 실패가 조금은 성장할 수 있는 토대기도 했다. 그렇다고 실패한 글쓰기가 성장의 토대였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실패한 글쓰기는 그 자체로 어떤 형태를 갖춘,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진 글이다.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 아니라 그냥 그것 자체다.
…. 아.. 난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02
열정이 휘발한 다음에도 관계를 유지한다면, 열정이 한 약속을 이행한다면, 그 관계는 어떤 얼굴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일까…

방학인데…

01

방학이면 여유가 있어야 할 텐데… 학기 중일 때보다 더 바쁘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누가 설명 좀 해줬으면 좋겠다. -_-;;
뭐, 설명이 더 무엇 필요하겠어. 긴장이 풀렸고 욕심이 많아서 그렇지. 끄응.
(기존 세미나 두 개에 방학 세미나 하나가 늘었고 또 하나가 더 늘어날 예정..)
02
방학 동안 글을 쓸 계획을 세우며 욕심을 좀 냈는데 그것이 실현할 수 없는 과욕임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과감하게 줄이고 줄여 두 개로 정리했는데… 그 두 개도 좀 많다. 하나는 학술지에 투고할 원고고, 다른 하나는… 아직 비밀. 이것은 원고는 아니고 좀 다른 작업인데 극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는 기획. 때가 되면 밝히겠지요(당연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작업입니다). 후후.
아시잖아요? 전 제가 작업한 결과는 열심히 홍보한다는 걸. 으하하 ;;;
03
<여/성이론> 2012년 여름호에 수잔 스트라이커를 소개한 원고가 실렸는데.. PDF로는 아직 안 올라와서 소개를 못 하고 있다는.. 하하. ;;;
원고 어디에도 기록하지 않았지만, 원고 초안을 쓰고 마지막 수정본을 넘기는 과정에 아버지 사고가 있었다. 그 원고를 다시 볼 때마다 몸이 많이 복잡할 것 같다.
04
이미 아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매우 중요한 사이트가 생겼습니다.
트랜스젠더 인권과 관련한 의료적, 법적 정보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를 살펴 보면 만드느라 정말 고생 많았겠다는 느낌이 팍팍 듭니다. 정말 잘 만들었더라고요.
(저도 다른 분이 알려줘서 알았습니다.)
05
퀴어락과 한국퀴어백과사전.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잘 가져갈 수 있을까가 고민.
며칠 전 채윤 님과 얘기를 나누다 농담으로, 박사학위 끝나면 퀴어락에 취직할 거라고 했다. 흐흐흐. 근데 퀴어락은 현재 KSCRC에 속한 팀이고(퀴어락이 분명 별도의 운영 체계를 갖추고 있긴 하지만, 별도의 단체가 아니라 KSCRC가 진행하는 여러 사업 중 하나입니다) 월급을 줄 수 있는 여건은 전혀 아니고.. 더구나 난 이미 운영위원이고 운영위원은 어떤 형식으로 취직할 수 있을까.. 아하하. 그럼에도 퀴어락은 내가 상당한 애착을 갖는 활동이다. 소속을 적어야 할 때면, 어떤 의도가 없는 한(캠프 트랜스에 쓴 소속이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었죠…), 퀴어락을 적을 정도니까. 아카이브 작업이 상당히 매력적이고 아카이브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고. 그럼 이 활동을 제 고민과 어떻게 연결하고 더 발전시킬 수 있을까? 나의 고민과 퀴어락이 별도의 기획이란 뜻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조화롭고 더 흥미롭게 만들 수 있을까가 고민이다.
06
이번 주 초, 모 단체 활동가와 얘기를 나누다가… 다시 트랜스젠더 단체를 만든다면 쉼터 중심으로 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블로그에도 몇 번 적었던가? 이태원을 기반으로 상담 및 쉼터에 초점을 맞춘 운동을 해야겠다는 고민.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니, 쉼터를 마련할 건물이 없고, 건물을 마련하고 단체를 운영하고 상근자에게 월급을 줄 돈이 없다는 것. 난제 중 난제다.